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View┃영화] ‘연애담’, 여성 퀴어 영화의 새로운 서사 그리고 관객의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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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애담' 포스터

[엔터온뉴스 이예은 기자] 올해 개봉한 ‘캐롤’과 ‘아가씨’는 두터운 팬덤을 만들어냈고, 아직도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는 대표적 상업 퀴어 영화다. ‘아가씨’는 박찬욱 감독 특유의 아름다운 미장센을 통해 두 여성의 사랑을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그려낸 것이 인기 요인 중 하나였다. ‘캐롤’은 1950년대의 풍경을 우아하게 표현하며 여성 간의 사랑을 서정적으로, 성숙하게 담아냈다.

두 영화가 큰 관심을 받은 이유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퀴어’를 주제로 했다는 점이 크다. 두 영화보다 상영관 수도, 미디어 노출도 월등히 적지만 ‘연애담’ 역시 남부럽지 않은 팬덤을 얻은 또 하나의 퀴어 영화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연애담’은 여성 퀴어 멜로극으로 미술을 공부하는 윤주(이상희 분)와 아르바이트를 하며 꿈을 찾아가는 지수(류선영 분)가 사랑을 그려나가는 내용이다. 섬세한 감정 연출과 현실 속에서 일어날 법한 갈등을 담담하게 표현해 주목을 받고 있다. 레즈비언 독립 영화 ‘바캉스’를 연출한 이현주 감독이 지휘했고, 다수의 독립영화에 출연하고 있는 배우 류선영과 이상희가 지수와 윤주로 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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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주)인디플러그 제공

12일 영화진흥위원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연애담’은 2만461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을 달리고 있다. 이는 독립영화 혹은 저예산 영화의 기존 행보와 비교하면 큰 의미를 갖는다. 올해 11월 10일 개봉한 홍상수 감독의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은 151개의 스크린 수로 시작해 12월 12일 기준, 1만 7730명 관객 수를 기록했다. 10월 13일에 개봉한 또 다른 독립영화 ‘춘몽’은 95개의 스크린 수로 시작해 한 달 만인 11월 13일에는 1만 4257명의 관객 수를 모았다. 반면, ‘연애담’은 개봉 당시 39개의 상영관 수에 불과했다.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이뤄낸 쾌거인 셈이다.

‘연애담’ 열풍은 이미 예상됐다. 정식 개봉 전 열린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경쟁부문 대상을 수상했고 제35회 벤쿠버국제영화제 용호상 부문, 제32회 바르샤바국제영화제 신인감독 경쟁 부문, 제17회 도쿄필멕스영화제와 제64회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등 다양한 영화제에 초청되어 화제를 모았다.

개봉 전부터 SNS(사회관계망서비스)을 통해 빠르게 입소문을 탄 것이 흥행의 발단이었다. 두 여성이 표현하는 사랑은 많은 사람들의 감정 동요를 일으켰고 공감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 공감은 두 종류로 엇갈렸다. ‘동성 간 사랑의 서사가 이성 간의 보통 연애와도 별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하는 관객층과 ‘오로지 여성 동성 간의 사랑이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과정과 갈등이다’로 나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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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주)인디플러그 제공

‘연애담’은 명백히 여성과 여성이 사랑하는 레즈비언 영화다. 기독교인 아버지가 건네는 결혼 압박, 동성애자를 향한 이성애자의 시선 등은 이성 간의 사랑으로 변환시켰을 때는 발현될 수 없는 갈등이다. 실제로 많은 관객들은 레즈비언 연애를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고 평가했고 ‘하이퍼 리얼리즘’으로 잘 표현된 ‘퀴어 영화’에 호응했다. 하지만 사랑에 빠져 허우적대느라 많은 것을 놓치게 되는 윤주의 모습과 가난, 20~30대라면 겪는 고민 등은 어떤 사랑에 대입해도 가능하다. 이 점은 윤주와 지수에게 공감하는 관객의 폭을 더욱 넓혔다.

