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사진 속에서 영국 농림부 장관이 네 살배기 딸과 함께 햄버거를 먹고 있다. 광우병으로 영국 축산업이 몰락 위기에 처하자 영국 정부는 각종 `과학적 근거`를 들며 광우병은 인간에게 발생하지 않는다고 홍보했다. 이 사진은 장관이 직접 영국산 소고기로 만든 햄버거를 그것도 어린 딸과 함께 먹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소고기가 얼마나 안전한지를 역설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 많은 이들이 죽음에 이르는 처참한 결과에 이른다.
이 사진은 과학기술 정책 역사를 논할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짐작컨대, 이 배경에는 축산업을 살려야 한다는 영국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담겼다.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는 정말로 광우병이 발병하지 않는다는 믿음도 있었을 것이다. 당시 과학적 근거라는 것도 조작된 것이 아니라 실험실에서 나온 실제 연구 결과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야 부모가 그 어린 딸에게 독이 될지도 모를 음식을 먹일 수 있었겠는가.
`과학적 근거`나 통계를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동시에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며칠 전 우리 정부가 미세먼지 대책을 발표했다. 2013년 대기 분석 통계에 현실적 수치를 반영해 경유차를 미세먼지 주범으로 지목했다. 삼겹살, 고등어도 미세먼지 요인으로 거론됐다. 그렇다면 지난 2009년 `클린디젤` 정책은 무엇이란 말인가. 당시에는 기후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위해 경유차를 장려했다. 이산화탄소를 잡으려고 했더니 이제는 미세먼지가 문제가 된 꼴이다.
그 어느 것도 거짓은 아닐 것이다. 주범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경유차는 분명 다른 차량에 비해 미세먼지를 더 많이 발생시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경유차를 줄인다고 대기가 깨끗해질까. 아닐 것이다. 휘발유차 역시 많은 문제점이 있음을 `클린 디젤 정책`을 통해 확인한 바 있다. 자동차 규제 위주 정책만 펼쳤더니 정작 진짜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던 것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미세먼지를 잡으려고 했는데 몇 년 후 또 다른 대기오염 물질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조사와 과학적 실험은 늘 그렇듯 한계가 존재한다. 우리가 모르는 미지 영역이 존재한다.
역사를 통해 단편적인 `근거`가 얼마나 악용되는지 배웠다. 단편적 숫자에 기반한 정책은 후대에게 뼈아픈 결과를 남겨줄 뿐이다.
문보경 자동차 전문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