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A 칼럼] 한한령(限韓令)과 K-콘텐츠, 그리고 한류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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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봉 서울산업진흥원 에스플렉스센터장

“사드 배치를 강력히 반대한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한국에서 사드가 논의되기 시작한 때부터 중국은 줄곧 반대의 견해를 취해왔다. 그리고 사드 배치가 최종 확정된 2016년 7월부터 중국은 산업, 문화, 관광 등 다양한 방면에서 중국 내에 보이는 한류를 지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벌써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 수가 지난 7월 92만 명에서 10월 68만 명으로 확연히 줄기 시작했다. 한한령의 직격탄을 직접 맞은 곳 중의 하나가 바로 ‘콘텐츠 산업’이다. 중국에서 방영되는 드라마는 모두 사전제작이 원칙인데 이미 한류스타가 출연하거나 혹은 한중합작으로 제작이 결정된 드라마 대부분이 취소되었다. 중국 기업의 한류 스타 광고 모델 교체도 마찬가지다.

중국에서 한류 사업을 하는 민간 관계자들은 사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한류 사업의 재기가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정확한 사실관계 파악이 우선인 만큼 관련 동향을 주시해야 할 상황"이라는 입장이다. 즉 사안의 전후 맥락을 파악한 뒤 그에 따라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예방책보다는 나중에 아프면 그에 맞는 약을 찾아보겠다는 것이다. 지식재산권의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중국에서 콘텐츠 하나로 한류를 주입했던 한국은 이제 새로운 카드를 준비해야 한다. K-드라마, K-팝, K-컬처를 잇는 한류 4.0의 시대를 열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첫째, 생산된 K-콘텐츠의 일회성 소비를 유의해야 한다. 이전에는 무형의 콘텐츠에 비용을 소비해야 한다는 인식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K-콘텐츠들이 일회성으로 취급되기 쉬웠고, 원 저작물에 대한 2차, 3차 부가가치 시장이 형성되기 힘들었다. K-콘텐츠들의 전파 방법이 대부분 영상 기반인 것을 생각한다면 미국의 넷플릭스 비즈니스 모델과 같이 민간 주도의 온라인 K-콘텐츠 플랫폼을 개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관계 기관, 중소기업과 연계한 K-콘텐츠 전시회를 국내외 주요 도시에서 개최하는 것도 국가 브랜드가치 향상과 경제 발전을 동시에 잡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둘째, K-콘텐츠 전략 대상 국가를 중국 이외의 국가들로 다변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일본, 중국 등을 중심으로 타겟팅된 K-콘텐츠 환경을 재편할 필요가 있다. 국수주의 문화가 꽤 팽배한 곳에서도 공중파로 한국 드라마를 방영하고 길거리에서 K-팝을 트는 국가가 많다. 동남아 오지 마을에 가도 옛날 K-드라마를 TV로 보고 있는 가정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따라서 경제제재가 막 해제된 이란, 뷰티/헬스 분야의 시장이 넓은 태국, 인구 약 1억 명의 유망 시장인 베트남 등과 같은 국가를 공략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그리고 중국에 대해서는 비교적 한중 관계에 영향을 덜 받는 지우링허우(1990년대 이후 출생 중국인)를 타깃으로 K-콘텐츠의 색깔을 바꾸는 방법도 있다.

마지막으로, K-콘텐츠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기존의 방식을 탈피할 필요가 있다. K-콘텐츠라는 것 자체가 세계 시장을 무대로 하므로 법률적, 경제적 고민이 상당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단기적 손익 계산이 중요한 대형 방송사의 콘텐츠를 기존의 체제 그대로 가지고 세계 시장에 나가는 것은 리스크가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콘텐츠의 편집과 송출 기술을 활용하여 1인 미디어, MCN, 콘텐츠 크리에이터 등과 같은 형식으로 콘텐츠의 생산과 유통을 바꿔보는 것도 또 다른 해법이 될 수 있다.

역사를 보면 문화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로마제국의 기독교 공인과 같이 전쟁에서는 승리했지만, 오히려 패전국의 문화가 자국으로 들어와 문화적으로는 지배를 당한 경우가 적지 않게 있다. 멀지 않은 과거엔 우리도 ‘일제’, ‘미제’라면 굳이 상세히 물어보지 않아도 무조건 프리미엄을 갖다 붙였던 시기가 있었다. 그리고 주말만 되면 온 가족이 모여 성우의 목소리가 더빙된 외화를 시청하기도 했다. 지금보다 더 반일 감정이 심했던 70년대에도 한국 공중파 TV에는 일본에서 들여온 만화영화가 방영되었다. 국가 간에 알게 모르게 서로 영향을 끼쳐왔고 그만큼 문화가 중요한 것이다.

이제까지는 무형의 콘텐츠가 경제의 큰 몫을 차지할 것이라는 생각이 무시되던 시대였다. 하지만 K-콘텐츠를 통해 글로벌 문화를 선도하고 나아가 K-콘텐츠라는 한 분야가 국가 브랜드, 경제, 무역 등의 타 분야에도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그런 산업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류 4.0의 포문을 잘 연다면 한한령의 위기를 넘어 K-콘텐츠는 한국의 새로운 수출 효자 상품이 될 수 있다. 또한, 제4차 산업혁명에도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도 의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