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녹색기후기금(GCF) 핵심 역할에서 밀려나고 있다.
국내에 사무국을 운영하고 있고 우리나라가 1억달러 공여를 약속했음에도 정작 `실익`은 없다는 지적이다. 수출입은행은 GCF 사업을 발굴·추진하는 `이행 기구` 승인이 좌절될 위기다. GCF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이사회에서 한국의 발언권은 아예 없어졌다. 한국인 사무총장 배출도 실패했다. 정부가 GCF 대응 체계, 사업 전략을 대폭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3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수출신용기관(ECA)의 GCF 참여를 미국이 강력 반대, 수출입은행(수은)의 이행 기구 승인이 불발될 상황이다.
자국 수출을 지원하는 성격의 ECA가 GCF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게 미국의 주장이다. 올 하반기에 열린 두 차례 GCF 이사회에서 중국 등 개발도상국들의 이견에도 미국은 완고한 입장을 보였다. 수은은 10월 이사회에서 아예 이행 기구 승인을 신청하지 않았다.
기획재정부는 ECA 관련 논의 상황을 지켜보기 위해 `보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다른 부처 관계자는 “사실상 수은이 GCF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거절당한 것”이라면서 “수은의 GCF 이행 기구 도전은 이것으로 끝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수은은 국내 기관 가운데 처음으로 지난해 6월 GCF 이행 기구 승인을 신청했다. 12월 개최되는 이사회에서 승인이 거절되거나 신청을 자진 포기하면 1년 반의 노력은 허사가 된다. 1차, 2차 심사를 통과하고 이사회에서 최종 탈락하는 첫 사례로 오명을 남기게 된다.
수은에 이어 지난해 7월 이행 기구 승인을 신청한 산업은행은 1년이 넘도록 2차 심사도 통과하지 못했다. 12월 이사회에서 후보로 올라갈 수 있을지조차 미지수다.
이에 따라 연내 한국 GCF 이행 기구 탄생은 사실상 물 건너간 모양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새롭게 이행 기구에 도전하지만 빨라야 내년 승인이다. KOICA 관계자는 “이행 기구 신청을 위한 작업을 이제 착수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국내 이행 기구가 없어 정부는 부득이 해외 기관과의 협력을 늘려 가고 있다. 한국 모델이 반영된 GCF 사업은 총 두 건이다. 각각 페루환경보호기금(PROFONANPE)과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이 주도한다. 두 기관 모두 GCF 이행 기구다.
GCF 정책 결정에서도 우리나라의 입김은 약해지고 있다. 한국은 24개 이사국에 포함되지 못해 이사회에서 발언권이 없다. 이사국을 보조하는 대리이사국 자리마저 지난해 몰디브에 빼앗겼다. 10월 이사회에서 한국인 GCF 사무총장 선임이 기대됐지만 결국 하워드 뱀지 호주국립대 기후변화연구소 겸임교수가 선출됐다.
전문가들은 GCF 대응 체계를 대폭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업계 관계자는 “사무국이 한국에 있을 뿐 GCF는 결코 우리나라 기구가 아니다”라면서 “글로벌 기준에 따라 이행 기구 신청을 준비하고 사업을 유치할 수 있도록 정부 지원 체계를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 조정형 에너지 전문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