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와 자동차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보호무역 정책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다. 미국 입장에서 한국과 무역 적자가 크게 발생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주장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재검토, 멕시코산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 중국에 대한 보복 관세 등이 모두 우리나라 산업에 직격탄이 된다. 업계는 후보 시절에 밝힌 견해가 모두 현실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면서도 미국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멕시코 공장에서 생산한 TV와 생활가전 등을 미국에 수출한다. 지리상으로 가깝기도 하지만 미국과 멕시코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으로 묶여 있어 수출입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내년 취임 직후 NAFTA를 재검토할 방침이라고 밝힌 만큼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다.
트럼프는 중국산 제품에 최대 45%에 이르는 보복 관세를 매기겠다는 주장도 했다. 중국과의 정치 대립, 무역적자 심화 등이 원인이다. 이 주장 역시 우리나라에 타격이 될 수 있다. 국내 전자 업계는 생산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중국에 많은 공장을 운영한다. 이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을 미국에 수출할 경우 중국을 대상으로 한 보복 관세 적용을 피할 수 없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재검토도 부담이다. 국내 전자업계가 중국에 이은 새로운 생산 공장으로 삼고 있는 베트남이 포함돼 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많은 국내 기업이 베트남을 핵심 생산 거점으로 키우고 있어 TPP 재검토가 미칠 영향이 상당하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미 체결한 협상을 일방 파기하거나 한쪽만 유리한 조항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견해도 나온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14일 “과거에도 표를 얻기 위한 후보 시절 공약과 실제 취임 후 공약은 상당 부분 달랐다”면서도 “보호무역을 강화한다는 기본 방침은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여 미국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의 보호무역 정책에 따라 자동차 역시 영향을 받는다. 미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자동차 시장이다. 미국 자동차 정책에 따라 업계 지형이 좌우될 수 있다.
현대·기아차가 미국에 생산 시설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리스크는 남는다. 우선 멕시코에 공장을 세운 기아차가 당장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기아차 멕시코 공장은 장기 관점에서 중남미 시장을 겨냥해 설립했다. 하지만 중남미 국가 경기 침체로 미국이 주력 시장이다. 기아차는 지난 5월부터 가동하기 시작한 멕시코 공장 생산량 60%를 미국으로 수출한다.
이뿐만 아니라 트럼프가 자국 자동차 업체 지원 강화 가능성이 점쳐진다. 공장을 갖고 있는 현대·기아차로서도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이 이뤄져 자동차 관세가 부활할 경우 자동차 수출 역시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지난 10월 기준 전체 수출액은 33억7000만달러다. 이 가운데 북미 수출이 39%(13.13억 달러)에 이른다.
현대·기아차 북미판매량의 약 46%는 한국에서 생산돼 수출된다. 현대·기아차는 물론 한국지엠과 르노삼성 수출도 타격을 받게 될 전망이다. 르노삼성은 닛산의 북미 수출용 로그를 부산에서 생산해 수출하고 있으며, 한국지엠도 쉐보레 스파크 등을 생산해 수출한다. 이들은 공장 가동을 위해 해외 수출 모델을 들여와 국내에서 생산하는 경우다.
북미 수출이 줄면 자동차 업체 공장 가동률은 물론 후방산업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 현대기아차는 현지 생산을 위한 추가 투자 부담도 늘어난다. 이 때문에 자동차 업체는 트럼프의 공약 수정 향방에 예의 주시하고 있다.
트럼프의 석유 산업 지원 의지에 따라 친환경차 시장 성장이 둔화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친환경차 지원 정책이 줄어드는 가운데 온실가스 규제를 맞추기 위해서는 친환경 자동차 판매량을 늘려야 하는 업체들로서는 부담이 커질 수 있다.
권건호 전자산업 전문기자 wingh1@etnews.com, 문보경 자동차 전문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