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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주희 기자 / 디자인 : 정소정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생존을 위해 무언가 포기하고 살아야 했던 사람들, 제 말에 깜빡 속아 제 발에 걸려 넘어지는 인물들에 관심이 많다. ‘거인’의 영재는 생존에 속아 성장을 포기했다면, ‘여교사’의 효주는 생존을 위해 욕망을 포기했고 열등감에 속아 폭주한다. 그들이 잃어버린 자신에 대해 눈뜨는 순간 두 영화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모두가 모두에게 거짓말로 시작해서 거짓말로 인연이 되고 거짓말로 끝나는, 결국 거짓말로 얼룩진 관계들. 그들에게 남은 진심을 무엇일까?” -‘여교사’ 연출의 변-

성장을 해야 할 청년이 성장을 포기하고 대신 다른 것을 택하는 것, 그렇게 남을 속이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에게 속는 사람들, 김태용 감독은 이런 것들에 관심 있어 하는 31세의 젊은 영화인이다. 이런 감독의 저변에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깊게 자리 잡고 있을까. 김태용 감독을 눈 여겨 보는 이유는 인간의 본능을 자극해 밑바닥 감정을 결국 꺼내고야 말기 때문이다. 그가 포착한 사람들의 일그러진 얼굴은 추악하고 낯설지만, 결국 그것은 인간이 애써 감췄던, 내면이다.

김태용 감독은 지난 2010년, 밀입국 알선책 소년들을 통해 욕망과 윤리의 경계에 대해 묻는 작품 ‘얼어붙은 땅’을 통해 제63회 칸국제영화제 시네마파운데이션 부문에 초청, 국내 최연소 칸영화제 진출이라는 명예를 안았다. 또한 이 작품으로 제11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단편부문 대상 수상을 거머쥐었다.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그린 영화 ‘거인’으로 제36회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 제35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감독상 수상,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초청 등 그 해 유수 영화제를 휩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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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주희 기자 / 디자인 : 정소정

◇ ‘원 나잇 온리-밤벌레’

-줄거리

한재(박수진 분)는 게이인 척 위장하여 밤마다 인터넷 채팅을 통해 게이들을 모은다. 유흥가 호프에서 술자리를 마련한 뒤 호프집 사장과 짜고 그들을 등쳐먹으며 산다. 특히 게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귀여운 외모의 훈(장유상 분)을 애인인 척 데리고 다니며 몰카를 찍어 상대방에게 돈을 뜯어낸다. 하지만 한재는 자신에 대한 훈의 마음을 알면서도 외면한다.

-주목할 점

1. 손가락질은 성소수자를 향할 것이 아니다
2012년 단편으로 만들어진 ‘밤벌레’는 2014년 김조광수 감독의 단편 ‘하룻밤’과 함께 ‘원 나잇 온리’라는 장편 영화로 묶여 2014 서울LGBT영화제에서 프리미어로 공개됐다. 게이들이 등장하는 ‘밤벌레’에는 사회적 약자인 성소수자들을 한 번 더 공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일반인들은 성소수자들을 대상으로 범죄 행위를 하더라도 당당하다. “외로운 사람들 등이나 처먹냐”라고 따지는 성소수자를 향해 가게 주방 아주머니는 “더러운 호모 새끼들 술상 봐줬더니, 어디서 신고야?”라고 하고, 한재는 “그 정도 값은 해야지”라고 말한다.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손가락질을 하는 일반인들을 다룸으로써 상대방을 평가하는 잣대는 ‘다름’에서 비롯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2. 배우 장유상이 그려내는 훈이의 감정
훈은 자신의 마음을 외면하는 한재가 야속하다. “언제는 나 신경 썼어? 수틀리면 나 버릴 거면서 신경 쓰는 척 하지 마”라고 말하는 훈의 마음은 전혀 괜찮지 않다. ‘밤벌레’에 이어 ‘거인’까지 김태용 감독의 작품에서 연약하지만 주변사람들의 마음을 사는 데 일가견이 있는 역할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3. 연출 의도 : ‘끝까지 모르는 척’
한재는 피해자인 희섭에 의해 경찰서 가던 도중, 훈이를 버린다. 한재의 친구는 “진짜 버렸냐? 진짜 넌 개새끼다”라면서도 한재가 찾으러 간다고 하자 “뭘 또 찾냐. 너 내일 되면 까먹을 거잖아. 괜히 찾는 척 하지 마라. 너 걔 이름은 아냐?”라고 핀잔을 준다. 한재는 경찰서에서 훈을 실종신고 하기 위해 신상명세서를 쓰는데, 훈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다. 결국 한재는 자기 집 돌아와서 운다. 김태용 감독은 상대방의 마음을 끝까지 모르는 척함으로서 스스로 외로워진 한 인간의 감정을 덤덤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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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주희 기자 / 디자인 : 정소정

◇ ‘거인’

-줄거리

고등학생 영재는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이삭의 집에서 산다.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영재는 아득바득 애를 써서 이곳에 남으려고 한다. 원장아버지는 냉정하게 말을 하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책임감 없는 자신의 아버지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원장에게 마음에 들기 위해 영재는 신부님이 꼭 되겠다고 약속을 한다. 영재는 원장과 신부님에게는 살갑게 굴지만, 사실 양심의 가책 없이 후원물품을 몰래 훔쳐 되파는 아이다. 쫓겨나는 친구를 무시하다가도 친구가 자신의 약점을 알자 금세 비굴하게 태세를 변화하는 등 이기적이기까지 하다. 어느 날 아버지가 동생마저 자신이 있는 곳에 맡기려 하자 영재는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폭발하고 만다. 그동안 그는 이삭의집에서 버티기 위해 인간적인 감정을 모두 포기했지만, 결국 그곳에서 쫓겨나고 만다.

