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강국으로 불리는 대한민국. 반도체 제작 과정에서 많은 이가 메모리와 집적 기술을 떠올리지만 `세정 공정`이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세정은 반도체의 높은 수율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핵심 공정이다.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장비 제조 기업 디바이스이엔지(대표 최봉진)는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개발에 필요한 수많은 공정 가운데 주로 세정 장비를 개발, 생산한다.
하드웨어(HW)를 넘어 소프트웨어(SW) 기술력으로 국내 세정 공정의 새로운 활로를 열고 있다.
보관용기(FOUP) 세정장비가 대표적이다.
세정 공정은 제품을 깔끔하게 유지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불순물을 제거하면 소자 성능이 향상되고 오염 물질 재흡착도 막아 결과적으로 제품 품질을 높이고 생산 수율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웨이퍼나 글라스를 세정하는 곳은 꽤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외를 막론하고 웨이퍼 보관용기를 세정하는 기업은 많지 않습니다. 국내만 하더라도 제품 개발이 양산으로 이어지는 기업은 우리 회사뿐입니다. 보관용기 세정 수요가 많지 많아 기업에서 섣불리 시도하기 어려운 분야입니다.”
이 회사 김태주 연구소장의 설명이다.
김 연구소장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국내 시장은 분명 존재한다”면서 “보관용기 세정 분야에서만 연간 40억~70억원의 매출액을 올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회사 전체 매출의 약 13%를 차지하는 규모다.
디바이스이엔지는 2000년대 말 태양전지 시장이 부각되자 시대 흐름에 맞는 태양전지용 공정 건조 기술 개발에 뛰어들었다. 이 기술은 태양전지 세정 과정 가운데 마지막 건조 단계에서 필요하다.
하지만 기술 개발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김 연구소장은 “중소기업 입장에서 연구개발(R&D)비를 충당하기가 쉽지 않았다”면서 “당시 중소기업청의 지원을 받지 못했더라면 연구를 이어가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새로운 블루오션을 개척하기 위해 뛰어든 디바이스이엔지는 중기청의 `기술혁신개발사업` 지원을 받아 `태양전지 결정질 공정 고효율 프로세서 드라이어` 개발을 마칠 수 있었다.
김 연구소장은 “정부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았지만 더 중요한 건 외부 기관의 신뢰를 받았다는 것”이라면서 “정부 출연 연구소 등과 함께 인증된 데이터를 확보했기 때문에 기업 신뢰도를 높일 수 있었고, 여러모로 기업에 도움이 되는 기회였다”며 웃어보였다.
기술 개발의 기쁨도 잠시였다. 2011년 즈음 태양전지 시장이 침체기를 겪기 시작했다. 그동안 개발한 기술이 무용지물로 되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밀려왔다. 회사는 `이`에는 `이`로 맞서기로 했다. 시장이 변하면 회사도 변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디바이스이엔지는 새로운 시장을 찾아 나섰다. 그렇게 시작된 사업이 보관용기 세정장비였다.
태양전지용 건조 공정 기술을 보관용기 세정 장비에 적용했다. 적외선(IR)램프 복사열을 이용, 결정질 태양전지 건조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었다. 건조 과정에 초점을 맞추면서 제품을 찾는 곳이 많아졌다. 회사도 고공 성장했다.
2013년 384억원이던 매출액은 2014년 459억원, 2015년 540억원으로 3년 만에 40% 이상 급증했다.
디바이스이엔지는 장비 제작사이지만 HW에만 치중하지 않는다.
변화하는 시장에 유연하게 맞설 수 있도록 SW에 더 많은 투자를 한다.
“장비 시장 구조가 과거와 다르기 때문에 투자 방향을 바꾸고 있습니다. 최근 장비 부품이 거의 표준화되다 보니 타사 제품과 차별화하기 위해서는 SW 경쟁력을 높여야만 합니다. 설비 안정성보다는 제어 알고리즘 설계가 더 중요해진 거죠.”
디바이스이엔지는 앞으로 세정 장비를 넘어 코팅 분야로까지 사업 영역을 넓힐 계획이다.
웨어러블 디바이스 시장에 적용할 수 있는 코팅 분야를 공략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미 4년 전부터 코팅 기술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김 연구소장은 “그동안 오염물을 닦아 내는 세정 장비를 주로 만들어 왔는데 이 과정을 역으로 뒤집으면 코팅이 가능하다”면서 “미래 시장에서 효과를 낼 수 있는 코팅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를 병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아산=신선미기자 sm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