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주택용 전기료 누진제가 한시적으로 경감됐지만, 전기요금 개편 논의는 이제부터가 사실상 `본게임`이다. 정부는 불합리한 구조 손질, 사용패턴 분석을 통한 미세조정 등 원칙적 입장만 세웠을 뿐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아직 잡지 못했다. 당정 누진제 개편 태스크포스(TF)를 통해 정한다는 원칙만 되풀이했다. 현재 시범사업 중인 지능형검침인프라(AMI)를 활용해 계절별·시간대별 요금제 적용 가능성을 시사해 전력피크 별로 다른 요금을 적용받는 방식이 도입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12일 김용래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산업정책관은 정부세종청사에서 백브리핑을 갖고 누진제 경감 조치에서 한발 더 나아가 전기요금 체계 개편 방향에 대해 설명했다.
누진제 구간 재조정, 11.7배 누진율 수정, 계절·시간대별 요금 차등에 대해 질문이 쏟아졌지만 어느 것도 확답을 내놓지는 않았다.
김 국장은 “누진제에 대한 지적이 많지만 이를 통해 긍정적 효과도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현행 누진제에 대한 현실성 부분을 검토해 불합리한 부분은 TF를 통해 고쳐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현행 누진제에 대한 현실성 검토는 샘플링 작업을 거쳐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표본가구를 설정해 전체 전력사용량 증가와 7~8월 누진구간별 소비자 이동현황을 먼저 파악하겠다는 것이다.
계절·시간대별 요금제 적용에 대해선 올해안에 일부 지역에 대한 시범적용 계획을 밝혔다. 시범적용 지역 소비자는 누진제와 계절·시간대별 요금 중 하나를 선택해 전기를 사용하게 된다.
-누진제 경감 효과를 19.4% 정도로 발표했는데 비교 기준이 어디인가? 1구간 사용자는 혜택이 없지 않나?
▲19.4% 인하효과는 지난해 기준으로 책정한 것이다. 올 여름은 현재 사용량에 대한 데이터가 아직 취합되지 않았다. 평균적으로 19.4%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1단계 구간 소비자도 혜택이 있다. 이번 누진제 경감을 추진하면서 1600가구에 대한 샘플링을 해봤다. 7월은 3분의 1 정도가 기존 누진단계에서 한 단계 상승했고, 나머지는 그대로 있었다. 8월은 절반 정도가 누진단계 이동이 있었다. 한 단계 상승이 가장 많았고, 두 단계 이상 올라간 가구도 있다. 현재 쓰던 단계에서 조금 더 전기를 많이 쓰고 싶은 요구가 있다고 봤다. 1구간인 100㎾h 이하에서도 더 많이 쓰고 싶은 소비자가 있을 것이고, 이들도 150㎾h까지는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한시적 경감은 미봉책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여야 모두 다 완화하자는 분위기에서도 정부가 결정하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누진제는 석유파동 이후 1973년에 세계적으로 도입된 제도다. 기본적으로 에너지 절약이 주 목적이었고, 제도를 디자인하면서 각 국가별로 계층간 형평성이 고려됐다. 이 두가지를 다 만족을 해야하는 데 쉬운 작업은 아니다. 지금 누진제에 대한 논란이 누진제 자체 문제인지 요금인하에 대한 문제인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누진제가 갖고 있는 긍정적인 부문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 소비자 별로 전기기기 사용패턴이 모두 다르다. AMI, 프로슈머 사업 등 새로운 개념이 도입되면서 누진제 조정에 의한 변수도 많아졌다.
다만 누진제가 만들어진지 너무 오래됐고, 올 여름이 너무 덥다보니 불합리한 부분이 드러나고 있다.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전기요금 체계에서 불합리한 부분이 있다면 개선을 하겠다. 구체적인 개선 방안은 TF를 통해 만들어 가겠다.
-지금 경감된 제도를 보면 하루에 에어컨 1시간 정도 더 켤 수 있는 정도다. 50㎾h 구간 확대 근거는 무엇인가?
▲앞서 얘기한 샘플링에서 누진제 한단계 상승 소비자가 많았다. 누진제가 없었다면 더 올라갈 수도 있었지만, 3단계에서 4단계로 올라가는 가구처럼 한단계 상승하는 소비자에 중심을 뒀다. 100㎾h 확대로 한단계 상승구간 전체 소비자를 감쌀 수도 있지만 국가 전체 전력수급 부문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50㎾h로 했다.
-지금도 AMI를 깔아 계절·시간대별 요금 적용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주택용도 산업용처럼 계절·시간대별 요즘제를 적용할 수 없나.
▲이번 샘플링 조사에서도 AMI가 활용됐다. AMI를 이용하면 소비자 전기이용 패턴을 알 수 있고, 계절·시간대별 요금제를 적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 방법을 전기요금 개편에 포함할지 여부는 지금으로선 확답하기 어렵다. TF를 통해 검토하도록 하겠다.
시범사업이 진행 중인 것도 맞다. 일부 지역을 선정해 AMI를 구축하고 주택용 계절·시간대별 요금제를 적용한다. 소비자가 누진제와 계절·시간대별 요금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누진제 경감을 작년과 다르게 설계한 이유는 무엇인가?
▲작년에는 3단계와 4단계 구간을 통합하면서 실제 3단계 이상 구간 소비자만 혜택을 보는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샘플링을 통해 3단계 이상은 물론 1~2단계에서도 더 많은 전기를 사용해 구간을 이동하는 동향을 알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대상을 전체로 확대했다.
전력거래소 조사에 따르면 전국 평균 한달 전력사용량은 130㎾h로 나온다. 이는 1인 가구도 다수 포함돼 있기 때문이고, 4인가구를 기준으로 하면 평시 일반적인 전기기기 사용시 340㎾h 전기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샘플링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현재 소비자의 전기사용 패턴과 누진제 현실성에 대해서도 고민을 더 해보겠다.
-노인을 모시거나 육아, 환자 간병 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전기를 많이 쓰는 상황이 있을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차별화 대책 같은 것은 있나?
▲고민이 많은 부분이다. 과거 전등 하나 끄기 운동을 했던 적이 있었다. 이 당시 노인분께서 “우리는 집에 전등이 하나 있는 데 이것을 꺼야 하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런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있으신 분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은 꾸준히 파악해서 배려해 나가는 방법을 구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정형 에너지 전문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