[정태명의 사이버 펀치]<3>알파고와 법조계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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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수사 과정을 통해 새로운 사실들을 배우고 있다. 전에는 검찰 소환을 받으면 출두해야 하고, 압수된 모든 것은 증거가 되는 줄로 알았다. 수사관 조사에 성실히 답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닌가 보다. 법을 잘 알면 상식을 넘어선 권리가 보장된다는 사실이 국민을 혼란시키고, 때로는 허탈하게 한다. 마치 개임 개발자가 단축키를 만들어 놓고 혼자만 사용하는 특권을 누리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이번 사건에서 법은 자신을 잘 아는 자와 자신을 고용할 수 있는 부유층에게만 호의를 보인다는 사실을 가르쳐 줬다. `모르는 것이 잘못`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 국민은 먹고사는 데 바빠서 법을 배울 시간이 없다. 정부는 국민에게 법을 공부하라고 강요하기 이전에 법이 국민의 일반 생각에 부합하도록 혁신해야 한다.

이세돌과의 한판을 계기로 바둑계를 점령한 컴퓨터가 IBM 왓슨을 앞세워 의료계에 메스를 빼들었다. 이미 의사와 진료 경쟁을 벌이는 컴퓨터는 머지않아 치료와 수술을 대신하겠다고 대들 것임이 틀림없다. 법조계도 예외는 아니다. 방대한 법령과 판례를 기억 속에 담아 둔 컴퓨터는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분석 기술을 기반으로 법조인을 대신하는 일을 서슴지 않고 있다. 기계학습(머신러닝) 기반의 AI 컴퓨터 로스(Ross)를 고용한 미국의 법률회사는 단순한 시작일 뿐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법조인이 컴퓨터와 친해지지 않으면 위기를 막을 길은 없어 보인다.

컴퓨터와 친해지는 방법은 그의 처리 속도와 저장 능력에 경쟁하는 대신 이를 이해해서 능동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빅데이터 분석으로 법의 일관성과 형평성을 가늠하고, AI의 도움으로 정확한 판례를 확인하는 것은 당장도 가능한 일이다. 앞으로 컴퓨터는 판검사나 변호사의 능력 측정, 판례의 해석, 법의 대국민 이해도 등의 복잡한 영역까지 진출할 것이다.

그러나 컴퓨터와 친해지는 시작은 `생각의 변화`다. 4차 산업혁명을 계기로 변신하려는 법조계의 노력 없이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정부의 지원도 기술의 개발도 남의 일일 뿐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법조인은 기억력을 바탕으로 한 판단보다 인간의 가치와 의미를 중심으로 사건을 보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컴퓨터가 할 수 없는 일을 기준으로 법조인의 전문성이 판단될 것이다. 또한 특권층만이 누리는 법 혜택을 포기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컴퓨터가 특정인 또는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 아닌 한 지식과 정보는 모두에게 공유된다. 인터넷은 숨기는 것을 허용치 않기 때문이다. 컴퓨터와 함께 사는 사이버 세상에 적합한 법도 준비해야 한다. 하늘을 나는 드론과 혼자 달리는 자율자동차도 자연스러워지고, 가짜뉴스를 처벌하기 위한 법을 찾느라 우왕좌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3차에 걸친 산업혁명에서 그랬듯 기술이 만든 변화를 시작으로 경제와 문화 혁명이 완성됐다. 그때마다 특권층이 누리던 권한은 고르게 분배됐다는 사실이 간과되지 않아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이 법조계에는 새로운 도약을 위한 디딤돌이 되고, 일부가 누리던 특권을 많은 사람에게 나눠 주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바보는 천재에게 배우지 못하지만 천재는 바보에게서 배운다`고 했다. 법 모르는 자의 푸념이라 치부하기에는 오늘을 버리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는 변화가 목전에 와 있다.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 tmchung@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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