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우의 성공경제]<29>한국형 경영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한국형 경영은 존재하는가`

그 대답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인 것 같다.

어느 나라건 독특한 역사와 경제 배경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면 그 나라의 특수성이 반영된 경영 특질을 지니게 된다. 한국 경제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유행어와 함께 `한강의 기적`을 일궈 낸 한국형 경영이 강조됐다.

이른바 신바람 경영은 유교 전통에 기반을 두고 구성원의 기(氣)를 살려 주는 관리 방식으로 산업화 난제를 돌파해 나갔다. 즉 솔선수범하는 리더와 참여자의 공존공생 정신이 결합해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신바람을 일으켜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변화하는 경제 환경과 상관없이 미래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경영 원형은 일시 또는 일부분으로 가능할지 모르지만 지속 가능한 형태로 존재하기는 어렵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이후 혁명적으로 바뀐 경제 환경은 국내에서 싹튼 경영 원형을 거부하고 오히려 글로벌 스탠더드를 강요하는 분위기로 돌변했다. 역설적으로 `세계적인 것은 한국적이지 않다`는 말을 실감하게 했다.

또다시 진화를 거듭한 한국 기업은 세계 스탠더드를 `빨리 빨리` 학습해 융합해 내는 혁신 능력을 발휘했다. 신바람 경영을 융합 경영으로 업그레이드함으로써 글로벌 경쟁력을 쟁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때는 국내 인재 기반의 내부 노동시장 의존에서 탈피해 글로벌 핵심 인재를 유입하고 외부 노동 시장을 병행 활용했다. 연공서열과 온정주의 관리 방식에 성과주의 관리 방식을 혼합했다. 그리고 일본식 경영으로부터 배워 온 미세 관리 기법과 효율성 중심 관리체계 위에 미국식 효과성 중심 전략관리를 결합하기도 했다.

이렇듯 한국 기업은 공존하기 어려운 이율배반적 가치를 생산적으로 결합해 내는 데 성공한다. 그 결과 패러독스 경영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한국형 경영 2.0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제고시킬 수 있었다. 세계적 경영 사례로 꼽히는 삼성 패러독스 경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일본식 경영과 미국식 경영을 결합했다. 세계적으로 일본식 경영과 미국식 경영은 근본적으로 상충되는 면이 있지만 삼성은 일본식 경영과 미국식 경영의 장점을 모두 살리면서 동시에 이를 유교 문화와 삼성의 고유 가치·문화에 맞도록 성공리에 변형시켰다. 그 결과 삼성 특유의 경영시스템을 재창조함으로써 탁월한 경영 성과를 창출해 냈다.

둘째 다각화와 전문화를 조화시켰다. 일반적으로 다각화되고 수직 계열화된 체제에서는 전략 초점 부재, 관료주의적 비효율성, 계열사 의존 행태 등으로 인해 성과가 떨어진다. 그러나 삼성은 경공업과 중공업, 제조와 서비스업을 아우르는 넓은 다각화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주요 사업 부문에서 혁신 기술력, 브랜드 파워, 디자인 역량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전문성을 확보했다.

셋째 대규모 조직이면서도 스피디하다. 거대 조직일수록 정보 흐름과 의사결정이 느려지고 부서 간 이해 대립이 느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에 삼성은 한국 최대 기업집단으로서 전 세계 60여개국에 500개가 넘는 해외 거점을 두고 연구개발(R&D), 생산, 구매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어느 선진 기업보다도 빠른 의사결정과 실행 스피드를 구현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한국형 경영 2.0이 미래에도 잘 통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초연결 사회로 질주하고 있는 글로벌 경제에서 많은 한계점을 노출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선발 주자를 재빨리 추격하는 `후발형 경영 방식`으로는 적절했지만 선발 주자가 돼야 하는 경영 방식으로는 효과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없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선발형 창발 혁신을 위해 `새로운 경영`을 과감하게 실천할 시점이 된 것이다.

새로운 경영은 경영 환경 변화로 인해 사전 계획이나 주도면밀한 설계가 효과를 잘 발휘하지 못한다는 데에서 주로 출발한다. 예측불허의 기술 융합과 사회 변화 속에서 어느 순간 발현하는 기회 및 위협에 사전 계획·설계는 무용지물이 되기 십상이다. 이에 따라서 새로운 경영에서는 변화를 쫓아 무작정 빨리 움직이기보다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기회의 실체를 신중히 파악하고 타이밍을 포착, 중요한 순간에 신속히 행동하는 것을 중요시해야 한다.

지금 우리 경제는 글로벌화만이 살길이라는 절박한 생존 문제에 직면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생존을 위해 세계 시장으로 나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새로운 시장의 기회를 포착하고 실현시키는 것이 바로 `새로운 경영`의 핵심 역할이다. 미래 먹거리를 제공하는 한국형 3.0이 성공리에 진화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장우 경북대 교수(성공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