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6시 30분에 눈을 뜬 직장인 구보씨. 구보씨는 침대에서 찬찬히 스마트폰으로 오늘 날씨와 뉴스를 챙긴다. “오늘도 별일 없군”이란 말을 되뇐 후 간단히 아침식사를 챙겨 먹는다. 7시 10분 마포 집을 나섰다. 그의 직장은 판교다. 판교행 버스를 탔다. “다행이군. 오늘은 앉아서 출근했어.” 판교역 `낙생육교`에 도착한 시간은 8시 30분. 벌써 판교역 정류장에는 사람이 북적거린다. “10시까지 출근하는 사람도 많은데 왜 이리 사람이 많은 거야”라고 말해 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어렵사리 버스에 오른 구보씨. 8시 50분에 출근 카드를 찍었다.
회의와 미팅, 다른 부서에서 전달받은 업무로 오전 시간이 갔다. 간단한 점심 후 사무실로 들어섰다. 그런데 박 팀장이 부르더니 “업무가 잘 안됐다”고 소리를 지른다. 옆 동료도 있는데 무안하다. 박 부장과의 관계는 늘 그렇다. 한쪽은 소리치고 한쪽은 조용히 듣는다. 오후 시간은 영업과 미팅으로 참 빨리 간다. 미처 하지 못한 서류작업은 늦게까지 할 수밖에 없다. 오후 9시에 회사를 나서니 밖에 술 한잔하는 동료들이 보인다. 박 부장과의 일도 그렇고 스트레스가 많지만 집으로 향했다. 버스 안에서 움켜진 구보씨의 스마트폰에는 마치 박 부장을 응징하듯 액션 혈투가 한창이다.
판교테크노밸리에서 근무하는 직장인의 근무 여건을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꾸며 본 구보씨의 하루다. 지난 2009년 입주가 첫 시작된 이후 정보기술(IT), 바이오기술(BT), 나노기술(NT) 등 기술 기업이 몰리면서 판교는 국내 대표 기술집적단지로 성장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1121개 기업이 입주했다. 입주 기업 임직원 수는 7만2820명에 이른다. 전자신문은 팀블라인드와 공동으로 판교 지역 입주 기업 종사자를 대상으로 판교테크노밸리의 근무 여건과 입주 기업 근무 여건을 묻는 설문을 진행했다.
◇판교, 쾌적하고 깨끗한 주변 환경에 만족…교통·물가만 개선된다면
판교 직장인의 근무지 만족도 평가는 매우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판교테크노밸리에서 일하면 좋은 점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54.6%(268명)이 깨끗하고 쾌적한 주변 환경을 꼽았다. 다른 산업단지와 달리 공원과 광장이 많은 덕택이다. 실제로 판교에는 동서를 가르는 생태천과 화랑공원, 봇들공원이 자리 잡고 있어서 산뜻한 공기를 뿜어낸다. 중앙광장은 물론 생태천 주변으로도 운동시설과 산책로가 마련돼 있어 점심시간이면 사람들로 붐빈다.
정보통신기술(ICT), BT 등 동종 업종의 기업이 몰려 있어서 업계 동료와 어울리는 것을 장점으로 꼽는 답변도 21%(103명)에 달했다.
게임업계 종사자 A씨는 “판교에는 특히 게임 업체가 많아 개발 애로 사항이나 회사 얘기를 주고받기 편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IT 기업이 몰려 있어 점심시간이면 광장이나 생태천 주변에서 스케이드보드나 농구를 하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면서 “자유로운 분위기를 보면 저절로 힘이 난다”고 말했다.
판교에서 일하면서 나쁜 점으로는 출퇴근과 비싼 물가를 꼽는 답변이 통틀어 80%에 달했다. 응답자 가운데 42.8%(210명)가 출퇴근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37.7%(186명)는 물가가 비싸 음식 사 먹기가 두렵다고 응답했다.
이처럼 출퇴근에 불만을 호소하는 답변은 판교의 개선 사항을 꼽는 질문에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판교테크노밸리에서 일하면서 이 점은 바뀌었으면 한다고 생각하는 부문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 61.1%(300명)는 정류장과 주차장 등 출퇴근 시설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 다음으로 많은 답변은 `음식점·마트 등 생활시설 부족`(18.1%)으로, 음식 값 등 물가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조사됐다.
직장인 B씨는 “판교로 들어오는 관문이 많지 않다 보니 출근시간이면 정류소는 사람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며 개선을 희망했다. 물가를 묻는 질문에는 그는 “음식 값이 비싸서 주변 음식점을 잘 안 가고 도시락을 싸 와 회사에서 먹는 일이 많다”고 귀띔했다. 전체 기업 가운데 22개 기업이 자체 식당을 운영하면서 8716석을 확보했지만 7만명을 수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음식점이나 마트 등이 들어설 수 있는 상가시설이 적어 다른 지역에 비해 음식점 경쟁이 덜하지만 수요는 꾸준하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유치원 등 보육 관련 시설 충원도 11.4%(56명)가 답해 일과 양육을 병행하기 어려운 현실을 담은 것으로 평가된다.
출근 시간을 묻는 질문에는 답변이 다양, 그나마 출근 시간을 분산시킨 것으로 분석됐다. 오전 9~10시 출근이 44%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으로 오전 8~9시 31.2%, 오전 7~8시 14.3%로 나타났다. 자율 출퇴근도 정착돼 7.7%는 자유롭게 출퇴근한다고 답했다.
주중에 쌓인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소하느냐는 질문에는 집에서 편히 쉰다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46.6%(229명)가 `집에서 평화로운 휴식`을 스트레스 해소 방법으로 꼽았다. 이어서 동료나 친구와의 수다 또는 음주가무(23.8%), 게임·레저 등 취미활동(17.9%), 수면(8.6%) 순이었다.
팀블라인드는 판교 지역이 다른 산업 지역에 비해 주변 환경이 쾌적하고 동종업계의 젊은 층이 많이 근무하면서 만족도가 높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영준 팀블라인드 대표는 “판교 직장인들은 접근성 면에선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생태천과 공원 등 녹지가 잘 조성돼 만족감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특히 IT 동종업계 동료들 간에 허물없이 소통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경민 성장기업부(판교)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