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알파고 덕분에 인공지능(AI)이 뜨더니 이제는 제4차 산업혁명이 뜨고 있다. 산업전문가, 칼럼니스트, 스타강사가 여기저기서 제4차 산업혁명을 주요 주제로 다루고 있다. 덕분에 그룹 회장, 고위 관료, 관변 연구소 수장들도 이제 다 4차 산업혁명을 주요 화두로 들고 나오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우리의 미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외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주제가 이제는 현 정권 아래에서 가장 각광받던 창조경제를 서서히 밀어내고 있다.
인류 역사에서 그동안 증기기관·전기·정보기술(IT)로 촉발된 세 번의 산업혁명이 있었고, 이제는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하는 네 번째 산업혁명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용어 자체에 혁명이라는 말이 들어가서인지 4차 산업혁명은 좀 파괴적이고 선동적인 느낌이다. 자고로 혁명을 주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혁명에 참여하면 살 것이고 거부하면 죽을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4차 산업혁명도 세상에 나오면서 공포감부터 조성하고 있다. 이 혁명에 참여하거나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으면 당신 조직은 곧 망할 것이라고 위협하는 것이다. 정체불명의 공포가 주위를 감싸면 집단으로 히스테리가 생기게 되고, 누군가가 이끄는 쪽으로 몰려가게 된다. 한참 지나고 난 뒤에야 그게 근거 없는 공포였다는 것을 깨닫지만…. 꼭 해야만 한다는 일이 뭔지 잘 모르면 공포감과 초조감이 들기 마련이다.
4차 산업혁명의 정의는 다양하다. 각 산업에서 ICT를 활용해 대변혁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보는 관점에 따라 정의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핵심은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결합, 즉 온·오프라인연계(O2O)다. 제조업이 ICT와 만나면 인더스트리 4.0이 되는 것이고, 금융업이 ICT와 만나면 핀테크나 인터넷뱅킹이 되고, 유통업이 ICT와 만나면 아마존과 쿠팡이 되고, 방송에서 ICT를 만나면 넷플랙스가 되고, 게임업계가 증강현실(AR)을 만나면 `포켓몬 고`가 된다. 4차 산업혁명은 이렇듯 각 산업에서 ICT를 통해 일어나는 지금 시점의 모든 경제, 사회, 문화의 변혁을 총칭해서 말한다.
4차 산업혁명은 광범위하게 일고 있다. 그래서 평소에 넓고 얕게 공부하는 회장, 관료, 스타강사가 남들 앞에서 얘기하기는 좋은 주제일지 모르지만 기업에서 깊고 좁게 공부해야 하는 임원 입장에서는 너무 큰 주제다. 어려운 주제일수록 임원은 회장이 물어 보면 그 자리에서 개념 정도만 대답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전 조직이 새로운 기술에 대해 관련 업체에 자료를 달라고 채근만 하고, 그 개념만 대충 알고 다른 주제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예전에 다운사이징, 전사자원관리(ERP), 고객관계관리(CRM), 모빌리티, 클라우드, 빅데이터에서도 그렇고 최근 들어 AI와 가상현실(VR) 및 AR에서도 개념만 파악하고 공부를 다 한 것처럼 생각하는 경영자나 IT 담당자가 많다. 새로운 기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다 속속들이 공부하느냐고 항변할 것이다. 그러나 개념만 아는 것으로는 실행에 들어가지 못한다. 오히려 개념만 알게 되면 실행 상 문제점만 찾아 낼 가능성이 많다. 사람 이름을 안다고 그 사람을 다 아는 것이 아닌 것처럼 개념을 안다고 그것을 확실히 안다고 할 수 없다.
지금 잘나가고 있다는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페이스북, 아마존, 우버, 에어비앤비를 들여다보면 각 회사 창업자나 최고경영자(CEO)가 모두 IT 전문가다. 어디선가 CEO 조찬강의를 듣고, 스타강사하고 식사하면서 듣고, 실무 임원을 불러서 우리도 해야 하지 않느냐고 채근하는 그런 회장 수준의 경영자가 아니다. 새로운 추세를 이끌어 가고 있는 사람은 업계에서 그 일에 미쳤다는 사람이고, 개인적으로도 편집광적 집요함이 있는 사람이다. 그동안 우리가 새로운 ICT를 적극 활용하지 못한 배경에는 개념 공부만 하고 속까지 파고드는 응용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단순한 개념 파악을 넘어 그 기술의 역사, 사상, 철학을 연구해야 한다. 그러면 새로운 ICT를 어떻게 내 업무에, 내 회사에 적용할 것인지를 찾아 낼 수 있다. 새로운 ICT가 대들보에 매달린 굴비가 아닌 식탁 위에 오른 반찬이 되고, 우리 몸에 영양분이 돼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이 이미 개화하기 시작했다. 또다시 사외강사의 강의를 듣고 책 몇 권 읽고서 4차 산업혁명도 별 거 아니고, 우리나라 실정에는 안 맞는다고 치부하면 안 된다. 개념을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 실행 단계까지 가는 집요한 공부를 해야 한다. 그래야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를 알게 되고, 실질적인 연구가 되고, 새로운 기술을 통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CIO포럼 명예회장(명지대 교수) kt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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