-주목할 점

1.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
영화를 보고 있으면 ‘이 대사는 직접 겪지 않고서는 나오지 못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들게끔 만든다. 이는 실제로도 중ㆍ고등학교 시절에 어른들의 보호가 없는, 보호시설에서 성장한 김태용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겼기 때문이다. 김태용 감독이 자신의 아픔을 그대로 털어놓은 이 영화는 그래서 솔직하고, 진정성이 느껴진다.

2. 순진한 척 하는 영악한 소년
영재는 후원품으로 들어오는 운동화를 훔치는데, 원장엄마는 싹싹한 영재는 손톱만큼도 의심하지 않고, 범태를 의심한다. 범태는 너무나 억울해서 울기까지 하는데, 영재는 양심의 가책도 없이 다음 날 또 훔친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신부님이 주는 성체를 경건하게 받아먹는다. 다시 이삭의집에 살고 싶어 하는 범태를 향해 영재는 “네 인생 네가 알아서 해. 같은 처지끼리 누가 누구보고 도와달라고 그래?”라고 화를 낸 후엔, 바로 성가대에서 흰 옷을 입고 방긋방긋 해맑게 웃으면서 순수하게 노래를 부른다. 범태에게 약점이 잡혀 그의 요구를 들어줘야 할 상황에서 범태가 나쁜 짓을 보는 순간, 영재는 경찰에 신고를 한 후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가증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영재의 순진함과 영악함의 간극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올 정도다. 감독의 신작인 ‘여교사’에서도 재하라는 10대 소년이 영악하게 나오기도 한다. 다만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소년이기에 영재, 그리고 재하의 순수함을 100% 거짓이라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3. 소년의 주변 인물들
어른들은 소년을 버린다. 그 속에서 자란 아이 속에는 순수함과 영악함이 공존한다. 이런 소년의 영악함에 속는 사람들과 속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그를 다그치는 사람과 위로해주는 사람이 있다.

우선 원장엄마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의심조차 않고 절대적인 믿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영재의 순수한 모습만 알고 있는 인물일 뿐이다. 반대로 원장아버지는 영재의 순수한 모습만 알고 있지만, 끊임없이 의심을 한다. 그는 “솔직히 나는 모르겠다. 다들 너한테 ‘신부님 신부님’ 하는데, 글쎄, 네가 그럴만한 인물인지, 신학교나 들어갈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내 마음 알지? 아끼니까 냉정하게 얘기해 주는 거야”라고 말을 하는데, ‘아끼지’는 않아도 ‘냉정한’ 것은 맞다. 마지막 다른 시설로 옮겨지는 영재에게 그는 “아빠라고 안 불러도 돼. 어차피 새아빠가 또 생길 텐데”라며 끝까지 적정선을 유지한다.

범태는 영재와 같은 환경을 가진 룸메이트다. 힘을 합쳐 서로를 위로할 법도 하지만, 영재는 결코 범태를 진심으로 대하지 않는다. 범태가 쫓겨나는 상황에서도 영재는 “내 입장도 생각해줘야지, 너 그렇게 나가버리면 나는 어떡하라고”라며 끝까지 이기적인 모습을 보인다.

영재가 이기적인 사람이 된 이유는 이기적인 아버지 때문이 크다. 아버지는 종교에 빌붙어 수혜 받는 것으로 먹고 산다. 그런 아버지를 향해 영재는 “아버지 손 발 있지? 남들처럼 돈 벌라고. 그렇게 사는 것 자기 아들, 아니, 자신한테 안 부끄럽냐?”고 소리친다. 영재는 아버지의 아들이 하고 싶지 않다.

영재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동생과 엄마다. 동생을 위해 뭐 하나라도 더해주고 싶어 하지만 앞에서는 거친 말만 나온다. 하지만 동생은 그의 마음을 모두 이해하고 형을 사랑한다. 엄마는 아빠와 달리 영재에게 미안해 하지만, 엄마마저 동생을 자신에게 떠넘기려고 한다. 그는 동생까지 시설에 맡겨지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을 걱정한다. 그는 “그럼 우린 어디로 돌아가? 그럼 나는 누가 책임져? 민재는 내가 책임져?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졌다고. 엄마도 별 다를 게 없구나”라고 외친다.

이런 영재의 상처를 담임선생님마저 무시한다. 담임선생님은 “학창시절에 너 같은 상처 없는 사람 어딨냐?”라며 위로인 척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말을 한다.

다행히 따뜻한 사람도 만난다. 성당에서 지원해준 과외선생님과 그녀의 엄마다. 과외선생님은 영재에게 “너가 네 말에 속지 말아라. 영재가 말 하는 것처럼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자신을 인질로 잡았을 때도 “살다보면 그럴 수 있어 일부러 그런 거 아니잖아. 너도 모르는 새 그런 거잖아”라며 위로해준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leejh@enteronnews.com / 디자인 : 정소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