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사리 기술개발 투자에 나서지 않던 금융 계열사와 금융투자업계가 블록체인 도입에 먼저 나선 것은 블록체인이 금융 거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블록체인 기술 핵심은 `분산`이다. 별도 인증기관 없이 블록체인에 참여하는 서비스 주체가 직접 금융정보를 관리할 수 있다. 기관이 수행하던 거래, 청산, 결제, 기록보관 등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 지급결제 절차가 대폭 생략된다. 비용과 업무 절차가 줄게 되는 셈이다.
블록체인 도입은 기존 중앙 관리기관 역할을 크게 약화시킬 전망이다. 블록체인 도입이 우선 거론되는 분야도 장외채권매매, 거래소 스타트업 마켓(KSM) 등 중앙 관리기관의 역할이 적은 분야다.
현행 장외채권 매매는 거래소 시장을 통하지 않고 회원사 간 거래로 이뤄진다. 채권매매 게시판에 호가를 올리면 이를 매도자와 매수자가 메신저를 통해 협의하는 구조다. 8월에는 채권거래 딜러들이 사용하던 야후메신저 서비스가 종료되면서 몰려든 이용자들로 인해 코스콤이 운영하던 프리본드 메신저가 다운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금융투자업계가 블록체인에 관심을 갖는 것도 이런 시스템 운영 상 각종 문제와 계약 체결 뒷단에서 벌어지는 결제 장부 작업으로 발생하는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기대에서다.
기존 중앙관리기관도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예탁결제원은 7월 글로벌 블록체인 프로젝트인 하이퍼렛저(Hyperledger)에 참여했다. 코스콤도 협의매매 블록체인 개념검증(POC) 결과를 바탕으로 내년 블록체인 거래 플랫폼을 구축할 계획이다.
중앙기관의 이런 움직임을 일선 업계는 반기지 않는 분위기다. 금투협의 블록체인 POC 과정에 코스콤은 참여하지 않았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블록체인 도입으로 중앙기관의 역할이 크게 줄어든 과정에서도 여전히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 하고 있다”며 “2018년 도입되는 전자증권법에도 여전히 등록 기관을 남기도록 규정돼 있어 추후 블록체인 상용화 단계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제업무 관련 담당 기관인 금융위원회 조차도 이제서야 블록체인 관련한 입장을 정리하고 있는 단계다.
중앙기관들은 국제 표준을 따라야 한다는 입장이다. 코스콤 관계자는 “국제적으로 표준화와 기술주도권 확보를 위한 경쟁이 한창”이라며 “국제 글로벌 표준이 나오면 표준에 맞는 플랫폼을 만들어 비즈니스를 선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유신 서강대 교수(핀테크지원센터장)는 “블록체인 도입은 전자금융거래법이나 각종 감독규정 등 중앙 집중 방식으로 구성돼 있는 자본시장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게 될 것”이라며 “정부와 민간은 서둘러 블록체인 연구와 금융결제에 대한 철학 전반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