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열린 세계 최대 산업전시회인 하노버산업박람회에 한 산업용 로봇이 큰 인기를 얻었다. `이바`(Iiwa)라는 이 로봇은 부드럽게 움직이며 컵에 맥주를 따르고 커피를 끓이는 등 매력을 뽐냈다. 전시회에 참석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이 로봇에 매혹됐다. 메르켈 총리는 “레몬도 짤 수 있느냐”고 묻는 등 관심을 드러냈다.
이 로봇은 독일 세계 4대 로봇업체 중 하나인 쿠카(Kuka)가 개발했다. 쿠카는 이제 더 이상 독일기업이 아니다. 하노버산업박람회가 끝난 후 중국 가전 메이커 메이디가 쿠카를 45억유로(5조5000억원)에 인수하겠다고 제의, 결국 품에 넣었다. 인수가는 중국 기업이 독일 기업에 제시한 최고액이었다.
9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는 올해 들어 중국자본의 독일 기업인수가 잇따르고 있으며 유럽 여론도 우려감이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독일은 중국 기업의 집중적인 타깃이 되고 있다. 조사기관 EY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국기업의 독일 투자는 108억달러, 총 37개 독일 기업을 인수했다. 지난해 전체(39개)에 육박하는 수치다.
앤디 구 메이디 부사장은 “중국은 독일의 제조 우수성, 장인정신, 기술 헌신성 등에 존경심을 갖고 있다”며 “이런 이미지를 가진 독일 브랜드는 매력적인 인수대상”이라고 밝혔다.
메이디의 쿠카 인수는 100년 이상 된 독일기업을 중국에 팔아서는 안된다는 반발 여론을 불러 일으키기도했다.
군터 외팅거 EU 디지털집행위원은 “쿠카는 유럽의 디지털 미래를 위한 전략 산업분야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회사”라며 인수에 반대했다. 유럽 회사의 인수를 촉구했지만 인수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메이디는 결국 쿠카 지분 94.5%를 확보했다고 최근 발표, 인수를 최종 마무리했다.
메이디는 중국 내수시장에서 쿠카 점유율을 높일 계획이다. 중국 기업은 아직 자동화 비중이 낮다. 2014년 기준으로 중국은 근로자 1만명당 로봇이 36대에 불과하다. 반면 유럽은 85대, 미국은 79대다. 메이디가 쿠카를 인수한 이유다. 쿠카는 중국 시장 점유율이 15%에 그치고 있다. 메이디 인수로 쿠카 중국시장 점유율은 높아질 전망이다.
중국의 인수 타깃은 광범위하다. 지난달 오스람이 램프 사업을 중국 컨소시엄에 매각했다. 인수가격은 4억유로였다. 2월에는 중국 기업이 폐기물관리업체 EEW를 14억4000만유로에 인수했다. 또 중국화학은 기계메이커 크라우드마파이그룹을 9억2500만유로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마르틴 라이츠 로스차일드 독일지사 최고경영자(CEO)는 “올해 상반기 독일 투자액 35~40%가 중국 자본이며 현재도 중국 자본이 개입된 투자를 협의 중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 기업이 혁신을 위해 하이테크 분야 인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보다 진보된 산업사회로 턴어라운드 하겠다는 중국 야심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인수대상은 기술기업이 중심이지만 의약품, 바이오기술, 의료기술, 홈케어 등에 관심을 두고 있다. 영국이 EU를 탈퇴하기로 한 후 몇몇 중국 기업은 유럽 헤드쿼터를 영국에서 독일로 옮기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중국 공세에 유럽 내부에서는 우려가 일고 있다. 유럽은 쿠카가 독일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인더스트리4.0에 핵심역할을 하는 것에 주목한다. 인더스트리4.0은 클라우드와 사물인터넷(IoT) 등을 결합해 산업을 업그레이드하는 정책이다. 쿠카가 중국기업이 되면서 클라우드에 저장된 산업정보가 중국으로 유출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런 우려는 독일에 한정되지 않는다. 지난달 테레사 메이 영국 수상은 중국 회사가 참여한 영국 원자력발전소 프로젝트를 연기했다. 국제 위기시 중국이 에너지를 볼모로 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비즈니스와 정치를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라이츠 로스차일드독일 CEO는 “하이테크 기술 제어권이 중국으로 넘어갔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의심하는 것은 이해한다”면서도 “그러나 중국의 전략적 파트너가 되려면 이런 거래를 중단해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