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산행`이 인기다. 개봉한 지 3주 만에 1000만 관객 영화 반열에 올랐다. 좀비 잡는 `아트박스 사장님(영화 베테랑에서 마동석 분)` 마동석의 주가도 호가를 치고 있다. `부산행`을 “마동석을 피해 부산으로 도망가는 좀비 영화”라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다.
결론부터 말하면 영화 속 좀비는 현실에 없다. 하지만 영화를 본 사람은 누구나 `공감`할 부분이 많다. 좀비를 향한 공포, 자식애, 이타심과 이기심 등 많은 감정이 입소문을 타고 `부산행` 상영관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했을지 모른다.
`실망`도 `부산행`에서 공감할 수 있는 대표 감정이다. 좀비가 이미 서울을 점령했을 때 방송에 등장한 정부 관계자는 여전히 “안심하라. 국민 안전 확보에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살점이 물어 뜯겨도, 좀비 바이러스가 온몸에 퍼져서 정신이 혼미한 순간에도 정부는 적절한 대처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우리는 이미 `부산행`과 같은 `사태`를 여러 번 겪었다. 대표 사례로 지난해 온 나라를 공포로 몰아넣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다. 지난해 5월 첫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뒤 186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그 가운데 38명이 목숨을 잃었다. 217일 동안 일어난 일이다.
영화 속 좀비 바이러스는 물리면 감염된다. 잠깐 동안은 감염 여부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메르스도 초기에는 가벼운 감기 증상과 유사해 감염됐는지 일반 사람이 알기 어려웠다. 하지만 같은 공간에서 숨만 쉬어도 감염될 수 있으니 좀비 바이러스보다 확산 공포가 크다.
메르스 사태에 대해 정부의 초기 대응은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메르스 예방을 위해 “낙타 고기와 낙타유를 먹지 말라”고 발표했다. 메르스가 낙타를 매개로 전염될 수 있기 때문이다. 메르스 환자의 동선, 감염 의심자 격리 병원 현황 등 핵심 정보는 알리지 않은 채 엉뚱한 대책을 쏟아내는 정부를 국민은 믿지 못했다. 낙타라곤 태어나 동물원과 TV에서밖에 보지 못한 국민들이 낙타 고기와 낙타유를 먹는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
정부는 메르스 사태 1년이 넘은 지난달 29일 `2015 메르스 백서:메르스로부터 교훈을 얻다`를 발간했다. 초기 대응이 잘 못됐다,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컨트롤타워가 없었다 등 일부 반성의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와의 갈등, 부정적 정보 확산 등 정부 책임보다 남탓으로 돌리려는 의도가 역력하다.
이제 좀비가 실재한다고 가정해 보자. 좀비가 우리 국민을 물어 뜯고 바이러스가 확산될 때 정부의 대응을 쉽게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우왕좌왕한 대처, 잘못된 해결책뿐만 아니라 `사태=좀비 탓`이라는 애먼 공식 세우기에만 급급할 것 같다. 그리고 방송에 등장한 정부 관계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국민 여러분, 정부는 사태 안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좀비화를 막기 위해) 좀비 고기는 드시지 마십시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