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 인터뷰 - 오정택ㆍ이강우①] ‘히스토리 보이즈’의 역사에서 찾는 다른 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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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승훈 기자

영국 셰필드 공립 고등학교에 다니는 8명의 옥스브릿지(옥스퍼드+캠브릿지) 특별반 학생들은 온갖 지식을 그들만의 논리로 빚어낸다. 학생들이 가진 평면적 시각을 이리저리 굴려가며 입체적인 형태로 만들어, 보다 확실하게 옥스브릿지의 문턱을 넘게 도와주는 역사 교사 어윈과 시험을 위한 교육에 반기를 드는 문학 교사 헥터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학생들의 지성에 ‘세련미’를 더한다.

2014년 재연 이후 2년 만에 관객들을 찾은 ‘히스토리 보이즈’는 역사를 다루는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극 중 역사에 대한 이야기는 분명 큰 파이를 차지한다. 작품에서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수업 주제는 문학, 철학, 세계사, 영화, 그리고 불어까지 등장한다. 핑퐁처럼 오가는 대사들을 따라가다 보면 방대한 범위의 지식에 부침을 느끼기도 하지만, 지적 우월감 속에 숨겨진 진짜 메시지를 찾는다면 작품에 대한 시선은 달라진다.

“‘히스토리 보이즈’라는 작품 자체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워낙 많아서 걱정이 됐던 게 사실이에요. 작품의 팬이 많다는 건, 작품을 훼손시키는 것에 대해 질타도 예상해야 한다는 뜻이니까요. 원래 연출님과 배우들이 생각했던 방향이 있는데, 여러 의견에 휘둘리다 보면 흔들리게 될까봐 저희끼리 그 부분은 특히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매 회차에 나오는 반응들에 동요하지 말고 마지막 공연일을 기준으로 두자고 했죠.” (오정택)

“‘중심을 잃지 않고 그 안에서 디테일을 찾아 나가자’고 저희끼리 자주 얘기해요. 관객분들이 피드백을 주시면, 우리가 생각하는 중심을 기준에 두고, 우리 공연을 더 좋게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되는 의견들은 충분히 수렴하려고 노력해요. 다만, 정택이가 말한 것처럼 단순히 눈에 보이는 모든 호응에 흔들리지 않으려고 해요.” (이강우)

작품 속에서 학생들은 절대 이론이나 지식을 날 것으로 나열하지 않는다. 헥터의 수업에서 학생들은 시간낭비 일지도 모르는, 수많은 시와 희곡의 구절을 암송하고 영화 속 장면을 재연한다. 헥터는 절대 원치 않았지만, 그의 교육은 심장에서 머리로 전달돼 옥스브릿지 합격의 가교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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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승훈 기자

“‘히스토리 보이즈’에는 시가 난무해요. 그리고 그 시들은 학생들이 작품을 자기 나름대로 소화한 다음에 자신의 의견을 말할 때 사용되죠.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고 그걸 조물조물해서 맘대로 공격에 사용해요. 그걸로 말싸움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한 친구들인 거죠.” (오정택)

‘히스토리 보이즈’의 지식 배틀의 핵심이 문학이기 때문일까. 김태형 연출은 이 작품의 오디션을 볼 때, 배우들에게 시를 한 편씩 외워올 것을 요구한다.

“오디션 때 시를 외우는 방식은 학생들의 토론 방식과도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거의 릴레이식으로 했거든요. 미리 정해주시지 않고, 한 사람이 시를 외우고 마지막에 상대에게 순서를 넘기면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순서를 주는 식이었죠. 저는 그때 김재진 시인의 ‘삶이 자꾸 아프다고 말할 때’라는 작품을 준비해 갔어요. 그런데 ‘다 지나간다고, 지나갈 거라고’ 라는 구절이 있네요. 극 중에서 제가 포스너를 위로하는 대사랑 정말 비슷해요. 다 까먹고 있었는데 지금 다시 보니까 정말 신기해요.” (이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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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승훈 기자

영국의 변두리 지방 셰필드에 사는 덩치 작은 유대인 포스너는 같은 반 데이킨을 좋아한다.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자각하고는 자기 인생이 "완전 X 됐다"고 말한다. 반면 데이킨은 잘생긴 외모에 영리하며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는 성격으로 모두가 따른다. 그는 포스너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어린 애의 가벼운 감정으로 치부하며 조금의 틈도 허락하지 않는다.

이강우가 맡은 스크립스라는 캐릭터는 모두를 끌어안지만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는다. 포스너에게 듬직한 어깨를 내어주지만, 뒤돌아서서 데이킨과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와 투닥거리며 농담 따먹기를 한다. 또한, 극의 사이사이 방백을 통해 사건을 정리하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난다. 양쪽을 모두 이해하며 지켜내는 스크립스의 중립적 태도를, 배우 본인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중립을 지키는 역할을 소화하는 게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학생들 사이에서 스크립스는 철저히 포스너와 데이킨 사이에 껴있는 인물로 보여요. 그런데 연습하는 동안, 그리고 프리뷰 공연 때까지도 포스너에게 자꾸만 동정이 갔어요. 저는 사실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거든요. 스크립스는 포스너를 위로하지만, 위로하는 것과 그를 전부 이해하는 건 다른 건데. 그 결을 초반에 제가 착각했던 거죠. 인물을 바라보는 시점에 저도 모르게 너무 이입이 되더라고요. 지금은 최대한 중심을 잡으려고 노력 중이에요. 데이킨과의 씬에서는 철저히 데이킨하고 더 친하게 있고, 포스너와 있을 땐 포스너에게 집중해요. 그런데 저는 점점 스크립스라는 친구가 불쌍하게 느껴져요. ‘저는 제 자신을 특별히 좋아해본 적 없다’라는 말 자체가 점점 와 닿고 그래서 더 안쓰러워요.” (이강우)


진보연 기자 jinb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