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은 오랫동안 정책상으로 보호와 육성 대상이었다. 중소기업 정책은 총사업체 수, 종업원 수, 생산액 등 여러 측면에서 빠른 성장을 보이는데 기여했다. 그러나 내수 시장에 안주하는 중소기업 양산 결과를 초래한 것도 사실이다.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는 2000년대 중반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아래에서 중소기업의 글로벌 자생 경쟁력을 강화하자는 취지로 중소기업 보호를 완화했지만 오히려 대기업이 중소기업 분야에 침투, 손쉽게 사세를 늘리는 기회로 이용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시기에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라는 국난 극복에만 초점을 맞췄다. 위기 극복 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는 더욱 크게 벌어졌고, 사회 양극화 현상이 시작되는 계기가 됐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시절부터 현재까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정부는 이러한 갈등 구조를 해소하기 위해 규제 정책에 많이 의존하게 됐다.
이명박 대통령의 MB정부에 들어서부터 친기업 정책 일환으로 대기업의 자율 규제를 유도했다. 그러나 실질 성과는 얻지 못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가 더욱 벌어지게 됐으며, 이는 규제 정책 강화 방향으로 진행됐다. 현재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 정부에 들어서는 벤처중소기업 분야에 집중 지원이 이뤄졌다. 이 역시 기존의 제조 중심 중소기업 분야에는 다소 소원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내년부터 미국은 보호무역주의로 제조업 부활을 꿈꾸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 시대가 열릴 것이다. 이는 부진한 내수 시장을 극복하기 위해 해외 진출에 나서려는 우리나라 중소기업에 넘지 못할 장벽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장벽을 넘으려면 독일 히든 챔피언을 성공 사례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독일 히든 챔피언은 독보하는 기술력으로 세계 기술 틈새시장에서 시장 지배력을 확보, 독일 경제가 어려울 때 독일을 지탱해 준 힘이 됐다.
우수한 기술력은 무역 장벽을 가볍게 뛰어넘는 장대가 된다. 우리나라 중소기업 정책도 우수한 기술력을 갖춘 중소기업 육성에 초점을 다시 맞춰야 한다.
과거 한국 경제는 대기업을 선단으로 한 중소기업 수직 계열화로 수출 입국을 활용, 경제 성장을 이뤘다. 모기업(대기업)과 수급 기업(중소기업) 간 계열화를 촉진, 분업에 의한 상호 이익을 증진시키는 중소기업계열화 촉진법이 경제 성장의 근간이 됐다. 그러나 대기업에 의한 중소기업 수직 계열화는 수출을 통한 성장의 결실을 맺기도 했지만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종속되는 부작용도 낳았다.
새로운 시대에는 중소기업에 대한 개별 육성보다 수평 계열화로 협력 집단을 구축하고, 이러한 협력 집단을 집중 지원해야 한다. 기술이 일천하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기술을 축적한 중소기업이 많이 생겨나긴 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기에는 자원과 역량에 한계가 있다. 중소기업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는 산업별로 가치사슬에 따른 중소기업 수평 계열화를 구축하고, 가치사슬의 고도화를 위해 연구개발(R&D)을 포함한 종합 육성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산업 생태계 및 가치사슬을 분석하고 가치사슬상 구성원 및 구조를 파악, 산업별·분야별 지원 정책 차별화 및 다양화가 필요하다.
수평 계열화를 이룬 중소기업 집단군에는 대기업 수준의 경영 관리 및 마케팅 능력을 갖춘 매니지먼트 전문 회사가 협력, 해외 시장을 개척하고 이익을 나누는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세계는 4차 산업혁명에 의해 맞춤화된 다품종 소량 생산 시장으로 전환될 것이다. 이런 시장 환경에서는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시장 침투에 적합하다. 중소기업 생태계 육성으로 중소기업의 기술 수준을 고도화한다면 우리나라 중소기업 제품은 시장에서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 잡아 세계 각국에 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정치 외풍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박주영 숭실대학교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 jpark@s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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