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들의 바이오벤처 투자 금액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바이오·제약업계 최대 화두인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이 꽃피울지 주목된다.
4일 인터베스트와 제약업계에 따르면 올 11월 기준 연구개발(R&D)비 상위 10대 제약사 벤처투자 금액은 총 2197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전년(1606억원) 대비 약 36% 증가했으며, 2014년과 비교하면 무려 10배 가까이 늘었다.
제약업체 가운데 올해 타 법인 출자 자금이 가장 많은 곳은 한미사이언스다. 6월 약국 자동화 시스템 개발 업체 제이브이엠을 1291억원에 인수했다. 한미약품이 보유한 영업력을 활용, 병원·약국 자동화 솔루션 판매를 확대한다. 올해 초에는 3D 현미경 기업 토모큐브에 10억원을 투자한 데 이어 7월에는 100억원을 출자, 투자 전문 회사 한미벤처스도 설립했다.
유한양행이 총 352억원을 투자하며 뒤를 이었다. 올해만 파멥신(항체신약), 소렌토(항체신약), 제노스코(폐암 치료제), 이뮨온시아(면역 항암제), 네오이뮨테크(면역증강 단백질) 등 5개 바이오 기업에 총 352억원을 투자했다. 대부분 신약 개발을 위한 후보물질 발굴이 목적이다. 이뮨온시아는 유한양행과 소렌토가 세운 합작벤처회사로, 면역 치료 후보물질 발굴을 담당한다.
한독도 에비포스텍(진단기기), JUST-C(기능성 식품) 등에 지분 투자 형식으로 총 123억원을 투자했다. 지난달에는 일본 기능성 원료회사 테라벨류스를 211억원에 인수했다.
누적 금액 기준으로는 유한양행이 금액과 투자 기업 수가 가장 앞섰다. 현재까지 타 법인 투자금액은 총 1469억원, 기업 수는 약 13개다. 제넥신, 파멥신 등 의약품 개발 기업부터 유전체 분석(테라젠이텍스), 분자 진단(바이오니아), 화장품(코스온) 등 다양하다. 투자 목적 역시 신약 개발이 주류를 이루지만 경영 참여, 사업 다각화 등도 포함됐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신약 개발을 위한 원천 기술이 없는 상황에서 바이오 벤처 투자는 R&D 시간을 단축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평가했다.
한미사이언스·한미약품, 대웅제약이 각각 1301억원, 1040억원으로 뒤를 이었다. 제이브이엠(1291억원), 한올바이오파마(1040억원) 등 인수합병(M&A) 같은 `빅딜`이 영향을 미쳤다.
한독은 제넥신(290억원), 네오이뮨테크(10억원), 한독칼로스메디칼(10억원) 등 약 645억원을 벤처에 투자했다. 제넥신 최대 주주인 한독은 2012년부터 성장 호르몬 공동 개발을 지속 추진했다. 지난달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성장호르몬결핍증 치료를 위한 희소병 의약품 지정을 받는 등 성과도 나오기 시작했다.
부광약품(221억원), 녹십자홀딩스·녹십자(177억원), 동아에스티(131억원) 등도 백신 및 줄기세포치료제 등 다양한 분야에 꾸준히 투자한다.
제약업계 벤처투자는 자체 R&D를 둔 비효율성을 외부 투자로 해소하는 목적이 크다. 신기술, 트렌드에 민감하고 의사결정이 민첩한 벤처기업과의 협업이 효율 높다. 화학 의약품이 지닌 한계점을 바이오 기술로 해소하는 점도 투자를 유인한다. 현재까지 이뤄진 투자 사례 29건 가운데 절반 가까이(14건)가 신약 개발 협력이다.
임정희 인터베스트 전무는 “제약업계는 자체 개발과 외부 투자를 통한 아웃소싱 등으로 양분된다”면서 “매출이 큰 기업일수록 외부 투자도 활발하다”고 설명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전무는 “업계 화두이던 오픈이노베이션의 결과로 바이오 영역에 제약사를 포함한 사상 최대 민간 투자가 이뤄졌다”면서 “투자처를 잃은 자금이 기술력 있는 바이오 분야에 투자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정용철 의료/SW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