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잊고 싶지 않은 꿈을 꾸고 난 후, 꿈에 깨자마자 기록하기 위해 펜을 잡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 순간 생각한다. ‘내가 무슨 꿈을 꿨지?’ 빠르게 사라져 가는 이야기들을 붙잡으려고 애를 쓰지만 꿈은 단숨에 흐릿해져버린다. 사람들은 평생 그 꿈을 기억하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영화 ‘너의 이름은.’의 주인공들은 다르다.
“우리 목소리가 이대로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닿을까. 아직 만난 적 없는 너를 찾고 있어.”
시골 소녀 미츠하는 신과 인간을 잇는 무녀 집안의 장녀다. 그녀의 꿈은 다음 생에 도쿄의 남학생으로 태어나는 것. 그리고 실제 그 꿈이 이뤄지는 환상적인 꿈을 꾼다. 꿈에서 도쿄 소년이 된 미츠하는 친구들에게 자신을 3인칭으로 표현하는 실수를 하지만, 인기 많은 선배에게 데이트 신청을 받는 등 소년의 삶에 익숙해진다.
도쿄에 있는 소년 타키 역시 시골 소녀가 되는 꿈을 꾼다. 꿈을 꾸는 것 같지만, 사실 서로의 몸이 바뀐다는 사실을 알게 된 미츠하와 타키는 서로에게 글을 남겨 규칙을 정한다. 두 사람은 서로 만난 적은 없지만, ‘나’이기도 하고 ‘너’이기도 한 상대방에게 애정이 간다. 하지만 이후 몸이 바뀌지 않는다. 서로에게 전화를 걸지만 없는 전화번호다. 과연 너는 누구일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너의 이름은.’이라는 제목을 지은 이유로 “사람과 사람이 만났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서로의 이름을 묻는 것이다. 이로서 관계가 출발한다”고 설명했다.
이 영화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전작 ‘초속 5센티미터’의 연장선으로도 볼 수 있다. ‘초속 5센티미터’에서도 소년과 소녀는 서로를 잊어버리는데, ‘너의 이름은.’의 주인공들 역시 서로를 잊고 만다. 서로를 다시 찾는 것은 마치 꿈을 다시 기억해 내는 것처럼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전작과 다른 점은 주인공들이 잊어버린 것을 찾으려고 헤맨다는 것. 서로의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시공간을 뛰어넘어 펼치는 모험은 관객에게는 감동을 준다.
그 속에서 감독은 ‘인연은 반드시 이어져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것을 ‘운명순응론’으로도 볼 수 있지만, 그 운명을 찾았을 때 그를 부를지 말지는 주인공에게 달려있다. 감독은 이것을 ‘매듭’ 또는 ‘잇는다’를 뜻하는 ‘무스비(結び)’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데, 국내 버전에서는 이 단어를 해석하지 않은 채 그대로 사용할 정도로 이 영화의 핵심 단어다. 두 사람의 매개체인 끈은 꼬이고 엉키다가 모여 형태를 만들고, 다시 풀리고 이어진다. 그리고 미츠하와 타키는 기적적인 순간을 맞이한다.
정답이나 해답이 없어도 아름다운 것이 있다. 무지개의 시작과 끝, 낮도 밤도 아닌 황혼, 그 순간은 누구도 명확하게 선을 그을 수 없다. 하지만 그것들은 분명히 실재하고 우리에게 의미를 준다. 그래서 해답을 끝내 못 찾더라도 의미 있다. ‘너의 이름은.’ 역시 그 순간이 ‘무엇이었다’라는 확답을 내려주진 않지만 가슴을 뛰게 만들고 먹먹하게 만든다.
‘너의 이름은.’은 초반 코믹한 신들도 서사를 켜켜이 쌓아가다가 미스터리와 재난을 섞어 반전과 감동을 주며, 끝내는 첫사랑에 대한 아련함과 애틋함으로 관객들을 울린다. ‘빛의 마술사’로 불리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답게 수려하고 장엄하기까지 한 영상미와 하나하나 깊게 새기고 싶은 대사들, 그리고 주제를 집약해 표현한 OST까지 관객들에게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일본 현지에서는 개봉 후 관객 1500만 명 돌파, 역대 재패니메이션 2위, 일본 역대 박스오피스 4위를 기록했다. 국내에서는 오는 2017년 1월 4일 개봉한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leejh@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