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이 만난 생각의 리더]<62>창업대사 류정원 힐세리온 대표

Photo Image
창업대사인 류정원 대표는“현재 창업 지원책은 외국에 비해 우리가 많지만 정작 출구 전략이 없다”면서 “출구 전략을 정부와 재계가 하루빨리 만들어 줘야한다”고 강조했다.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창업대사인 류정원 힐세리온 대표는 경력이 별나다. 멘사회원으로 회사를 아홉 곳이나 옮겨 다녔다. 프로그래머로 직장 생활, 창업과 실패, 의학전문대학원 진학, 의사의 삶, 우주인 도전, 기업 임원, 재창업을 했다. 그는 “정신없이 왔다 갔다 했다. 세상에 없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2012년 2월 힐세리온을 창업, 세계 최초로 휴대용 무선 초음파 진단기를 개발했다. 그의 말처럼 당시 세상에 없는 휴대용 진단기였다. 현재 30여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류 대표는 제3기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과 창업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지난해 8월 창업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위촉한 창업대사 17명 가운데 한 사람이다.

류 대표를 6월 13일 오후 서울 구로구 디지털단지에 있는 힐세리온의 회의실에서 만났다.

류 대표는 “창업을 권할 게 아니라 벤처 창업 생태계 구축이 시급하다”면서 “그렇게 하면 너도 나도 창업에 뛰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창업지원책은 외국에 비해 많지만 정작 출구 전략이 없다”면서 “정부와 재계가 하루빨리 출구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창업대사로서 그동안 어떤 활동을 했나.

▲3기 청년위원회 자문기구로 창업분과와 일자리창출 분과위가 있다. 나는 창업분과위원장이다. 주로 창업자나 예비 창업자들의 멘토 역할을 한다. 창업버스를 타고 지방에 가서 창업 희망자와 만난다. 군부대에서 제대를 앞둔 병사들에게 창업 이야기도 한다. 의대생 대상으로 창업콘서트도 진행했다.

-활동하면서 느낀 점은.

▲나는 청년창업사관학교 2기 졸업생이다. 누구보다 창업자들의 심정을 잘 안다. 그래서 멘토링을 많이 한다. 우리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창업 지원책은 외국 어느 나라보다 많다. 정책자금을 비롯해 중소기업청에서 도입한 팁스(TIPs)제도 등 다양하다. 하지만 의외로 정부 지원 프로그램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전국 18개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지역별로 특화 사업을 지원한다. 충남은 태양광클러스터 구축, 경남은 메카트로닉스 허브 등이다. 원스톱 서비스다. 아이디어가 있는 창업자들이 해당 센터를 찾아가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현재 시급한 일은 무엇인가.

▲창업 생태계 구축이다. 특히 누구나 재도전할 수 있게 하는 사회안전망을 조성해야 한다. 그래야 성실한 실패를 자산으로 만들 수 있다. 지금은 창업에 한 번 실패하면 신용불량자로 전락한다. 대표이사의 연대보증 문제도 과거에 비해 개선했지만 아직도 미흡하다. 미국에는 대표이사의 연대보증제가 없다.

-창업 시 가장 주의할 점은.

▲창업할 때 대출을 받지 말고 투자를 받아야 한다. 투자자를 설득 못하면 사업 아이템을 다시 가다듬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가장 중요한 건 창업자다. 외국은 연쇄 창업을 한다. 테슬라모터스 최고경영자(CEO)인 엘론 머스크는 페이팔을 창업해 이베이에 팔고 나서 테슬라모터스를 창업했다. 지금은 민간우주항공기 개발사인 스페이스X의 CEO다. 1년차 창업자가 금융기관에서 1억원 대출 받기는 쉽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1억원이 큰돈이지만 직원 1~2명 월급 주고 몇 달 지나면 돈은 바닥난다. 나는 정부 창업지원 프로그램인 TIPs가 좋다고 생각한다. 사업은 투자의 연속이다. 미국은 3년 연속 흑자를 내지 못하면 대출을 안 해 준다. 나도 창업에 한 번 실패한 경험이 있다. 신용불량자 일보 직전인 2012년 2월 서울 중구 충무로의 지인 사무실 구석에서 의자 2개로 다시 창업했다. 하지만 대출은 받지 않았다.

Photo Image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정부는 창업을 적극 권하고 있다.

▲정부가 창업을 권하지 않아도 창업에 뛰어드는 창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게 먼저다. 미국, 이스라엘, 중국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창업 출구(出口)가 없다. 창업해 돈을 버는 방법은 두 가지다. 상장(上場)과 인수합병(M&A)이다. 우리 기업은 상장이 80%, M&A가 20% 정도의 구조다. 창업 천국인 미국은 상장이 20%, M&A가 80%다. 그만큼 M&A가 활발하다. 우리 기업은 상장으로 가는 기간이 평균 10년이다. 의료기기는 20년이다. 창업가는 큰 기업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머스크처럼 벤처 사업가여야 한다. 그는 벤처기업을 대기업에 팔고 또 창업했다. 한국에도 그런 성공 모델이 많아 나와야 한다.

성공한 창업가가 많이 나오면 정부가 창업을 권하지 않아도 너도 나도 창업에 뛰어들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정부나 재계가 창업 생태계를 만드는데 속도를 내야 한다. 유능한 젊은이가 공무원이나 대기업에 몰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창업해 봐야 실패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창업 출구 전략을 만드는 것이 창업 활성화의 지름길이다. 이스라엘에는 내수 시장이 없다. 그래서 창업한 기업을 미국에 가서 판다. 우리는 이스라엘보다 여건이 더 좋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이 있지 않은가.

