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재개된 국가 스마트그리드 원격검침인프라(AMI) 구축 사업의 장비 공급 주도권을 전력선통신(PLC)칩 업체들이 휩쓸었다. 반면, 2010년 이후 세 차례 진행된 사업에서 전통 스마트그리드 업계 강자는 대거 탈락했다. 최저가 입찰방식에 따른 저가입찰에 유리했기 때문인데, 앞으로 남은 약 2000억원 규모 물량도 PLC칩 업체 위주로 공급권을 따낼 전망이다.
16일 한국전력에 따르면 최근 실시한 `200만호 AMI 구축 사업`에서 AMI용 데이터집합처리장치(DCU)·모뎀 분야 각각 3·5개 권역 입찰에서 AMI 핵심 부품인 PLC칩 업체 장비가 전부 낙찰 받았다. 8개 권역별 선정 업체는 중복사업자를 포함해 총 6개지만, 실제 장비 공급 업체는 PLC칩 제작사 아이앤씨테크놀러지·인스코비·씨앤유글로벌 세 곳이다.
지난달 실시한 한전 DCU(DCU 2개·브릿지 1개) 입찰에서 KT(공급사 아이앤씨)·아이앤씨·씨앤유글로벌이, 이달 초 모뎀 분야에는 인스코비·우암코퍼레이션(공급사 인스코비)·씨앤유글로벌·아이앤씨·스맥(이아앤씨)가 낙찰됐다.
이에 아이앤씨는 DCU과 모뎀 분야에 각각 두 곳에 장비를 공급하게 되면서 120억원 이상 매출을, 씨앤유글로벌과 인스코비는 각각 60억원, 40억원 실적을 확보하게 됐다. 반면 SK텔레콤을 비롯해 매번 사업에 이름을 올렸던 LS산전·한전KDN·누리텔레콤, 비츠로시스 등 스마트그리드 기업은 모두 떨어졌다.
최저가 입찰방식으로 진행되면서 완성품 업체보다는 가격경쟁력에 유리한 부품업체 위주로 시장 주도권이 돌아섰다는 평가다. 더욱이 한전은 최저가 입찰로 당초 책정한 사업 예산보다 두 배 가량의 돈을 남기게 됐다. 실제 한전은 올해 DCU 구매 예산에 235억원을 배정했지만, 실제 구매비는 120억원 수준이 됐다. 지난 2013년 입찰에서 대당 50만원 가량하던 DCU 장비 가격이 올해는 27만원으로 절반가량 떨어졌다. 모뎀도 마찬가지다. 올해 90만5000대 모뎀 물량에 137억원을 배정했지만 이번 사업 평균낙찰률은 62.7%로 실제 구비비는 86억원이 될 전망이다.
이에 스마트그리드 업계는 설자리를 잃고 있다는 불만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2020년까지 실시하는 전국 2194만호 AMI 구축이 최저가입찰로 진행됨에 따라 입찰 경쟁은 원가 수준까지 내려갔다”며 “앞으로 이들 칩 업체로 부터 싼 가격의 장비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 한전 AMI 입찰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2016년 한국전력 AMI 구축 사업 장비 낙찰 현황 (자료:한전·업계 취합)>
박태준 전기차/배터리 전문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