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가전제품의 브랜드 인지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미 국내 소비자 4명 가운데 3명은 중국 정보기술(IT) 가전제품을 구매한 경험이 있다. 82%는 중국 가전을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큰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체급을 키운 중국 가전 기업은 국내 시장에서 빠른 속도로 침투하고 있다. 온라인몰에서부터 오프라인 매장까지 전방위로 세를 넓히면서 국내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고 있다.
`가격 대비 성능(가성비)`으로 승부수를 건 중국 가전 기업 제품에 대한 국내 소비자 인식도 개선됐다. 업계에서는 이미 중국 가전 기업이 국내 중견·중소기업과 직접 경쟁 구도를 펼치고 있는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국내 온·오프라인 가전 양판점이나 온라인몰에서 취급하는 중국 가전제품을 종류와 개수로 따지면 아직 많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점차 판매 가전제품 종류가 늘고 인기가 커짐에 따라 매출이 빠르게 증가하는 모양새다.
국내 최대 가전기기 양판업체인 롯데하이마트에서 판매하고 있는 중국 브랜드로는 TCL(TV), 하이얼(TV, 냉장고), 미디어(냉장고, 세탁기, 건조기), 레노버(노트북, 태블릿PC), 샤오미(모바일 액세서리) 거란스(생활가전) 등이다.
제품군별 점유율(하이마트 매출액 기준)은 5%대 미만으로 아직 미미한 수준이지만 올해 1~5월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25% 늘었다.
지난해 12월 말 롯데하이마트는 세계 TV 시장 점유율 3위 브랜드인 중국 TCL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론칭했다. 32·40·50인치 LED TV로, 비슷한 사양의 국산 대기업 제품보다 30% 저렴하게 판매했다. TCL 초기 물량 6000대는 20일 만에 완판됐다. 론칭 열흘 만에 32인치와 40인치를 완판했으며, 50인치는 300대를 판매했다. 인기에 힘입어 지난 5월에는 TCL TV 프리미엄 라인인 TCL UHD 커브드 TV를 출시했다.
중국 가전 기업의 냉장고 부문에서는 현재 롯데 하이마트에서 하이얼 4개, 미디어 2개 등 총 6개 모델을 판매하고 있다. 하이마트는 연말까지 10개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냉장고 부문에서는 하이얼과 미디어 소형, 콤비냉장고와 같은 `세컨드 가전`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회사 관계자는 전했다.
휴대용 충전기, 노트북 등에서도 중국 기업의 제품 인기는 이어진다. 하이마트는 현재 레노버 노트북, 테블릿PC 등 6종을 판매하고 있는 가운데 연말까지 10종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윤용오 롯데하이마트 상품총괄팀장은 “아직까지는 중국 브랜드 제품의 매출액 비중이 미미한 수준이지만 향상된 품질과 우수한 가성비가 입소문나면서 실용성을 중시하는 소비자를 중심으로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롯데하이마트는 화웨이 스마트폰 등 경쟁력 있는 중국 브랜드 도입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 유통 채널에서도 중국 가전제품은 큰 인기를 끌며 매출 성장세를 이어 가고 있다.
11번가에 따르면 올해 1~5월 샤오미와 하이얼 제품 거래액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2%, 360% 늘었다.
온라인 채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중국 브랜드는 단연 `샤오미`이다.
11번가에 따르면 보조배터리와 미밴드 제품이 판매의 주를 이룬 반면에 올해는 해당 제품과 함께 샤오미 나인봇, 체중계 및 공기청정기(미에어) 등 판매 제품군이 다양해지고 있다. 듀얼 OS(안드로이드, MS 윈도)를 탑재한 태블릿 및 가상현실(VR) 기기 등의 판매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하이얼은 소형 냉장고와 일반 세탁기 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소형 냉장고의 경우 230L, 310L 용량대가 주로 판매되고 있다. 세탁기의 경우 3㎏ 미니 세탁기가 인기다.
11번가 디지털 및 가전 전문 MD는 “지난해 가성비 위주의 샤오미 열풍에서 시작된 중국 브랜드 상품은 더욱 다양해진 기능과 성능으로 판매가 계속 확대되고 있다”면서 “앞으로 UHD 같은 TV 상품이 큰 인기를 끌 것”이라고 예상했다.
올해를 기점으로 중국 가전제품의 국내 시장 점유율 확대는 가속될 것으로 보인다.
소형가전을 넘어 중대형 제품으로 중국 공세가 강화되고 있다. TV에 세계 1위 에어컨 생산판매 기업 거리(GREE)가 최근 한국 진출을 선언했다. 거리는 중국 기업으로, 국내 총판 업체 이지웰페어와 독점 공급 계약을 맺고 올 여름 한국 진출에 공식 나선다. 거리가 동급 사양 대비 대폭 낮은 가격에 에어컨을 출시할 경우 국내 가전 업체와의 경쟁은 불가피하다. 올해는 6평형, 10평형 등 벽걸이 에어컨을 중심으로 한국 시장에서 판매를 개시하지만 제품군을 다양화하고 유통채널을 공격적으로 늘릴 경우 국내 기업엔 위협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둥밍주 중국 거리전자 회장은 최근 방한해 투자 계획을 내비치는 등 한국 진출 확대에 대해 강한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샤오미는 본사 정책 변경으로 지난 5월부터 국내 총판 기업 코마트레이드와 여우미 등 2개 공식 채널을 통해 한국형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샤오미가 올해부터 공식 총판 기업을 두고 제품을 공급해 제품 품질 관리 수준을 높이면서 사후관리(AS)까지 원스톱으로 해결, 고객 만족도를 높이는데 집중하고 있다.
포브스의 글로벌 2000에 따르면 중국 가전기업 순위는 최근 5년 동안 빠르게 올라왔다. 2011년에는 1000위권 밖에 있던 메이디, 거리, TCL은 2015년엔 각각 385위, 436위, 820위에 등극했다. 포브스 글로벌 2000은 매출, 이익, 자산,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글로벌 1~2000위 기업을 선정한다.
한국 시장뿐만 아니라 중국 가전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빠른 속도로 점유율과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는 의미다.
이뿐만 아니라 중국 가전 브랜드는 큰 규모의 인수합병(M&A) 등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확충하고 있다. M&A를 진행한 메이디, 하이얼, 스카이워스, 하이센스 등 기업은 피인수 기업의 브랜드 사용권을 획득한 동시에 선진국 생산기지나 선진국 시장에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카피캣`이라는 오명을 씻기 위해 중국 가전 기업은 특허와 연구개발(R&D) 투자에도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가전 업계 관계자는 “써 보고 고장 나면 버리는 저가 가전이 아니라 이제 중국 가전은 비슷한 제품 규격에 가격은 아주 저렴한 제품으로 인식되고 있다”면서 “소형 액세서리 IT나 공기청정기 같은 소형 가전 중심에서 대형 가전으로 점차 인기 판매 제품군이 넓어지면 중국 기업의 한국 시장 내 존재감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소라기자 sr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