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방송 View] 귀신은 왜 TV에서 사라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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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KBS 제공, KBS2 드라마스페셜 '원혼' 방송 캡처

[엔터온뉴스 최민영 기자]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여름마다 귀신이 TV에 등장해 등골이 오싹해지는 납량특집 프로그램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귀신은 사람들이 무서워하면서도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시청자들의 관심을 모을 수 있는 소재였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귀신이 나오거나 주인공이 악령에 빙의되는 정통 납량특집 드라마가 많이 제작됐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KBS2 ‘전설의 고향’, MBC ‘엠(M)’, SBS ‘어느날 갑자기’ 등이 있었고, 가장 최근 시청자들을 찾은 정통 공포드라마로는 지난 2014년 11월 방송한 KBS2 드라마 스페셜 ‘원혼’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원혼’을 제외하고 몇 년 동안 정통 공포드라마를 브라운관에서 실종됐다.

지난해 종영한 KBS2 ‘블러드’와 SBS ‘마을-아치아라의 비밀’, 현재 방영 중인 JTBC ‘마녀보감’, 첫 방송을 앞두고 있는 tvN ‘싸우자 귀신아’ 등을 넓게는 같은 범주에 포함시킬 수도 있지만 이 작품들은 정통 납량특집 드라마보다 스릴러 또는 판타지 드라마에 가깝다.

예능도 마찬가지다. 납량특집은 과거 토크쇼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단골 주제였다. 출연자들이 직접 겪었던 공포 에피소드를 털어놓거나 폐가 또는 폐교에서 담력체험을 하면서 귀신 분장을 한 배우들을 보고 놀라기만 해도 시청자들은 재미있어했지만 이제 거의 쓰지 않는 포맷이 됐다.

1990년대 중후반에는 MBC ‘이야기 속으로’, SBS ‘토요 미스테리 극장’처럼 불가사의한 이야기들을 재연한 프로그램들도 인기를 모았지만 이 또한 지상파에서 종적을 감춘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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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방송 캡처

정통 납량특집 프로그램들을 TV에서 보기 어려워진 첫 번째 이유는 대중이 흥미를 갖는 공포 트렌드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한 방송관계자는 “예전에는 귀신이 등장하는 전형적인 공포물에 호기심을 갖고 재밌어 했다면 요즘은 귀신이라는 초현실적 존재보다 일상 속 같은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심리적 공포가 시청자들에게 더 무섭게 다가갈 것”이라고 바뀐 공포 트렌드를 분석했다.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라는 말이 자주 쓰일 정도로 흉흉해진 사회 민심과 빈번하게 발생하는 잔혹한 강력 범죄들은 무서운 이미지의 대명사였던 귀신을 상대적으로 무섭지 않게 만들어놓았다. 온라인상에서 누리꾼들이 최고의 납량특집 프로그램으로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거론할 정도다.

또, 경제가 어려워져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게 힘든 서민들에게 공포의 대상은 귀신이 아니라 현실 그 자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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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SBS '미스터리 특공대' 방송 캡처, MBC 제공

뿐만 아니라 납량특집을 제작함으로써 얻는 방송사의 이익도 크지 않다. ‘이야기 속으로’와 ‘토요 미스테리 극장’은 방영 당시 자극성과 유해성 논란으로 부정적 여론이 득세하며 폐지됐다.

지난 2008년 방송한 SBS ‘미스터리 특공대’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로부터 국민의 올바른 가치관과 규범의 정립, 사회윤리 및 공중도덕의 신장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방송심의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경고 조치를 받았다.

이듬해 MBC에서 14년 만에 선보인 납량특집 드라마 ‘혼’ 또한 시청자들에게 지나친 충격을 줄 수 있는 자극적인 묘사를 불필요하게 오래했다는 이유 때문에 방심위로부터 제재를 받은 바 있다.

예능프로그램 방송작가 A씨는 “납량특집을 준비하는 과정은 평소보다 2~3배 더 힘이 드는데 정작 별다른 효과를 얻지 못한다”며 “오히려 선정성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도 높아 굳이 납량특집을 제작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설명했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최민영 기자 meanzerochoi@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