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후핵연료 문제는 글로벌 현안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많은 국가가 사용후핵연료의 안전한 관리와 이를 위한 사회 합의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원활한 합의와 사업 진행으로 우수한 성공 사례를 만들어 가는 곳도 있지만 합의 도출에 실패, 국가 원전정책이 흔들리는 곳도 있다.
핀란드는 사용후핵연료 관리 모범 대표 국가로 꼽힌다. 핀란드는 2000년대 말까지는 화석연료 비중이 가장 높은 유럽 국가의 하나였지만 지금은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지면서 무탄소 에너지 국가에 근접했다.
현재 4개 원전(2만7000㎿)이 가동되고 있으며, 다섯 번째 원전을 짓고 있다. 추가 2기 원전 건설 계획도 세워 놓았다. 체르노빌 사고로 핀란드 내 원전 발전을 동결시킨 사례가 있지만 비중은 꾸준히 늘려 왔다.
사용후핵연료에 관해 1970년대부터 드라이브 정책을 발동했다. 1983년 세부 정책안을 제시하고 1987년 원자력에너지법을 제정, 통상산업부가 관리·감독 권한을 총괄하기로 한 후 1994년 자국 내 처리·폐기 원칙을 세웠다.
1983년 부지 선정 작업에 착수, 2001년 올킬루오토가 최종 처분 부지로 선정됐다. 지난해 11월 처분장 건설 인허가가 최종 승인됐으며, 가동은 2023년부터다. 부지 선정에서 가동까지 40년이 걸린 대작업이다.
핀란드는 사용후핵연료 정책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제공하는 정보 신뢰도를 높이는 데 집중했다. 지원서 제출, 안정성 검사와 주민설명회, 의견 수렴과 의회 비준 등 과정에서 지역주민과 정책자의 거부권이 행사될 수 있는 지점을 충분히 확보해 열린 정책 결정 과정을 보장했다. 관련 정보는 높은 신뢰도를 구축해 온 기관이 여러 단계를 거쳐 검증하도록 했다. 주민에게는 민간기업 포시바, 정부, 전문기관 STUK 등 3자 구조에 의해 재생산된 고급 정보가 전달됐다.
이런 신뢰와 개방 및 투명성은 논의의 선순환 효과를 가져왔고, 원자력 정책 수용성을 높여 사용후핵연료 처분장을 마련하는 원동력이 됐다.
대만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상황에서 원전 감축을 선택했다. 전체 에너지의 97.5%를 수입하고 있으며, 에너지 수요도 매년 3.5%씩 늘고 있다. 원자력이 16%, 화력발전이 49.2%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녹색에너지 정책에 따라 신재생에너지를 급격히 늘리고 있는 추세다.
대만의 원전 정책은 일본 후쿠시마 사고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이후 추가 증설은 하지 않고, 운용하고 있는 설비도 만료 기한을 앞당기는 등 원전을 감축하기로 했다. 문제는 비용이다. 대만 경제부는 2025년까지 현재 운용 중인 3개 원전을 중단하면 낮은 경제성장률과 높은 환경 오염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판단은 정치적으로 이뤄졌다. 후쿠시마 사고 이듬해인 2012년 집권당과 민진당 모두 원전 감축정책을 13대 총통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다. 올해 14대 총통으로 당선된 민진당의 차이잉원은 2025년까지 `핵 없는 대만`을 약속했다. 사회 전반에 걸쳐 원전 감축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방치된 상태다.
정책 기조와 상관없이 2개 원전이 올해 핵연료 저장시설 포화로 가동을 중지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친산원전과 궈성원전은 습식저장시설 외에 건식저장시설 추가 건설을 추진했지만 지자체의 반발과 법 관련 문제에 부닥쳐 중단됐다.
대만전력공사는 해외 위탁 재처리를 결정하고 지난해 2월 국제입찰을 공고했지만 두 달 만에 철회했다. 1200다발의 사용후핵연료 운반에서부터 재처리, 재처리 후 생산된 연료의 제3자 판매 및 유리고화체로 만든 고준위방사성 폐기물 대만 이송 등 일련의 작업에 3억5600만달러를 지불한다는 조건이었다.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제동이 걸리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우라늄 연료 가격 급락으로 재처리 사업성이 떨어진 이유가 컸다.
폐로에 들어가는 원전 사용후핵연료 처리도 문제다. 대만전력공사는 설계 수명이 끝나는 원전 2기에 대해 각각 2018년 12월과 2019년 6월부터 폐로 작업에 들어갈 방침을 밝혔다. 이와 관련해 중간 저장시설 확보와 2055년 운영을 목표로 영구처분장 후보 지역을 물색해야 하지만 현재 분위기로는 난항이 예상된다.
조정형 에너지 전문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