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절반을 갈무리하고 새로운 절반을 맞는 시점이다. 미디어 기업은 지난 성과를 정리하고 그 가운데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방식을 고민해야 할 시기다. 우리나라는 방송통신발전기금(방발기금) 형태로 각 미디어 기업이 성과 가운데 일부를 공익을 위해 사용하도록 국가에 납부한다. 납부율은 고시를 통해 공시된다. 자율 방식 외에도 제도 방식의 사회 공헌 프로그램이 가동되는 셈이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이와 관련된 잡음이 나온다. 주로 방발기금을 둘러싼 정책 집행의 정당성과 형평성 차원의 불만이다. `시간이 흐르고 환경이 바뀌어도 여전히 그 정책과 정책의 근거가 합당하며 유효한가` `정책 실행 과정이 치우침 없이 적절해 산업계의 정책에 대한 자발 참여를 높이고 있는가` 등으로 요약된다.
적어도 이런 목소리에 힘을 보태는 사업자는 정부 기금 정책에 불만이 크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문제는 산업계의 불만이 있는데도 정책 집행 과정에 잘 반영되지 못한다는 인식이 팽배한 것이다. 갈등의 실마리를 찾아 눈을 외부로 돌려 보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필자가 최근 경험하는 호주 사례는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
호주도 방송통신 기금과 관련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사업자 간 또는 정부와 사업자 간 이견은 거의 없다. 정책 집행의 형평성과 예측 가능성이 담보됐기 때문이다. 호주 정부는 상업 방송사업자에게 매년 방송라이선스 비용과 데이터방송 비용을 징수한다.
징수 기준은 총수익(gross earning)이다. 호주 통신미디어청(ACMA)은 총수익을 기준으로 사업자 이익이 일정 구간에 도달하면 정해진 기금액 납부 산정 방식에 따라 일정 부분의 기금을 납부토록 한다. 미디어와 통신 사업자에게 적용하는 요율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각 산업 영역의 특성을 반영한 결과다. 하지만 미디어 영역과 통신 영역 내 유사 사업자는 종류나 특성과 상관없이 발생된 이익의 양이라는 기준의 일률 적용을 받는다. 이는 사업자에게 기금 납부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형평성 시비를 불식시키는 등 합당한 기준으로 받아들여진다.
사업자는 일정한 수익 규모가 달성될 것이라고 예상되는 시점에서 기금 납부를 위한 준비를 할 수 있다. 기금 납부액마저 충분히 예측 가능해 정책 투명성이 제고되는 효과가 있다. 예를 들어 유료방송사업자 A가 지난 회계연도에 발생한 총수익이 기금 납부 최초 기준인 500만달러를 초과한 경우 첫 번째 기금 납부 구간에 편입돼 납부 요율 산정 방식에 따라 일정액을 스스로 계산해 납부하는 방식이다.
기금의 지원 방식 역시 정책 당국인 호주통신미디어청(ACMA)이 미디어 환경 변화를 고려해 징수액을 감면하는 등 탄력 운영을 한다. 디지털 전환 등 방송 시설의 고도화 과정은 기금의 탄력 운영 대표 방식으로 꼽힌다. ACMA는 사업자의 디지털 전환을 지원하기 위해 당해 연도 사업자 대상 기금 징수액을 50% 감면하는 방식으로 직간접 지원을 병행했다.
기금 정책의 투명성, 효율성, 타당성에 대한 인정은 호주 방송통신사업자의 기금 납부와 정책 수용도를 높였다. 사업자 간 갈등 역시 거의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우리나라의 방송통신발전기금이 기금의 징수 시점, 징수율, 징수 대상 등에 대한 형평성과 정당성 시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채 잡음이 끊이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금은 기업에 부과하는 세금이 아니다. 그럼에도 준조세처럼 인식되고 적용 기준이 임의 방식이라면 기업은 스스로의 사회 책무를 강제 납부 방식을 핑계 삼아 최소 수준에서만 수행하려 들 수 있다. 정책 당국이 기금 납부를 임의 방식으로 강제하는 것은 기업 자발의 사회 책무마저 위축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기업 이윤 추구는 시장을 키워 왔고 그 성과를 조금씩 사회가 공유하게 됐다. 우리는 더 이상 미디어 기업의 이윤 추구를 어색해 하거나 부정적 시선만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 이윤을 통한 성과는 인정하되 그 가운데 일부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정당한 방식으로 분배하는데 관심을 기울일 때가 된 듯하다.
김광재 한양사이버대 광고미디어학과 교수 majesty2@hyc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