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인터뷰┃류준열] 독보적인 존재감, 이 남자의 본능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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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예은 기자 / 사진 : 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 디자인 : 정소정

[엔터온뉴스 이예은 기자] 현재 충무로에서 가장 바쁜 배우 한 명을 꼽으라면 류준열이다. ‘응답하라1988’로 단숨에 스타덤으로 오른 뒤로, 그는 쉬지 않고 ‘소’처럼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도 ‘더 킹’을 시작으로 ‘침묵’, ‘택시운전사’까지 대중에게 찾아올 예정이다. 흔히 말하는 ‘응답’의 저주를 완전히 피해간 그는 지친 기색이나 자만에 빠질 만도 한데, 오히려 겸손했고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환경에 감사해할 줄 아는 배우였다.

‘더 킹’은 “한국만큼 권력자들이 살기 좋은 나라가 있을까?”라는 한재림 감독의 물음으로부터 시작된 영화로, 박태수(조인성 분)가 대한민국의 절대 권력자 한강식(정우성 분)을 만나 세상의 높은 자리에 올라서기 위해 펼치는 작품이다. 대한민국의 30년 역사를 쫓으며 권력자들의 민낯을 아주 우습게, 노골적으로 들춰내어 사회를 향한 강도 높은 직구를 날렸다.

류준열은 주연만큼 돋보이는 조연, 최두일 역을 맡았다. 박태수(조인성 분)의 고향친구로써, 그를 묵묵히 지켜주는 해결사다. 태수가 밝게 빛날 수 있도록 그를 대신해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하며, 자신은 어둠 속에서 묵묵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캐릭터다. 설정된 캐릭터 자체도 강렬한 힘을 가졌지만 류준열은 세심한 연기를 펼치며 두일에게 더 화려한 색을 입혔다.

“외로운 인물인 것 같아요. 직업적으로도 그렇고, 영화에서 튀어버리는 것도 그렇고요. 남들은 다 방황하는 인물인데 두일이만큼은 변화라기보다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가치관을 끝까지 밀고 가는 부분도 있고요. 마지막까지 ‘이 친구는 의리가 있구나’라고 생각해서 외로움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덤덤하게 표현하려고 애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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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NEW 제공

충무로에서는 신인이나 마찬가지인 류준열이 함께 호흡을 맞춰야하는 상대는 정우성, 조인성 그리고 배성우였다. 대한민국에서 이미 탄탄히 입지를 다져 놓은 대선배들 사이에서 그가 눈에 띄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선배들의 아우라만큼이나 확고한 두일이를 만들어내며 ‘류준열의 아우라’를 선보였다.

“선배들 사이에서 튀어도 되고 안 튀어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최)두일이라는 인물 자체는 직업적으로나 보여주는 것에 있어선 그들과 동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잖아요. 검사가 조폭 같아 보이고 조폭이 검사 같이 보이는 데칼코마니가 뚜렷했기 때문에 안 튀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것은 그것대로 맛이 있잖아요. 다른 영화에서는 검사들이 점잖고 조폭들이 껄렁한 모습인데 저희 영화는 정반대로, 제 역할이 멋있다기 보다는 무게감이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오히려 연기할 때 사람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나름대로의 해석을 가지게끔 노력했어요. 이번 작품도 느와르 영화를 생각하면서 찍은 것이 아니고 ‘더 킹’이 그런 것과도 거리가 있죠. 저 혼자 느와르라고 생각하면 너무 거부감 있게 튀어버리잖아요. 남자들의 의리 같은 것을 생각하지 않고 한 가지만 바라보고 가는 뚜렷한 모습들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극중에서 두일이의 마지막은 정갈하면서도 강렬하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조심스럽지만, 멋들어진 수트를 입고 당당히 자신의 벼랑 끝으로 걸어가는 류준열의 모습은 남자들의 로망을 자극하는 것은 물론, 여심까지 흔들기에 충분했다. 주변에서도 많은 여성들이 해당 시퀀스에 좋은 호평을 건넸다고 질문하자 류준열은 쑥스러워하더니 도대체 어떤 점이 그랬냐며 되물었다.

“그런가요? 왜요? ‘응답하라 1988’의 힘줄이 보이는 장면도 전혀 여심을 자극할 거라곤 생각을 못했어요. 그냥 누군가를 지켜준다는 사실 자체는 좋아하실 수도 있겠다고 생각은 했지만요. 수트 장면도 처음 봤을 때, 제가 느와르 영화를 보고 남자들에게서 느꼈던 느낌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제가 느끼는 남자의 멋스러움에 더 집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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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개봉을 앞둔 그의 영화는 이제 무려 3편이나 되기에 스크린에서 줄곧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더 킹’은 류준열에게 조금 더 남다른 작품이다. 첫 상업영화 주연작이다. 그동안 출연한 독립영화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내비친 그이지만, 상업영화는 시스템부터 시작해서, 많은 게 다르다. 그래서 조금 더 선택의 기준을 달리 하거나 신중을 기해야 했을 터. 그런데 정치적 풍자를 강렬하게 내세운 이 작품은, 하필이면(?) 가감 없이 현실을 고스란히 비추는 창이 되어버렸다. 현 시국과 완전히 맞물리며 주변에서는 우려를 표출하거나 혹은 행운이라고 일컫기도 했다.

