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를 생산해 수요처에 공급하는 전력 인프라에서 각종 기자재와 산업용 전기기기를 `중전기기`라 한다. 전기 생산에서 수송, 변환, 사용까지 전력 계통 각 단계에는 높은 전압과 전류를 가하는 여러 형태의 중전기기가 필요하다. 발전기와 전동기 등 회전기기, 변압기와 차단기 등 전기기기, 전선 및 기타 전기기기다.
산업 구조의 복잡화, 시스템화에 따라 중전기기 또한 전력전자와 메카트로닉스 기술 응용기기로 확대되고 있다. 신소재·초전도·디지털 등 첨단 기술이 적용되면서 의료용, 환경산업용, 전기교통용 기기로 적용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중전기기 산업은 일반 산업과 다른 몇 가지 특징이 보인다.
중전기기 산업은 국민 생활과 경제 활동에 필수인 전기에너지를 공급하는 발전설비, 송·변전설비, 배전설비를 생산·공급한다. 국가 전력 공급망 구축과 운용에서 핵심 설비를 담당하는 기간산업이자 자본재 산업이다.
또 고도의 신뢰성과 안전성이 요구되는 기술집약 산업이다. 고전압·대전류를 다루기에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것은 물론 안전성과 신뢰성을 갖추기 위한 장기간의 검증과 국제 인증이 필수다.
수출용 중전기기는 안정성과 표준화, 각국의 다양한 전력 계통에 맞는 규격화까지 이뤄 내야 시장 개척이 가능하다.
제품의 라이프사이클이 길고 기술 변화 속도는 다소 느리다는 특징도 있다. 제품 평균수명은 20년 정도로 단기간에 기술 확보는 어렵지만 한 번 개발한 기술은 장기간 활용할 수 있다. 동시에 초기 설비투자액은 높고 투자회수 기간은 길다.
이러한 특성으로 중전기기는 부품·소재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전·후방 산업이자 세계 불황과 관계 없이 지속 성장하는 분야로서 가치를 새롭게 인정받고 있다.
`대전력시험설비`는 이러한 중전기기의 안정성과 신뢰성을 평가하고 검증하는데 사용한다.
국내에서 송전과 배전 전력기기를 모두 시험할 수 있는 대전력시험설비는 한국전기연구원(KERI)이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다. 과거 우리나라 중전기기 산업 발전에 큰 역할을 해 왔다.
하지만 KERI 대전력시험설비는 1982년 설치 후 30여년의 수명 연한을 넘었다. 설비 노후화로 불시 고장과 가동 중단 우려가 높아졌으며, 기존의 1기 설비를 100여개 기업이 공동으로 활용하면서 시험물량 적체 문제도 야기됐다.
여기에 세계 전력계통 최고전압은 1100㎸급으로 격상되고, 유럽이 주도하는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는 중전기기 성능평가 기준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KERI는 만성의 시험적체 해소와 원활한 대전력시험서비스 제공을 위해 2011년부터 5년 동안 `4000MVA급 대전력시험설비 증설사업`을 추진했다. 국비를 포함해 1596억원이 투입된 이 사업은 KERI 설립 이래 최대 프로젝트로, 다음 달 완료된다.
현재 세계 중전기기 시장은 글로벌 경기 침체와 설비투자 위축에도 신규 전력설비 구축과 교체,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성장 지속에 힘입어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국내 중전기기 업체들은 중동 및 아프리카 지역과 신흥국을 중심으로 전선, 발전기, 전동기, 변압기, 차단기 등 중전기기 수출 확대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KERI `4000MVA급 대전력시험설비 증설사업` 완료는 우리나라의 중전기기 기술 혁신, 국제 경쟁력 확보, 글로벌 신성장 동력 창출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실제로 국내 기업은 초고압 중전기기 제품 개발에서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제품 개발 기간도 단축하는 직접 효과를 보게 된다.
이번 증설로 기존의 차단기, 개폐장치, 퓨즈류, 변압기, 피뢰기, 전력용 케이블 외에 직류 2000V 150㎄까지 대용량 고압 직류 전력기기(차단기, 개폐기, 퓨즈 등) 시험이 가능해졌다. 직류 전력기기 국산화 개발에 활력을 불어 넣을 것으로 기대되는 대목이다.
KERI는 7월부터 기존의 4000MVA급 단락발전기 1기, 신규 2000MVA급 단락발전기 2기를 활용해 복수 시험운영체계를 구축하고 고효율 대전력시험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우리나라 중전기기 업체가 이를 활용,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길 기대한다.
김맹현 한국전기연구원 대전력증설사업본부장 kimmh@ke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