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후핵연료(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 부지가 순수 민간 주도로 정해진다. 선정 위원회는 100% 민간 위원으로만 구성된다. 부지 후보지는 전 국토가 대상이며 지자체 공모 방식을 거쳐 결정된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절차에 관한 법률(고준위 관리법)`이 11일 입법 예고된다. 30년 넘게 끌어온 사용후핵연료 관리 근거 법안 마련이 첫 발을 내디딘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행정절차법 제41조에 따라 고준위 관리법을 다음 달 19일까지 40일간 입법예고한다. 예고기간 동안 국민의견을 수렴하고 10월 중순께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이르면 연내 사용후핵연료 저장과 처분 근거법이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이 법률안은 지난달 25일 확정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의 실행을 위한 제도적 장치다. 기본계획에 담았던 △전국토 부지 후보화 △지자체 공모 △주민의사 최종 확인 △주민의사 확인후 심층조사 등 부지선정 원칙을 그대로 반영했다.
법률안이 통과되면 기본계획 전문 실행기구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위원회`와 `유치지역지원위원회` 2개 위원회가 구성된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위원회는 부지선정 업무를 전문으로 하는 실행기구로 순수 민간 전문가로만 구성해 운영될 예정이다. 공무원 참여를 배제하고 순수 민간의 객관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부지 선정 투명성을 높이기로 했다. 전문적이고 과학적인 지식이 필요한 사안에 대해선 이를 사전 심층 검토할 전문위원회를 두고, 관리위원회의 안건 준비 등 사무지원을 위한 사무기구도 설치된다.
유치지역지원위원회는 사용후핵연료 저장 및 처분 부지로 선정된 지역에 대한 지원 방안을 세우고 실행하는 기구로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관련 부처 장관이 참여한다. 국무총리가 위원장을 맞고 관계부처 장관이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한다. 민간 위원 20여명도 포함된다.
이와 함께 안전하고 체계적인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를 위해 관리시설 건설 계획도 수립했다. 지하연구시설을 설치해 실증과 실험 결과를 토대로 처분시설을 건설하는 등 건설 일정과 처분 방식 등 내용을 담았다.
필요하면 해외 관리시설을 이용하기 위한 해외국가 또는 기관과 협력할 수 있는 근거도 신설했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후핵연료를 저장·처분할 만한 적정 부지를 찾지 못하는 만약의 경우에 대비한 최후 보루다.
산업부 관계자는 “고준위방폐물 관리문제는 30년 넘게 해결하지 못한 국가적 현안”이라며 “법 제정을 통해 관리정책의 예측가능성을 높이고 부지 선정 투명성과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 수용성 위해 어려운 길 택한 정부
30년 넘게 해결을 미뤄온 국가 현안이 이제야 문제 해결을 위한 관련 법에 담겼다. 진짜 논의와 갈등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정부는 사용후핵연료라는 이슈가 갖는 무게만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국민 선택에 결과를 맡기는 어려운 길을 택했다. 그동안 반대 시설 설치를 놓고 보여왔던 모습과는 정반대 접근법이다.
첫 발걸음을 내디뎠지만 우려도 크다. 일단 전국토를 부지 후보로 놓고 부적합지부터 하나 둘씩 제외시켜나가는 방법을 쓴다. 부적합지를 솎아 내는 과정에서도 갈등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지형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조사에 대해서도 반대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지자체 공모 방식은 이미 일본에서 실패한 바 있다. 사용후핵연료 수용을 주민과 지자체 결정에 맡겼지만 그 어느 곳도 공모에 나선 곳이 없었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해외시설 이용이라는 최후의 보루도 검토한 셈이다.
정부는 우선 고준위관리절차법 통과에 집중할 계획이다. 원전 저장고 포화시점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더 이상 기본계획 시행을 늦출 수 없기 때문이다. 관련 법이 만들어지기까지 30년이 넘게 걸렸지만, 앞으로 12년으로 예정된 부지 선정 기간도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가시밭길이란 것을 정부도 모를 없다. 다음 정부로 넘겨도 될 일을 시작한 현 정부의 진정성만큼은 문제 해결 가능성을 높이는 대목이다.
자료:산업통상자원부
조정형 에너지 전문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