“사실 이 영화가 처음 시나리오를 읽을 때만 해도 정치면이 그렇게 크게 나올 정도로 화두가 되지 않았어요. 굿판 같은 경우는 어떻게 이런 일이 맞아떨어지지 할 정도였으니까요. 운이라면 운이겠지만 웃자고 한 이야기인데, 사실 안타까운 일이죠. 작품을 선택할 때도 시국이나 정치 이런 부분에 대하 고민은 없었어요. 대신, 권력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흥미로웠어요. 사극을 제외하고는 권력 자체에 집중한 영화는 거의 없는 것 같았거든요. 공교롭게도 저희 제목도 ‘왕’이잖아요. 이 작품에서는 근현대 권력의 표상들을 꼽은 게 검사들이었죠. 한 나라의 지도자까지 주무를 수 있는 모습에서, 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할 때는 굉장히 좋은 선택이지 않았나 싶어요. 오히려 시국에 맞췄다면 대통령 이야기를 했지 않을까요?”

'더 킹'에 출연한 배우들은 대화를 나눌 때마다, 하나같이 모두 진취적이고 정열적인 모습을 내비쳤다. 류준열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정치 풍자를 담은 영화를 찍고 난 후라서 그런 것일까 혹은 본래 류준열의 깊이에서 나오는 진심인 것일까.

“위험한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 같아요. 이건 말 그대로 영화일 뿐이에요. 어떻게 하다 보니까,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서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거죠. 저는 영화를 영화로 읽어서 그냥 재미있게 봤어요. 영화를 선택하게 된 가장 첫 번째 이유는 한재림 감독님이에요. 제가 팬이었어요. 감독님 작품을 굉장히 사랑했고, 마침 ‘응답하라1988’이 끝날 때 시나리오가 들어왔어요. 대본을 읽기도 전에 마음을 먹었어요. 역할이 크든지 작든지 해도 해야겠다고요. 그리고 읽어봤는데, 정말 재미있었어요. 위험하다든지 그런 생각은 전혀 안 했어요. 그런 우려가 안타까워요. 이 영화도 한 쪽에 치우쳐 있거나 하는 그런 작품이 아니에요. 그저 기본적인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해요. 마지막에는 투표를 하라는 말로 직설적으로 표현이 됐지만, 그 역시도 투표만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고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대해서 그것을 지키라고 말을 하는 영화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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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함께 출연한 조인성과 정우성에게 현장 분위기나 신인 류준열과의 호흡을 물으면, 줄곧 칭찬만 쏟아냈다. 특히, 정우성은 “자기감정 위주로 상황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전반적인 통찰력을 가졌기에 그 친구 더 좋은 배우가 되겠구나 싶다”고 극찬하며 그의 미래를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선배님들이 하는 것을 흉내 내는 거죠. 저도 사실은 어색해요. 상하관계의 굴레 속에 있던 시간이 별로 없거든요. 제가 재학했던 연극영화과도 그런 이야기들이 있지만, 저는 복학을 늦게 해서 한참 후배들과 다녔어요. 그래서 오히려 그런 부분에서는 아무 생각이 없어요. 후배들도 저를 편하게 대했고, 저는 후배들한테 정말 ‘호구’같은 선배였어요.(웃음) 예의 없다고 혼내거나 하지 않았고 친구처럼 지냈어요. 그래서 그런 문화들이 익숙하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충무로로 오면서 선배들을 만나면서 어색한 건 있었죠. 하지만 선배들을 보고 배우는 것들이 정말 많아요. 인성, 우성, 성우 선배들은 이미 정평이 나신 분들이셨기 때문에 많이 배우고 감동을 받았어요. 한 번은 인성 선배님의 무리 속에 참석한 적이 있어요. 보니까, 인성 선배님이 저한테 가르쳐주셨던 것을 그대로 다른 선배님께 하고 있더라고요. 정말 많이 배웠어요.”

이제 제대로 충무로에 첫 걸음을 뗀 류준열은 들떠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연기를 이야기할 때만큼은 침착했고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말 한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깊게 고민한 뒤에 입을 열었다. 화려한 수식어가 덧붙여진 연기 철학을 지녔다기보다, 순수하고 본능적으로 이끌림을 찾아가는 배우였다.

“어떤 작품을 선택하고 들어가는 건 시간의 문제인 것 같아요. 본인이 쉬고 싶으면 쉬는 거고 달리고 싶으면 달리는 거죠. 저는 시간이 허락하는 한 재미있는 작품은 해야겠다 싶어요. 재미없으면 안 하면 되죠. 감사하게도 재미있는 작품을 계속 만날 수 있었죠. 재미가 없다면 저도 언젠가는 쉬지 않을까요? 지금은 제게 찾아온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예은 기자 9009055@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