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인터뷰┃조인성①] ‘134’분, 온전히 조인성의 힘으로 이끌고 간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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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NEW 제공 / 글 : 이예은 기자 / 디자인 : 정소정

[엔터온뉴스 이예은 기자] “촬영 당시에는 지금 같은 사태들이 일어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재치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합리적인 의심이 되어버렸네요.(웃음)”

조인성이 이토록 힘 있게, 한 캐릭터의 일대기를 그려낼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실존 인물이 아닌 가상 인물 한 사람의 일대기를 그려나가는 작품도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그 일대기의 주인공은 직접 액션을 크게 취하지 않고 관찰자로써 타 인물들을 지켜보고 있는 ‘더 킹’의 박태수다. 조인성은 박태수로 완벽히 변신해 배우로써의 저력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더 킹’은 “한국만큼 권력자들이 살기 좋은 나라가 있을까?”라는 한재림 감독의 물음으로부터 시작된 영화로, 박태수(조인성 분)가 대한민국의 절대 권력자 한강식(정우성 분)을 만나 세상의 높은 자리에 올라서기 위해 펼치는 작품이다. 대한민국의 30년 역사를 쫓으며 권력자들의 민낯을 아주 우습게, 노골적으로 들춰내어 사회를 향한 강도 높은 직구를 날렸다.

영화는 철저히 순차적으로 시간을 밟아간다. 각각의 시대에 맞도록 실제 대한민국의 사건과 인물을 보여주고, 당시 소품들을 이용해 몰입을 높였다. 덕분에, 조인성은 10대부터 40대까지 무려 30년의 세월을 연기해야했다. 아무리 베테랑 배우라도 긴 세월의 간극을 표현하는 게 결코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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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NEW 제공

“시대가 주는 모습들이 있잖아요. 보통 그런 건 자막으로 시대의 방향성이나 상징성을 보여주는데, 저희는 전 대통령 분들 사진 같은 것들을 배치해서 보여줬어요. 그렇기 때문에 굳이 30년 연기를 한다고 해서, 시대에 따라서 연기 톤을 다르게 해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전체적인 톤앤매너는 고민 했었죠. 태수가 가지고 있는 메시지의 무게는 강력하기 때문에, 그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할 지가 중요했어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표현해야하는 것에 중점을 많이 뒀어요.”

“한 사람의 흥망성쇠를 잘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게 일대기의 매력이죠. 인생을 살다보면 오르락내리락 하잖아요. 영화 결말에서도 마냥 태수의 인생이 마냥 ‘좋게 끝났다, 안 좋게 끝났다’도 아니잖아요. ‘어떻게 되었을까?’하면서 열려있는 결말이죠. 기복 있는 인생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정우성, 배성우, 류준열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함께 출연하지만 ‘더 킹’은 조인성의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는 이 작품의 주인공일 뿐만 아니라, 홀로 내레이션으로 서사를 이어간다. 더불어, 그가 출연하지 않는 시퀀스를 거의 찾아보지 못할 정도로 압도적인 분량이다.

“제가 놓치지 않으려고 했던 건 ‘관찰하자’라는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극중에서 우성이 형이 여러 사건을 이끌어갈 때, 저는 관찰하고 있죠. 사실 태수는 착한 인물이었잖아요. ‘이렇게까지 세상이 돌아가고 있었나? 나도 검사지만 이렇게까지 하는 건가?’ 하는 당황스러움까지 내포된 캐릭터에요. 저도 검찰이 가장 무서운 존재가 되기 위해 하는 여러 행위들을 보면서 굉장히 섬뜩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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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NEW 제공

올해로, 37살이 된 조인성은 ‘더 킹’에서 20대 대학생은 물론, 10대 고등학생까지 소화해야했다. 대표 동안 배우라고 해도, 세월의 흔적을 지우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조인성의 천진난만한 연기와 만화를 연상케 하는 한 감독의 연출이 시너지를 발휘해 괴리감을 지웠다.

“오히려 어린 시절 연기가 더 쉬웠어요. 실제로도 어린 시절은 당시의 제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으니까요. 지금의 상태는 몇 년이 흐른 뒤에 ‘그땐 내가 그랬구나’ 하면서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젊었을 때의 호기나 과오들을 인정하고 지혜로워질 테니까요. 그래서 어렸을 때가 더 공감하기 쉬웠어요. 현재로 넘어왔을 때의 연기는 ‘내가 만약 그 일에 닥쳤다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가정 하에 움직였어요. 그리고 어린 시절 연기는 더 늦기 전에 해야 했어요. 더 나이 들면 못할 거라고 생각했죠. 연출 자체가 만화적이고 판타지적이어서 할 수 있던 거지, 진짜 제가 교복을 입고 고등학생을 연기하면 못하죠.”

‘더 킹’에서 가장 판타지스럽게 연출되기도 하고, 권력자들을 향한 조롱을 한껏 드러낸 부분은 단연 펜트하우스 파티 시퀀스다. 가장 높은 층에서 화려하게 광란을 펼치지만 추악하고, 저급함을 춤과 노래의 향연을 통해 풍자했다. 노래 ‘난’을 열창하고 군무 마냥 춤을 추는 배우들의 모습은 상당히 우스꽝스럽다.

“춤을 배우러 5번 정도 나갔어요. 저는 제가 춤을 출 거라고 생각 못했어요. 감독님이 술자리에서 갑자기 춤을 춰야 한다고 하시길래 ‘무슨 소리야? 그런 부분이 있었어?’라고 했어요. (웃음) 전 그냥 음악이 흘러나온다고만 봤거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배)성우 형이랑 따로 배웠고, (정)우성이 형은 해외 스케줄 때문에 같이 못 배웠어요. 현장에서 리허설을 계속 하니까 합은 맞았어요. (극중에서는) 꿈같던 영광의 시대니까 연출이나 춤으로 그게 잘 표현된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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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NEW 제공

‘더 킹’은 하늘이 도왔다 싶을 정도로 현 시국과 일치한다. 극중 등장하는 ‘굿판’이나 권력을 지닌 검사들이 비리나 검찰, 정치, 언론 이 모든 것이 엮여 있는 믿기 싫은 현실과 말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시국을 노리고 개봉을 지금 한 것 아닌가’하는 의혹도 있었으나, 이 작품은 현 사태가 드러나지 않았던 순간부터 만들어진 영화다. 또한, 덕분에 ‘시국이 도와주는 공짜 홍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저희 영화가 시국과 맞물린다고 해서, 거기에 편승해서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것처럼 비춰지지 않으면 좋겠어요. 그저 저는 관객 분들이 어떻게 보실지 궁금해요. 영화 속에서 연출되는 초현실적이고 만화 같은 부분들은 어떻게 보실까요? 저희의 의도가 안 보이신다면, 팬서비스라고 생각하셔도 될 것 같아요. 지금 현실이 너무 무거우니 보고 웃으셨으면 좋겠어요. 결말 부분은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아니면, 또 권선징악이 될 테니까요. 현재 상황에서 비현실적이게 선과 악을 구분 짓는 건 교과서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싶어요. 최악이라면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하잖아요. 그 선택이 저희를 바꾸기도 하고요. 그런 면에서는 저희 결말이 권선징악보다는 현실적이지 않나 싶어요.”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예은 기자 9009055@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