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원자력 역사상 가장 난해한 문제인 사용후핵연료 관리 방안 마련이 국정 현안으로 떠올랐다. 정부는 지난달 `고준위방사성폐기물(사용후핵연료) 관리 기본계획`을 행정예고하며 뜨거운 감자를 꺼냈다. 1983년부터 아홉 차례에 걸쳐 추진됐지만 결론에 이르지 못한 이 문제가 이번엔 대국민 수용까지 이를지 주목된다. 최근 첫 공청회는 원전 반대 진영의 소란이 있긴 했지만 법적 효력은 갖췄다. 앞으로 남은 지역설명회 등에서 소통과 이해의 폭 확대가 성패를 가름할 전망이다. 영원히 미뤄 놓기만 할 수 없는 일이 된 사용후핵연료 문제에 대한 성숙한 소통과 진지한 설득이 필요하다.
◇더디 가더라도 `소통·참여로 이해 넓혀야`
정부 계획안에 따르면 사용후핵연료 대책은 `고준위방폐물 관리절차에 관한 법률`을 마련한 뒤 부지 선정(12년) 후 중간저장시설 건설(7년)을 거쳐 영구처분시설 건설(24년) 등 일정을 걷게 된다. 예정대로라면 중간저장시설은 2035년, 영구처분시설은 2053년께 각각 가동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가동되고 있는 원전의 사용후핵연료 포화 시점은 이보다 빨리 도래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매년 400톤가량 경수로형 사용후핵연료와 350톤 중수로형 사용후핵연료가 발생하고 있다. 중간저장시설 예상 가동 연도는 2035년이지만 2019년이면 월성원전부터 핵연료 보관 용량이 가득 찬다. 정부는 우선 원전 부지 내에 임시저장시설을 만들어 보관할 방침이지만 이것마저 촉박한 상황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정부는 올해 안에 관련법이 국회를 통과하길 바라고 있다. 사용후핵연료 관리 기본계획을 지난해 말 발표하려고 했지만 19대 국회 종료와 총선 일정 등으로 미뤄졌다. 20대 국회가 출발했지만 이전과 달리 여소야대 형국이고, 올해를 넘기면 대선 정국에 돌입하는 변수가 남게 된다. 올해를 넘기면 몇 년이 더 늦춰질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올해 법안이 국회 관문을 넘어서면 가장 어려운 과제인 부지 선정에 착수한다. 정부는 전국을 모두 후보지로 놓고 공모 형식으로 결정한다는 열린 접근법을 제시했다. 미국이 1982년 관련 법령에 따라 네바다주 유카마운틴을 부지로 결정했다가 2010년에 철회한 것처럼 이 부분은 사실상 지역의 동의 없이는 진행되기 어렵다.
문제의 핵심은 부지 선정에 지역주민이 동의하느냐 여부다. 원자력계 전문가들은 이번 사용후핵연료 기본계획이 과거 다른 정책과 달리 유연성을 높였지만 사회 합의를 도출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본다. 일본도 공모 방식으로 사용후핵연료 처분장 부지를 선정하려 했지만 공모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지 않으면서 중앙 정부 차원의 새로운 결정이 나와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라는 특수 재난까지 겪는 등 난관은 더 깊고 넓어졌다.
사회 합의 또는 지역주민 수용을 위한 필수 조건은 `투명성`과 `참여`다. 무엇보다 사용후핵연료 관리는 과학 및 기술상의 문제 해결도 중요하지만 성공 요인은 신뢰와 소통이다. 프랑스와 스웨덴도 처음엔 반대에 직면했다. 그러나 사용후핵연료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된 것은 투명한 정보 공개를 기반으로 한 소통 지속 때문이었다. 전문가들은 부지선정위원회를 민간위원으로만 구성하는 등 투명성과 국민 설득을 위한 특단의 선택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선택 카드 많지 않아…국민적 관심 모아야
`투명성` 확보가 정부가 기울여야 할 노력이라면 `참여`는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노력이다.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피하고 외면한다고 해서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부담으로 우리를 짓누른다. 찬반 대립보다는 해법과 대안 제시가 우선돼야 할 시점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는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그리 많지 않다. 국가적으로 믿고 안정적으로 사용할 만한 자원이 없다 보니 원자력, 석탄, 액화천연가스(LNG) 등 여러 자원을 활용해 전력을 만들어 내고 있다. 사용후핵연료 반대론자들은 원전 가동을 당장 정지시켜서 핵연료 발생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전력의 빈자리를 LNG와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이에 따른 전기요금 상승에 대한 대책은 없다. 1㎾h 전력을 생산하는 데 5원이 들어가는 원자력을 90원이 드는 LNG로 대체했을 때 소비자 전기요금 상승은 사회 혼란까지 야기할 수 있는 재앙에 가깝다. 산업계에선 제조업 엑소더스가 빚어질 수 있다. 무엇보다 LNG에 대한 자원 의존도가 높아지게 된다. 자원 빈국에서 에너지 포트폴리오 축소는 치명타다.
신재생에너지로의 대체는 현실성이 떨어진다. 비용을 떠나 물리적으로 대체할 공간이 부족하다. 태양광 1㎿ 설비 설치에 필요한 부지는 1만5000~2만㎡다. 최근 건설 승인이 떨어진 신고리원전 5·6호기(1400㎿×2) 규모의 설비를 태양광으로 대체하려면 최소 공간인 1만5000㎡로 잡아도 4200만㎡ 부지가 필요하다. 여의도(290만㎡) 14배에 이르는 면적에 태양광을 덮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젠 원자력과 사용후핵연료에 관한 40년 묵은 찬반 패러다임을 바꿀 때가 왔다. 그동안 논의는 주로 정부와 원자력 산업계, 환경단체와 지역주민 사이에서 오갔다. 대한민국 전체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이슈지만 `그들만의 리그`로 진행돼 왔다.
“어른들이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마련한다지만 결국 우리가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더 많이 접하게 될 것이다. 어른끼리만 논의하고 결정을 내릴 것이 아니라 우리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여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난 8일 `방사성폐기물 안전관리 국제 심포지엄`의 부대 행사로 열린 미래세대 타운홀 미팅에 참석한 한 학생의 말이다. 이날 미팅에 참석한 40여명의 학생들도 사용후핵연료 문제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님을 체감했다. 그리고 자신들 목소리도 관리 대책에 담기길 기대했다. 미래 세대만의 일도 아니다. 원자력산업계와 지역주민을 넘어 더 많은 계층과 사람이 사용후핵연료 논의에 동참할 수 있어야 사회 합의는 아니라 하더라도 국민 공감까지는 갈 수 있다.
소통을 위해선 정책 투명성도 중요하지만 일부 지역과 단체만의 목소리가 아니라 많은 이의 보편화된 인식을 도출할 수 있는 사회 투명성도 요구된다. 진정한 소통은 정부와 원자력산업계, 사회 구성원 모두가 투명하고 성숙한 의견을 제시할 때 이뤄질 수 있다.
자료:한국원자력환경공단
자료:산업통상자원부
조정형 에너지 전문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