독립 영화가 다양한 미디어에 노출되긴 어렵다. 그래서 ‘연애담’은 팬들과 직접 만나는 것을 선택했다.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관객과의 대화’(이하 GV)가 팬들을 고정시키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서울, 경기도, 전라도 등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관객들과 만났고 개봉 전, 각종 영화제에서 진행했던 GV를 제외하고 무대인사 형식의 미니GV까지 포함한 GV 횟수는 17번에 달한다. 이후 ‘DC인사이드 연애담 갤러리’까지 개설되면서 팬들은 한데 모여 ‘연애담’에 대한 부가적 이야기나 2차 창작물을 만들어내기까지 이르렀다. 독립 영화가 그리고 ‘아가씨’를 제외하고 여성 퀴어 영화가 DC인사이드 갤러리가 개설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팬들의 일방적인 사랑이 아니다. 이현주 감독과 두 주연배우는 철저하게 그 사랑에 보답하며, 팬들과 ‘연애’중이다. 이 영화는 2년 전에 촬영이 끝났고 배우들은 현재 다른 작품 촬영을 진행 중이다. 이에 이현주 감독은 고정적으로 모든 GV를 돌았고, 두 배우들은 동시에 참석하지 못할 시에는 번갈아 가며 관객들을 찾아갔다. 그들을 위해서 다양한 이벤트를 계속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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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주)인디플러그 제공

개봉 이틀 후인 11월 19일에는 작은 가게를 빌려 개봉심야파티를 열었다. 그 곳에서 감독 및 두 배우들은 팬들과 자유롭게 대화하고 소통했다. 더불어 GV가 끝난 뒤에는 소규모의 팬사인회를 진행하고 최다 관람객에게는 한정판 굿즈를 선물하거나 리뷰를 선별해 ‘연애담’ 로고가 적힌 소주잔을 증정하는 특별한 선물까지 준비했다. 반대로 팬들이 ‘연애담’팀을 위해 직접 이벤트를 열어주고 선물을 전달하기도 한다. 현재 지수와 윤주를 마주하고 있는 관객들에 대한 배려이자 예의였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팬처럼 퀴어 영화에 우호적이진 않다. 이전보다 개방적 시선이 확산되고 있으나, 여전히 ‘퀴어 영화’라서 겪게 되는 어려움이 있다. ‘연애담’의 경우, 개봉 전 유료 시사회를 진행하면서 악의적인 예매 취소 사건이 발생했다. 30석 이상의 좌석이 예매 되었다가 상영 직전에 돌발적으로 대량 취소가 되었던 것이다. 불미스러운 일이 지속되자 이현주 감독은 배급사 인디플러그 SNS을 통해 “영화를 만드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 극장에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다. 특히 ‘연애담’ 같은 작은 영화는 기적에 가깝다. 어떤 의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모르겠으나 작은 영화라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은 거둬줬으면 한다”고 직접 나서 호소했다. 변영주 감독도 “독립예술영화는 일반 상업영화와 달리 예매를 통해 관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타격이 더 크다. 상영 직전 예매 취소를 자제해달라”고 SNS를 통해 생각을 밝혔다.

11월 21일에 진행되었던 GV에서는 황당한 질문을 던지는 관객도 등장했다. 감독과 배우에게 커밍아웃의 여부를 물어본 것. 질문을 들은 배우들은 의아해했고, 이현주 감독은 “감독으로써 영화를 만든 것이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이 배우들은 연기를 한 것뿐이며 개인적인 프라이버시를 물어보는 것은 실례다”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여러 우여곡절을 겪고 있지만 ‘연애담’호는 순항 중이며 여전히 ‘연애담’ 팬덤은 감독과 배우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자 열심히 ‘피켓팅’(피 터지는 티켓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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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애담' 포스터

인디플러그 홍보팀 관계자는 “작은 독립영화가 크게 광고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고, 상영관을 많이 잡고 시작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감독님과 배우 분들이 무대인사나 GV를 통해서 최대한 오프라인으로 팬들과 만났다”며 “배우들이 직접 지속해서 팬들과 소통하니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도 여전히 GV를 진행 중이긴 하지만 배우 분들도 다른 촬영이나 작업이 있으시기 때문에 공개된 일정 이후에는 따로 잡힌 일정은 없다. 그래도 12월 이후까지 상영이 이어질 예정이라 일정이 협의가 되면 GV를 더 열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퀴어를 주제로 한 국내 독립 영화는 많았다. 하지만 ‘연애담’을 지속적으로 찾는 관객들이 많은 이유는, 흔히 퀴어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성 정체성’을 두고 벌어지는 신파적 갈등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연애담’은 영어 제목인 ‘아월 러브 스토리(Our love story)’에 충실했다. 누구나 겪는 연애 이야기를 담았다. 더불어 감독과 배우는 진정성을 지니고 팬들과의 소통에 힘쓰고 있으니, ‘연애담’이라는 영화의 안과 밖의 상황이 만들어낸 새로운 역사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예은 기자 9009055@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