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물은 `자연 제품(Natural Product)`이라는 영어 단어 그대로 자연이나 생명체에서 유래한 물질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천연물은 우리에게 친숙하고 독성이 약하다는 인식 아래 식품·의약품, 건강보조식품, 기능성 화장품 등 다방면에서 활발한 연구개발(R&D)이 진행되고 있다.
동아시아 문화권은 약선(藥膳)음식 문화나 전통의약 지식이 풍부해 바이오 산업기술 측면에서 국제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핵심 역량을 갖추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 20여년 동안 천연물이나 한약재에서 신약과 개별 인정형 건강보조식품 연구가 꾸준히 진행돼 왔다.
내가 몸담고 있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강릉분원 천연물연구소에서도 천연물 정밀 분석과 데이터 기반 스마트팜 과학농업기술 개발 관련 인프라와 전문 인력을 갖추고 천연물 원천 기술 연구를 활발히 수행하고 있다.
다만 천연물은 합성의약품 대비 재료에 대한 접근이 용이한 반면에 명확한 효능 검증이나 작용 메커니즘 규명이 어렵다. 표준화를 위해 고도의 기술 역량이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다. 현재 미국에서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는 3종의 천연물 신약 외에는 괄목할 만한 해외 시장 진출 소식은 없는 형편이다. 이 때문에 국내 천연물과학 분야에 대한 여론의 우려도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시점에서 최근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정밀분석기술, 과학농업기술과 천연물 복합 효능에 대한 다원적 해석 기술에 새롭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학계에서는 이 기술을 활용해 천연물 식·의약 소재의 표준화 등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향후 천연물 과학 역할을 제시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정밀분석기술과 과학농업기술의 발전은 세계 바이오 기술 발전에 기여해 온 천연물과학 본연의 역할에 활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천연물이 바이오 신물질로 자리 잡으려면 이런 기술 측면 외에도 극복해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천연물에 대한 인식이다. 약선음식 문화나 전통의약 관련 지식은 우리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즉 천연물을 주로 건강과 질병 예방에 좋은 식품 소재로만 생각해 바이오 신물질로서 천연물의 위상 확립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천연물이 새로운 의료기술이나 질병 대응 연구에서 신물질 탐색 우선순위를 차지하는 R&D 대상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천연물을 건강보조제품에 사용되는 물질에 한정해서는 안 된다. 천연물이나 생물자원에서 유래한 많은 신물질은 생명과학의 발전을 주도해 왔다. 20세기 들어 페니실린이나 스트렙토마이신은 의료기술 발전에 획기적인 역할을 했다. 해파리 유래의 형광 단백질 발견은 현대 분자생물학 분야에서 혁신을 이룰 수 있는 발전의 토대를 제공하기도 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바이오 의료 기술의 개발에 관심이 높아 가고 있다. 영상의료기술, 광(光)치료기술, 희소질환 치료술이나 의료용 로봇, 기타 의료기기 등 다방면에 걸쳐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신기술 개발에는 신물질이 뒷받침돼야 하며, 이를 통해 우리나라가 바이오·메디컬 산업 분야에서 국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초기 단계부터 원천물질 특허기술을 자체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분야의 천연물 신물질 활용에 관한 예로 채널로돕신과 포피린을 들 수 있다.
채널로돕신은 미세조류에서 발견한 천연물 신물질이다. 식물체 대부분이 광합성으로 빛에 반응하는 다양한 물질을 생성한다는 점에 착안했다. 특정 파장 빛에 반응해 그 구조가 변화하는 성질을 이용하고, 신경세포를 제어해 질병을 치료하는 광치료 기반 기술과 광유전학의 연구에 활용되고 있다. 또 다른 천연물로 포피린을 들 수 있다. 포피린은 식물의 엽록소나 동물의 혈액에 존재하는 물질로, 특정 파장의 빛에 노출될 때만 세포 파괴 라디칼을 형성하는 광증감 물질이다. 포피린에 암세포 표면만 택해서 부착되는 나노물질 또는 생물학 물질을 결합해 광기반 암 치료에 활용하고 있다.
천연물은 앞에서 기술한 많은 예에서 보듯 건강기능 보조 등에 용도가 국한된 분야가 아니다. 우리나라도 이젠 기존의 천연물 연구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단점을 극복하는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권학철 KIST 강릉분원 천연물연구소 천연성분응용연구센터장, hkwon@kist.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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