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일명 김영란법)이 미약하던 소비 불씨마저 꺼버렸다. 김영란법 시행 직후 유통업·요식업·농축수산업을 중심으로 소비가 급격히 위축됐지만 정부는 여전히 “더 지켜보자”며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4일 김영란법이 시행 일주일째를 맞은 가운데 사회 곳곳에서 소비 급감이 현실화 됐다.
직격탄을 맞은 분야는 식당·주점 등 요식업, 화훼·과수 등 농축수산업, 건강식품업, 유통업 등이다.
공무원, 공기업 직원은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외부 식당 방문을 줄였다. 주로 선물용으로 판매되는 관상용 난 등 화훼 작물, 홍삼 등 건강식품 판매업도 최근 일주일 사이 매출이 크게 감소했다. 골드만삭스는 김영란법 시행으로 이마트 등 주요 유통업체 내년 순이익이 종전 전망치보다 평균 11%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대전에서 홍삼 제품을 판매하는 자영업자는 “지난달 추석을 마지막으로 판매가 급격히 줄고 있다”며 “김영란법에 대응한 상품을 내놨지만 마진이 적을 뿐 아니라 고객 반응도 시원치 않다”고 말했다.
BC카드 빅데이터센터는 김영란법 시행 직후인 9월 28~29일과 4주 전 같은 요일(8월 31일~9월 1일) 법인카드 이용액을 비교했는데 요식업종은 8.9%, 주점업종은 9.2% 감소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음식업, 골프업, 소비재·유통업 등이 타격을 받아 연간 11조6000억원 경제적 손실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지난달 29일 시작한 `코리아 세일 페스타`가 위축된 소비심리를 보완할 것이라고 기대할 뿐 별도 대책 마련에 소극적이다.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은 지난달 김영란법 시행 전 소비 침체 우려 지적에 “단기적으로는 특정산업 등을 중심으로 부정적 영향이 우려되는 건 사실”이라면서 “경제 전반에 영향을 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최 차관은 4일 기자간담회에서도 비슷한 입장을 밝혔다. 최 차관은 “전반적으로 카드 승인액은 변화가 없지만 요식업 중심으로 매출액이 감소되는 게 관찰된다”며 “2~3주 정도 데이터를 봐야 영향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아직 불확실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정 부분에 영향이 있다면 대책을 검토할 여지가 있을지 모르지만 아직은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 처방이 늦어지며 소비는 4분기에도 침체가 지속될 전망이다. 8월 소비는 폭염 영향으로 냉방용 가전기기 판매가 늘며 반짝 증가했지만 9월부터 다시 부진이 예상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9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01.7로 8월보다 0.1P 떨어졌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발표한 10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100을 하회한 96으로, 여전히 경기를 부정적으로 전망하는 기업이 많았다.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