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나온 사람들`
삼성전자에 사표를 내고 스타트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있다.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삼성전자를 나와 모든 걸 새롭게 시작하는 창업을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무모한 도전`으로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 열정과 비전으로 똘똘 뭉친 그들의 눈빛은 누구보다 빛났다.
9월 초 독일 베를린에서 개막한 유럽 최대 가전전시회인 국제가전박람회(IFA 2016)에 참가해 세계무대에 데뷔한 삼성전자 벤처기업 육성 프로그램 C랩 스핀오프 기업 대표들과 독일 현지에서 만나 생생한 창업 스토리를 들어 봤다.
강성지 웰트 대표
신창봉 모픽(MOPIC) 대표
이종인 스케치온(SketchOn) 대표
최현철 이놈들연구소 대표
-삼성전자를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되는 게 바로 삼성 `스핀오프` 기업이다. 어떤 아이템으로 창업했나.
△강성지 웰트 대표:세계 최초 건강관리 스마트벨트다. 웰트(WELT,Wellness Belt)는 착용하고만 있어도 사용자 허리둘레, 걸음 수, 앉아 있는 시간, 과식 여부 등을 감지해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알려 준다. 벨트만 착용하면 생활 습관, 건강 상태를 파악해 일상 속에서 편리하게 건강을 관리하도록 돕는 벨트다.
△신창봉 모픽(MOPIC) 대표:모바일 기기용 무(無)안경 3D 커버가 창업 아이템 핵심이다. 이것을 이용해 입체 영상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도 개발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 씌워서 케이스처럼 사용하다가 모바일로 3D 영상을 보고 싶을 때만 전면으로 돌려서 끼우면 된다. 가상현실(VR) 기기, 전용 안경 등 보조 도구가 없이 모바일 기기에서 3D입체 영상을 볼 수 있어 사용 편의성이 아주 높다.
△이종인 스케치온(SketchOn) 대표:피부에 가볍게 문질러 원하는 그림을 바로 그려내도록 개발한 신개념 프린터 `프링커`가 핵심 아이템이다.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콘서트 같은 행사 입장 도장, 수영장 입장권, 축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 가능하다. 어떤 문양이든 스캔해서 바로 몸에 새길 수 있다는 특징으로 반응이 뜨겁다. 인체에 무해한 화장품 소재로 클렌징 도구만 있으면 바로 지울 수 있다.
△최현철 이놈들연구소 대표:손가락 끝을 귀에 대면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는 스마트 시곗줄 `시그널(Sgnl)`을 선보이게 됐다. 삼성 기어, 애플 워치와 같은 스마트 시계뿐만 아니라 다른 일반 시계와도 연결해 사용할 수 있다. 시계를 착용하지 않는 사람은 제품에 포함한 체결부 액세서리를 연결해 스마트 밴드로도 활용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창업을 하게 됐다.
-삼성전자를 나오는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창업은 어떤 계기로 하게 됐나.
△강성지 대표: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병원에서 근무한 의사 출신이다. 삼성전자에 입사해 웨어러블 등 헬스케어 분야를 연구하면서 아이템을 생각하게 됐다. 스마트밴드나 웨어러블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사용 편의성이 높아야 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보통 남성들이 매일 착용하고 다니는 벨트에 이를 적용하자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분명히 시장에서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확신했다. 이 확신을 계기로 창업을 결심하고 스핀오프를 결정했다.
△최현철 대표:삼성전자 DMC연구소 재직 시절에 스마트워치가 출시됐다. 주변 동료가 스마트워치로 통화하다가 통화 내용이 주변 사람들에게 들리는 걸 봤다. 앞으로 스마트워치를 비롯한 웨어러블 통화가 더욱 활성화될 텐데 프라이버시 차원에서 사용자만 들리는 통화는 필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고민 끝에 이 아이디어를 삼성 벤처 육성 프로그램인 C랩에 지원했고, 좋은 평가를 받았다. 삼성을 나와 시장에서도 충분히 성공 가능성과 승산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 아래 창업을 결심했다. 이놈들연구소는 C랩 1호 스핀오프 기업이 됐다.
△이종인 대표:우리 아이템은 2010년 삼성에서 신사업 과제로 추진한 아이디어의 하나다. 관련 부서를 꾸려서 이를 제품, 서비스화해보자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여러 판단 끝에 이 아이템은 삼성의 업(業)과 맞지 않다는 최종 결론이 났다. 스핀오프해서 새로운 창업을 하는 것이 더 낫겠다고 판단했다. 함께 창업한 팀원과 C랩 2기에 지원해 프로토 타입까지 완성해 보니 시장에서 충분히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아내 등 가족을 설득하는 과정이 있었다. 삼성에서 나올 당시 부장이라는 직급이었는데 오랜 기간 대기업에 몸담고 있다가 창업하는 게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하지만 핵심 창업 아이템에 대한 확신, 팀워크와 비전으로 힘을 얻어 새로운 길을 걷게 됐다.
