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에 총체적 위기 신호가 켜졌다. 내수 침체·수출 부진·가계부채 급등에 따른 `퍼펙트스톰`에 직면했다. `회복 불능`까지 우려되는 상황에 정부는 보이지 않는다.
내년 정부 경제정책마저 휘청거리고 있다. 청와대는 물론 총리실, 기획재정부 등 방향성을 제시할 주체가 사라졌다. 국무총리가 후보자까지 포함해 2명이고, 경제사령탑인 경제부총리도 2명인 비정상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부총리로 임종룡 금융위원장을 발탁하면서 금융위원장 자리까지 사실상 공석이 되면서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국회에서 임 내정자에 대한 원포인트 국회 인사 청문회 등을 논의 중이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여기에 내각과 수석비서관의 줄사퇴 가능성까지 나오면서 국정 혼선은 더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경제정책, 총체적 부실 우려
기획재정부는 `2017년 경제정책방향`을 이르면 다음 달 중순 발표한다. 다른 부처도 예년보다 빨리 청와대에 새해 업무계획을 보고한다. 각 부처 실무자들은 이미 관련 작업에 착수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23일 확대간부회의에서 “내년 경제정책방향 수립에 속도를 내야한다”면서 “정부가 경제 전망, 정책 방향성을 일찍 제시해 경제주체가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 투자, 일자리 창출 등 경제활동을 안심하고 영위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부총리 발언에도 불구하고 내년 경제정책은 총체적 부실이 우려된다. 경제정책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할 청와대, 총리실, 기재부가 최 사태로 휘청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책 추진 `실탄`인 예산도 당초 계획보다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정권 마지막 해라는 특성상 부처들은 신규 정책 추진은 최소화하고 기존 정책을 마무리하는데 역점을 둔다. 기재부가 발표할 경제정책방향에는 무난한 계획만 담길 전망이다. 현직·차기 경제부총리의 `불편한 동거`가 계속되고 있어 특정 판단이 필요한 과감한 정책 수립은 불가능하다.
다른 경제부처 정책 기획 담당자도 내년 경기 침체 심화를 우려하면서도 “획기적 신규 정책은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청와대가 제대로 된 경제정책 지침을 줄 것으로 보이지 않고, 새로운 정책은 시작할 여건이 아니라는 반응이다.
경제부처 한 과장은 “브리핑이나 기자간담회도 되도록 피하려는 분위기”라며 “지금 같은 상황에 누가 과감한 정책을 던지겠느냐”고 말했다.
◇기업 투자도 차질…“정치·경제문제 분리해야”
대통령 탄핵과 국정조사, 특검이 동시 다발적으로 이뤄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면서 기업 경영차질도 불가피하다. 5대그룹을 비롯한 주요 대기업들이 28년 만에 처음으로 일제히 청문회에 불려 나갈 상황이다. 미래 사업에 총력을 기울여야하는 시점에 재계는 검찰 수사와 청문회 대응에 분주하다.
공격적 조직개편은 꿈도 꿀 수 없게 됐다. 최근 인수합병(M&A)을 통해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는 삼성은 물론 주요 기업도 연말 조직개편은 최소한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기업에 경제 회복에 대한 긍정 신호를 줄 수 없다는 점에서 기업 투자계획도 차질이 예상된다.
삼성은 최근 M&A를 통해 미래 먹거리를 준비해 나가고 있지만, 연말 조직개편은 최소한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기아차도 광고 압박, 협력사 납품 청탁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불매 운동 조짐까지 일어나고 있다.
수출을 주로 하는 중견 가전업체나 항공업계는 환율변동과 정부 시책 불확실성 때문에 내년 사업계획 수립에 차질을 빚고 있다. 한 중견 가전업체는 해외 바이어가 국내 경제 우려감에 따라 계약 체결에 유보적 입장을 보이는 등의 문제를 겪고 있다. 자동차 업계는 내수 자동차 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정부 판매 지원책은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 정부는 개별소비세 인하가 6월로 끝나면서 노후 경유차를 폐차하고 신차를 구매하면 최대 143만원 세금을 깎아주는 대책을 내놓았으나, 4개월째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미래 자동차를 위한 연구개발(R&D) 정책도 추진 동력을 잃어 선진국과 격차가 더욱 벌어질 위기다.
전문가들은 정치와 별개로 경제 문제를 챙겨야 위기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 상황에서 기업에 투자를 확대하라고 얘기하기는 어렵다”면서 “정부가 안정적인 경제 환경을 조성하는 한편, 경기가 회복될 수 있다는 신호를 기업에 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추가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적극적 통화·재정 정책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성현희 청와대/정책 전문기자 sunghh@etnews.com,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