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우의 성공경제]<44>선발주자 그들은 누구인가(2) 덴마크 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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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는 덴마크의 빌룬이라는 가난한 농촌 마을에서 시작됐다. 그 마을 목수 출신인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이 `잘 놀자`라는 `leg godt`의 첫 두 글자를 조합해 레고라는 회사 이름을 지었다. 회사명에 반영됐듯 `아동의 성장에 자신의 삶과 회사를 바치겠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레고는 한 세기 가까이 혁신을 지속하며 오늘날 가장 존경받는 기업이 됐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창업 초기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아내의 사망과 재혼, 어린 아들 넷의 육아, 2차 세계대전, 공장 화재 등 너무 많은 좌절을 겪으며 창업자가 거의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1944년 잿더미 위에서 새 출발을 다짐한 창업자 올레 키르크는 조립라인식 생산 공장을 세웠다. 이때 창업자는 공장만 세운 것이 아니라 `미래의 건설자들`을 섬기고 `최고만을 만든다`는 두 가지 원칙도 함께 정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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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상무가 된 2세 고트프레드는 영국 발명가 발명품인 `자체 결속 블록`에 관심을 두고 10년 동안 레고 블록을 위한 실험을 반복한다. 그러나 여전히 결속력에 문제가 있어서 1950년대 초반까지 레고 블록은 기껏해야 전체 매출의 5~7%에 그쳤다. 레고 블록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실험을 통해 1958년 특허로 등록됐고, 마침내 아이들이 무엇이든 상상한 모양으로 쌓을 수 있게 해 주는 장난감으로 재탄생했다.

고트프레드는 확실한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작지만 상상력을 제한하지 않은 크기, 합당한 가격, 단순·튼튼하고 풍부한 변화 제공, 남·녀 아동 및 전 연령대에 재미 제공, 유통 용이성 등. 그는 이들 원칙을 기준으로 200여 가지에 이르는 나무 및 플라스틱 제품으로 구성된 폭넓은 대안을 검토, 마침내 돌기와 원통으로 결속하는 현대식 블록 개발에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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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더 나아가 이 블록에 집중하기 위해 당시 매출액 90%를 차지하는 나무 장난감 제조를 과감하게 포기했다. 이와 함께 최초 구매를 결정하는 유통 업체를 적극 지원하고 판매 영역을 서유럽에서 미국, 아시아, 호주, 남아프리카 등으로 넓혀 나가면서 시장 판도를 신속하게 바꿔 나갔다. 2대에 걸친 창발 혁신의 사이클은 이렇게 완성됐다.

그 결과 1970년대 초 레고 그룹은 빌룬 본사에 1000명의 직원을 두고 덴마크 전체 수출에서 약 1%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그러나 혁신은 계속해서 요구됐다. 이후 진부해진 제품 라인업, 크리스마스 매출 부진 등 심각한 정체기를 맞이한다. 이 정체기를 돌파할 혁신은 3세대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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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창업자 손자인 키엘드가 31세 나이로 사장에 임명됐다. `레고의 스티브 잡스`로 불릴 정도로 그는 197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5년마다 거의 두 배 규모로 레고 그룹을 급속 성장시켰다. 그는 회사 이름을 다듬고 재정립함으로써 `미래 건설자들을 자극하고 계발한다`는 회사 목표를 명확히 했다. 또 앞 세대의 경험과 같이 그 역시 제품마다 수년 동안 실패한 실험을 견뎌 내면서 베스트셀러들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와 레고 그룹은 급속한 시장 변화에 뒤처지면서 느린 회사가 됐고, 역동성과 즐거움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긍심과 자족감에 사로잡힌 나머지 무절제한 혁신으로 파산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다행히 레고 그룹은 또다시 개혁에 성공, 지금은 강력한 혁신 기업으로 거듭나 있다.

이런 레고 사례는 세대를 잇는 끈질긴 실험이 혁신을 낳는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하나의 포괄된 야심에 찬 전략보다 끊임없는 실험으로 시장 판도를 바꾸는 혁신이 창출된다는 것이다. 레고 그룹은 수많은 실험으로 끈기 있게 건져 낸 기회에 베팅함으로써 세대를 넘어 선발 주자 위치를 이어 간다.

이장우 경북대 교수·전자부품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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