△신창봉 대표:삼성 DMC연구소에서 3D 입체영상 분야를 연구하며 여러 시도를 했다. 모바일 기기에서 간편하게 3D영상을 볼 수 있는 우리 창업 아이템은 삼성에서 사업화하기 어렵지만시장에서 분명히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가능성을 확신했다. 수많은 콘텐츠가 모바일을 통해 소비되고 있는 시점에서 꼭 모든 영상을 3D로 볼 필요는 없지만 분명 3D로 보고 싶어 하는 영상이 분명 존재한다는 점을 간파했다. 거창한 글라스나 보조 도구 없이 어떻게 하면 가장 쉽고 저렴하게 모바일로 입체 영상을 볼 수 있을지를 연구했다. 아이템에 대한 확신이 아주 높았기 때문에 스핀오프 때 주저함이 없었다.
-`삼성전자` 출신이라는 이점은 무엇인가.
△최현철 대표:창업을 하면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해내야 한다. 삼성이라는 거대한 테두리에 있을때와는 정말 다른 세계다. 하지만 삼성 출신 벤처기업이라는 점은 여러모로 많은 이득이 있다. 일단 세계적인 ICT 기업 삼성전자에서 몇 년 동안 근무했다는 사실만으로 투자자 등 상대방은 신뢰감을 갖는 것 같다. 삼성벤처투자에서 시드머니를 투자한 것뿐만 아니라 네트워크 등 다방면에서 도움을 받는다. 든든한 지원군이다.
△신창봉 대표:동감한다. 삼성에서 오랜 기간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 굉장히 높다. 스타트업은 초기 세팅이 매우 어렵다. 하지만 삼성의 지원과 초기 자금 지원 등 상당한 분야에서의 전폭 지원으로 우리가 사업 아이템 개발에 몰두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조성해 줬다.
△이종인 대표:이를테면 삼성에서 스마트폰을 하나 만들려고 할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지 셀 수도 없다. C랩 2기 시절 `프링커` 프로토 타입 제품을 만들 때 하드웨어 개발자 1명, 앱 개발자 1명, 소재 개발자 1명, 디자이너 1명 등 5명이 이 제품을 완성해 냈다. 삼성 재직 시절 각자의 분야에서 하나의 제품이 완성하기까지 들인 수많은 노력과 공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삼성 출신으로서 어디 내놓아도 자신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강성지 대표:웰트는 단순한 스마트 헬스케어 벨트를 넘어 응용할 수 있는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자세히 말할 단계가 아니지만 각종 건강 관련 부가 서비스 등을 만들어 낼 계획이다. 건강이라는 것을 `사후관리`가 아니라 스마트 벨트를 통해 예방하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시대를 만들어 낼 것이다.
△이종인 대표:우리 기업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건 `펀(FUN)`이다. 즐거운 축제나 행사에서 더 큰 재미를 주기 위해 프링커를 활용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향후 프링커를 통해 사회에 더 이로운 일을 할 수 있는 다양한 아이템을 생각하고 있다. 이를테면 병원에서 환자 팔뚝에 바코드 형식으로 오늘 맞아야 하는 처방, 먹어야 하는 약 등을 표시해서 좀 더 오류 없이 환자 관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아이템의 하나다. 기업간전자상거래(B2B) 분야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더 많은 기회를 잡고 싶다.
△최현철 대표:시그널을 공개하면서 제품 양산을 위해 킥스타터 펀딩을 시작했다. 예상보다 훨씬 더 좋은 성과를 보였다. 앞으로 시그널 공식 론칭과 함께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 중국 등 글로벌 시장에서 시그널이 의미 있는 성과를 내기 위해 주력할 계획이다. 많은 전문가와 사용자 의견을 바탕으로 더 좋은 제품을 선보이기 위해 집중할 것이다.
△신창봉 대표:스크린이 있는 어떤 곳이든 우리 제품을 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앞으로 B2B 시장, B2C 분야를 아울러 제품을 론칭하고 시장 안착에 성공하는 것이 목표다. 최종 목표는 3D영상에 특화된 유튜브 같은 플랫폼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베를린(독일)=박소라기자 sr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