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온뉴스 이예은 기자] 화려한 소프라노의 고음, 웅장한 사운드, 그리고 유령. 이 세 가지가 거론되면 단연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떠올릴 것이다. 세계 4대 뮤지컬 중 하나라고 불리는 이 작품을 재현한 영화가 12월, 뮤지컬 초연 30주년을 맞아 극장으로 다시 찾아왔다. 그리고 지금, 동시에 같은 듯 다른 유령이 무대 위에도 섰다. 올해의 뮤지컬 티켓 랭킹(인터파크 기준)1위에 빛나는 뮤지컬 ‘팬텀’이다.
영화 ‘오페라의 유령’은 1986년에 제작된 뮤지컬을 각색해 만든 작품으로, 2004년에 국내 개봉을 통해 대중과 처음 만났다. 그리고 올해 12월 15일에 국내에서 재개봉했다. 뮤지컬 ‘팬텀’은 EMK컴퍼니의 제작으로 2015년에 국내에서 초연한 이후 올해, 11월 26일부터 다시 무대에 올랐다.
뮤지컬 ‘팬텀’과 영화 ‘오페라의 유령’은 철저하게 ‘원소스멀티유즈(One Source Multi Use)’에 충실하다. ‘원소스멀티유즈’는 하나의 콘텐츠를 다양한 장르로 변용시켜 새로운 콘텐츠를 창출해내는 방식이다. 두 작품의 소스는 가스통 르루의 소설의 원작으로, 동일하다. 그러나 ‘팬텀’은 소설에서 뮤지컬로 이어져 2단계에 그쳤지만, 영화 ‘오페라의 유령’은 3단계에 걸쳐 ‘유즈’된 결과물이다. 소설에서 뮤지컬로, 그리고 그 뮤지컬을 바탕으로 영화가 제작됐다.
그러다보니, 뮤지컬 ‘팬텀’과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비교는 불가피하다. 동일한 원작으로 인해 웃픈(?) 해프닝도 발생한다. 일부 관객들이 ‘팬텀’을 ‘오페라의 유령’과 동일한 것으로 착각하고 찾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두 개는 완전히 다른 작품이다. 소설 ‘오페라의 유령’이 뮤지컬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작곡을 맡게 되고, 작곡가 모리 예스턴이 준비하던 또 다른 ‘팬텀’은 엎어지게 된다. 이후, 모리 예스톤은 ‘오페라의 유령’과는 뚜렷한 차별성을 내세워 등장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어느 캐릭터에 초점이 맞춰져 있냐다. ‘팬텀’은 유령인 남자주인공 에릭에게 온전히 집중된다. 감춰져있던 그의 유년 시절이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그가 여자주인공 크리스틴에게 끌리는 과정, 그가 처한 갈등, 그 모든 서사가 담겨있다. 반면, ‘오페라의 유령’은 여자주인공인 크리스틴에게 집중되어 있다. 에릭의 과거에 대해선 스쳐지나가 듯, 암시정도로 그친다. 두 주인공이 펼치는 ‘현재’의 비중이 더욱 크며, 크리스틴의 연인인 라울의 등장도 이야기의 한 축을 담당한다. 크리스틴의 성격 대비도 마찬가지다. ‘팬텀’에서는 크게 발랄하고, 활동적이라면 ‘오페라의 유령’에서는 여성스러운 미가 크게 다가온다.
현재 11월부터 공연 중인 뮤지컬 ‘팬텀’은 지난해 공연 연간 티켓 판매 순위 1위에 오른 것에 이어, 올해에도 1위를 지켜냈다. 인터파크 기준으로 판매 점유율 4.6%를 기록하며 탄탄한 작품임을 입증했다. 크게 사랑받을 수 있던 건 스타 마케팅의 공이 크다. 초연 당시, 이미 가요계에서 대중과 팬덤이 탄탄한 박효신을 필두로 뮤지컬계의 톱배우 류정한, 그리고 황태자 카이까지 세 명의 팬텀 캐스트가 활약했다. 특히, 박효신의 변화는 뮤지컬 팬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가요 발성을 벗어나, 폭넓은 성악 발성에 가깝게 구사하는 그의 실력은 ‘엘리자벳’ ‘모차르트’에 이어 세 번째 작품으로 확실히 뮤지컬배우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다.
