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분석]공공기관 정보통신공사 분리 발주 외면〈중〉

정보통신공사 분리 발주 요구가 거세지만 정부는 책임 회피에만 골몰하고 있다.

정보통신공사 분리 발주를 둘러싼 부처별 입장이 서로 달라 법 실효성 논란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관련법의 명확한 적용으로 공사 전문성을 확보하고 중소 전문 공사 업체를 보호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분리 발주 심의하는 `중건위`…해결사 역할 가능한가

공공기관의 정보통신공사 통합 발주 논란은 300억원 이상 대형 공사에 집중된다.

발주자인 공공 기관이 사업을 공고하기 이전에 국토교통부 중앙건설기술심의위원회(중건위)가 개입한다.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79조에 따르면 총 공사비 추정 가격이 300억원을 넘으면 중건위가 공사 입찰 방법이 적합한 지를 심의한다. 300억원이 안되더라도 발주 기관이 통합 발주(대안 입찰이나 일괄 입찰)로 입찰하려면 중건위의 심의를 받는다.

중건위가 공공 기관의 건설 공사에서 정보통신공사를 분리 발주할 지, 통합 발주할 지 명확하게 가려내면 잡음 발생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중건위의 심의가 공공 기관 편의성을 봐줘 통합 발주를 대부분 인정해 준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일각에선 중건위의 심의 자체가 유명무실하다는 의견도 내놓는다.

업계 관계자는 “건설·건축에 전문성을 갖춘 중건위가 정보통신 공사의 분리 발주 중요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발주 기관(공공 기관) 입장에서 입찰 내용을 심의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정보통신 공사 업계는 중건위가 정보통신 공사 발주를 심의할 수 있는지 법제처의 해석도 요청했다. 중건위의 심의 기능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법제처는 “발주 기관은 정보통신 공사의 경우 다른 공사와 일괄 도급(통합발주)할 수 없다”며 `중건위도 정보통신 공사를 일괄 입찰하는 방법으로 집행하는 내용을 심의할 수 없다`는 취지로 해석했다. 정보통신 공사 심의와 관련해 중건위의 역할을 제한한 셈이다.

하지만 `정보통신 공사 분리 도급의 예외 사유에 해당하지 않으면`이라는 전제 조건을 달아 논란의 여지를 남겨 뒀다. 결국 발주 기관이 신공법, 하자 책임 명확화, 비밀 공사 등을 이유로 분리 발주 예외 대상이라고 주장하면 중건위는 심의 권한을 유지한다는 의미다.

◇발주기관과 중건위는 책임 `핑퐁 게임`

정보통신 공사를 분리 발주하지 않은 공공 기관들의 주장은 한결같다. 중건위가 공사 입찰 방식을 적합하다고 의결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부산통합청사 신축공사`를 통합 발주(실시설계 기술제안입찰 방식)한 한국자산관리공사는 정보통신 공사 업계의 반발에도 “중건위에서 입찰 방법을 의결받았다”고 밝혔다. 해당 공사는 10월 24일 발주돼 부산·울산 등 경남 지역 정보통신 공사 업체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대전도시공사도 “지방건설기술심의위원회에서 입찰 방식이 결정된 사항”이라며 `갑천지구 3BL 분양아파트` 공사를 통합 발주로 진행하고 있다. 지방건설기술심의위원회는 중건위와 유사한 역할을 담당한다. 지방자치단체계약법에 따라 지방 건설 공사 입찰 방식을 심의한다.

결국 공공 기관은 중건위에게 면죄부를 받았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통합 발주로 일괄 입찰해도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중건위는 오히려 발주 기관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 국토교통부 중건위는 단순한 심의 기관으로, 사업 입찰 방식의 타당성만 본다는 주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발주 기관의 요청에 따라 발주 방식을 심의하는 수준이지 정보통신 공사의 분리 발주를 강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정보통신 공사의 분리 발주가 옳은지 예외 대상이 되는지는 발주 기관이 판단하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자기 권한 밖이란 의미다.

중건위가 심의해 발주 예정인 국회스마트워크센터, 부산통합청사, 대구정부통합전산센터 공사도 “사업 특성, 공기 단축 필요성, 신기술·신공법 등 적용의 필요성을 다각도로 검토해 각각의 입찰 방법으로 의결한 사항”이라고만 밝혔다. 발주 기관의 주장과 맥락이 같아 정보통신공사법을 외면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정보통신공사협회는 “중건위는 정보통신 공사 등 법률이 정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사항도 심의함으로써 월권을 하고 있다”면서 “발주 기관도 법률 준수보다는 자신의 입찰 관련 업무의 편의성과 확인할 수 없는 특별한 목적으로 통합 발주 방식을 강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행자부·미래부 `원칙으로는 정보통신공사 분리 발주지만…`

행정자치부와 미래창조과학부는 공공 기관이나 공기업이 발주한 몇몇 공사를 사례로 들어 정보통신 공사 분리 발주를 찬성하는 입장이다. 지방의 한 도시공사가 통합 발주한 아파트 공사를 예로 든 행자부는 “정보통신공사업법에 따라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 없으면 통합 발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보통신 공사의 분리 발주는 관련 법령 소관 부처인 미래부가 관여해야 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미래부도 정보통신공사가 분리 발주돼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공공 기관이 통합 발주로 입찰을 진행할 때 심의하거나 분리 발주를 강제할 권한은 없다. 마땅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 부처마다 법령을 두고 입장차가 조금씩 다르다”면서 “분리 발주 원칙 자체가 잘 적용되지 않는 이유도 모호한 `구멍`이 많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앞으로 법 해석을 둘러 싼 논란이 확대될 여지도 남았다. 정보통신 공사 업계는 정보통신공사업법의 분리 발주 원칙을 지키자면서 법 대응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법 적용을 명확히 해야 정보통신공사업법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면서 “전문성을 갖춘 정보통신 공사 업체들을 살리기 위한 정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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