-그동안 직장을 몇 곳이나 다녔나.

▲남보다 많이 옮겨 다녔다. 여기저기 다니느라 바빴다.(웃음)

그는 중·고등학생 때부터 컴퓨터와 전자공학에 빠졌다. 고교 시절 성적은 반에서 중위권에 속했다.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 입학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담임 선생님의 격려에 힘입어 단기간에 성적을 올려 동국대 전자계산학과에 입학했다. 벤처기업에서 일하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육군에 입대하고 제대했다. `공부를 제대로 해보자`며 1년 동안 대성학원에서 재수, 서울대 물리학과에 합격했다. 2학년 때부터 전자공학을 복수 전공했다. 그동안 8개 회사에서 일했다. 2001년 벤처기업을 창업했으나 2년 만에 문을 닫았다. 세상은 내 생각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그때 깨달았다. 유학을 준비하다 벤처기업 최고기술책임자(CTO)로 들어가 6년 동안 일했다. 2005년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 의사로 변신했다. 우주인 선발에 응시했지만 최종 단계에서 탈락했다. 2009년에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항공우주의학 프로그램을 한국인 최초로 수료했다. 한국의학연구소와 청구성심병원에서 의사로 일하다가 2012년 2월 힐세리온을 창업했으며, 1996년 멘사회원으로 가입했다. 공인 아이큐는 156. 현재 KAIST에서 뇌과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뒤늦게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한 이유는.

▲미지의 세계에 발자국을 남기고 싶었다. 두 가지 일에 관심을 두었다. 우주와 인공지능(AI) 분야다. 뇌과학을 공부하기 위해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했다.

-우주인 선발에도 응모했는데….

▲2006년 한국 최초로 우주인을 공모했다. 우주시대가 열린 것으로 판단해 응모했다. 당시 3600명이 응모했다. 심사가 엄격했다. 나중에 30명에서 최종 10명을 선발했으며, 나도 그 안에 들어갔다. 우주인으로 선발된 고신 씨는 대학 후배로, 함께 심사를 받았다. 가장 힘든 게 신체검사였다. 30명에서 10명을 선발할 때는 공군병원에 일주일 동안 입원해 정밀검사를 했다. 별의별 검사를 다 받았다. 그런데 최종 선발에서 탈락했다.

-어떻게 했나.

▲너무 억울했다. 미국 항공우주의학(AM)을 전공해 비행군의관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하려면 AM레지던트 과정을 밟아야 하는데 자격이 시민권자로 제한됐다. 시민권을 얻으려면 7년이 걸렸다. 포기하고 2009년 여름에 한 달 동안 한국인 최초로 항공우주의학 프로그램 시험에 합격, 과정을 이수했다. 전 세계 의사들이 응모한 가운데 30여명이 선발됐다. NASA는 관련 자료를 교육생에게 다 공개했다. 논문도 제출했다. 나는 여전히 우주 사업의 꿈을 품고 있다. 나중에 민간우주 사업을 할 생각이다. 그런데 머스크가 먼저 우주 사업을 시작해 아쉽다(웃음). 지금 사업은 그 길로 가기 위한 발판이다.

Photo Image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 휴대용 무선초음파 진단기(소논)는 어떤 제품인가.

▲이 진단기는 우리가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정보기술(IT)과 의료기술을 접목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 CE 인증을 받았다. 당연히 우리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인증도 받았다. 병원에서 흔히 보는 기존의 초음파 진단기에 비해 가격이 10분의 1 정도로 싸다. 의사들이 언제 어디든지 휴대할 수 있다. 또 응급 현장에서 영상 정보를 스마트폰으로 전송할 수 있다. 기존 제품은 진단용 장비지만 우리 제품은 청진기 개념이다. (책상 위에 놓인 진단기를 보니 크기가 전기면도기와 비슷했다.)

-몇 개국에 수출하고 있나.

▲30여개국에 이른다. 우리는 총판 계약 시 희망 업체로부터 제안서를 받는다. 우리가 제안하지 않는다. 현재 10개 업체와 총판 계약을 했다. 최근 의료 시장이 큰 베트남에 일주일 동안 다녀왔다. 베트남 3대 대형 병원의 한 곳인 박마이병원과 진단기 보급, 진단교육 등 상호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12일 귀국했다.

-초음파 세계 시장 규모는.

▲기존의 세계 초음파 시장은 7조원 규모다. 초음파진단기를 청진기처럼 사용하는 일은 이제 시작이다. 2020년께면 3조원 규모로 급성장할 것으로 본다. 이미 기존의 초음파 시장은 포화 상태다. 문제는 휴대용 진단기 사용법에 대한 교육이다. 나도 대학에 가서 응급 초음파 교육을 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 같은 국제기구를 통해 공익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회사 수익이 늘면 규모를 확대할 계획이다.

-좌우명과 취미는.

▲좌우명은 `후회 없는 삶을 살자`다. 취미는 스피드와 스릴을 즐기는 익스트림 스포츠다. 암벽 등반, 카레이싱, 스쿠버다이빙을 한다.

만능 스포츠맨으로 태권도, 검도, 킥복싱, 무예타이 유단자다. 저서로 `우주를 향한 165일간의 도전`(공저)과 번역서로 `입문자를 위한 임베디드 시스템`이 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