올해 재연 캐스트도 마찬가지다. 박효신, 박은태, 전동석 등 티켓 파워가 보장된 남자 배우들이 출연하며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으로 원조 크리스틴으로 불리는 김소현의 새로운 도전까지 더해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팬텀의 확실한 힘은 원작의 배경이 오페라극장이라는 점을 착안해 ‘정통 클래식’에 제대로 도전했다는 것이다. 넘버가 고난이도 성악 발성을 필요로 한만큼, 크리스틴 역의 배우를 모두 성악 전공자로 캐스팅했다. 실제로 초연 당시, 제작사는 세계적 성악가 임선혜를 ‘모시고’왔다고 표현할 정도로 캐스팅에 공을 들였다. 올해 재연에도 크리스틴으로 돌아온 김순영 역시 ‘팬텀'으로 첫 뮤지컬에 도전한 성악가다.
단순히 성악 전공자를 배치했다는 것만으로 정통 클래식을 논하는 게 아니다. 발레 시퀀스에도 힘을 줬다. 기존 앙상블이 아닌 전문 발레리나를 무대로 올렸다. 김주원, 황혜민 그리고 남성 발레리노 윤전일까지 가세하며 전통 클래식의 무게를 더욱 실었다. 단순히 뮤지컬 무대가 아닌 하나의 종합 예술을 보는 느낌까지 선사한다.
뮤지컬 평론가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오페라의 유령’ 자체가 원작이 괴기소설이었다. 1920년대에 나왔었던 ‘링’이나 ‘13일의 금요일’ 같은 것들이 괴기영화로 불렸는데, ‘오페라의 유령’이 뮤지컬로 만들어지면서 로맨틱한 러브스토리로 그려졌다. 그것이 요즘 사람들의 취향에 맞았다. 이후에 여러 생산물의 형태로 만들어져서 인기를 얻고 있다고 본다”고 의견을 전했다.
이어 “‘원소스멀티유즈’라는 게 하나의 소스를 가져다가 단순히 변화만 시키는 게 아니라 적용되는 시대나 상황, 문화 그리고 국가에 따라서 폭넓고 새롭게 각색이 되는 것이다. 두 작품이 함께 대중을 만나고 있는 것은 상호 보완적인 관계다. 원래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작품을 생각하고 있던 사람들도 ‘팬텀’을 보면서 하나의 외전으로 보거나 비하인드를 찾아가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 ‘오페라의 유령’은 150만 관객을 기록했다. 지금보다 비교적 영화 시장이 활발하지 않았던 2004년 개봉 당시를 생각하면 뮤지컬 영화로써 쾌거다. 국내에서 재개봉할 정도로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는 건, 세계 4대 뮤지컬이라는 타이틀에서 오는 높은 네임밸류가 작용했다.
특히, 무대 위에서만 볼 수 있는 저명한 뮤지컬을 스크린으로 옮겨왔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다. 비용과 시간의 투자가 높은 뮤지컬에 비해 영화라는 장르로, 더 많은 대중들 앞에 나설 수 있게 됐다. 영화적 연출로 공연 연출과는 색다른 흥미를 느낄 수 있다. 더불어 출연 배우들이 직접 녹음한 넘버들은 많은 팬들의 환호를 받았다. 기존 뮤지컬 배우들에 비해 뛰어난 실력은 아니지만, 본인들의 목소리로 몰입감을 높였다.
출연한 세 배우까지 스타덤에 올랐다. 팬텀 역의 제라드 버틀러는 이후 할리우드 최고 스타로 떠올랐으며 지금은 ‘컨저링 시리즈’로 호러 장인으로 불리는 패트릭 윌슨은 당시, 로맨틱한 라울을 연기했었다. 이 당시, 젊은 패트릭 윌슨의 모습을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현재 함께 대중 앞에 나선 것은 확실히 서로에게 ‘윈윈’이다. 하나의 콘텐츠를 인상 깊게 본 대중은 자연스레 그와 관련된 콘텐츠에 관심을 보이기 마련이다. 시너지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이다. 소비자는 입맛대로 골라볼 수 있어 좋고, 생산자는 여러 색다른 시도를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극장에 가서는 ‘오페라의 유령’을 만나고, 공연장 위에서는 ‘팬텀’의 무대를 보며 둘의 차이를 찾아내는 것도 재미있는 요소가 될 것이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예은 기자 9009055@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