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가상현실(VR) 원년.`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문장이다. 그만큼 전 산업계가 가상현실을 주목하고 있다. 가상현실이 전면으로 부상했다는 증거로 1월과 2월에 열린 CES와 MWC를 꼽을 수 있다. 세계 이통사와 네트워크 업체부터 플랫폼 중심에 선 페이스북·구글, 제조업체인 삼성전자·LG전자·HTC·소니 등은 가상현실 기술을 선보였다. 변두리에서 기회를 엿보던 가상현실이 문을 박차고 나왔다.
시장조사업체 IDC는 올해 VR기기 출하량을 960만대로 추정했다. 지난해 35만대에 그쳤지만 올해 폭풍성장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2020년에는 6480만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매년 세 배가량 성장이 이뤄진다.
◇가상현실 재정립 `IT와의 융합`
ICT 산업계가 마치 새로운 분야가 탄생한 듯 `가상현실`을 말하지만 가상현실 개념은 꽤 오래 전에 시작됐다. 말 그대로 현실에 기반을 둔 가상세계를 의미한다. 범위가 꽤 넓다. 소설도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가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 넓게는 가상현실에 포함될 수 있다.
과학기술 발전으로 가상현실은 머릿속 상상만으로 체험할 수 있던 일차원적 공간을 넘어 보다 능동적으로 진화했다. 예를 들어 게임은 양방향으로 가상현실을 체험할 수 있는 플랫폼이자 콘텐츠다. 모니터에 그려지는 가상현실을 키보드와 마우스 등 각종 입력장치를 이용해 제3자가 구축한 게임 플랫폼에 접속하고 자신을 대변하는 아바타로 간접 경험을 얻는다.
최근 논의되는 가상현실은 기존의 틀을 벗어난 형태다. 책 또는 모니터라는 공간을 넘어 사용자가 직접 가상세계로 뛰어들어 시각과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오감으로 직접 경험하는 형태를 의미한다. 전통적 가상현실은 사용자와 완전 분리된 상태였지만 최근에는 사용자와 완전한 교집합을 이룬다.
가상현실에 진입하려면 현실과 완전한 분리가 이뤄져야 한다. 오감 중 가장 제한이 없고 범위가 넓은 시각을 분리시키고자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MD)가 VR기기 핵심으로 떠올랐다. 보다 능동적인 가상현실 체험이 가능하도록 각종 컨트롤러도 제공된다. 향후 더 많은 센서가 더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VR기기를 이용해 플랫폼에 접속하고 그 속에 담겨 있는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다. 그간 IT 공룡들은 가상현실에서 뛰놀 수 있는 생태계 구축에 열을 올렸다. 여기에는 더 빠르고 안정적 네트워크 인프라가 필수다. 이통사와 네트워크 장비 업체도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시기가 바로 올해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VR 하드웨어 판매량이 지난해 14만대에 불과했지만 올해 140만대로 열 배가량 늘어나고 2017년 630만대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시장조사업체 트랜드포스는 VR기기 시장이 2020년 3800만대로 200억달러(약 24조6700억원) 수준으로 클 것이라 예견했다. VR 콘텐츠 시장도 500억달러(약 61조66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VR 디바이스 폭발적 성장
가상현실 생태계 발전에는 크게 디바이스와 플랫폼, 네트워크, 콘텐츠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 중 소비자 접점에 위치한 요소가 디바이스다. VR기기는 높은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PC 기반 디바이스와 휴대성을 중요시하는 모바일 기반 제품이 각광받는다. 모체 없이 VR기기만으로 가상현실을 구현하는 제품도 더러 목격된다.
가상현실을 구현하려면 생각보다 높은 성능이 필요하다. 디스플레이로 초당 최소 60프레임의 균일한 영상을 재생할 수 있어야 한다. 눈과 밀착한 채로 화면을 봐야 해 작은 지연도 허락치 않는다. 프레임이 떨어지거나 들쑥날쑥하다면 멀미 등을 유발시켜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성능을 높이기도 어렵다. 전력효율과 발열을 감당해야 한다.
성능 면에서 앞서 있는 기기는 PC나 콘솔에 기반을 둔 HMD다. 프리미엄 제품군에 속하며 기반 제품까지 섭렵하면 가격대가 높은 편이다.
대표 제품으로는 페이스북 자회사 오큘러스의 상용모델 `오큘러스 리프트`가 있다. 지난 3월 28일 정식 출시됐다. 가격은 599달러지만 PC가 이를 뒷받침해줘야 한다. PC 성능에 따른 영향이 크다.
PC에 기반을 둔 또 다른 제품은 HTC가 야심차게 내놓은 `바이브`다. 이달 출시한 모델로 가격은 799달러다. 바이브 가격에는 HMD뿐만 아니라 카메라 레이저 센서와 각종 컨트롤러가 포함됐다.
콘솔 기반 HMD는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VR`다. 오는 10월 출시된다. 가격 면에서는 399달러로 위 두 기기보다 저렴하다. 별도 액세서리인 동작인식센서 카메라를 구매해야 해 정확한 가격은 459달러 선이다.
성능보다는 휴대성과 편의성을 주력으로 하는 보급형 모델은 모바일기기, 특히 스마트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제품으로 포진됐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 `기어VR`, LG전자 `360VR`가 대표적이다. 대중화 첨병 구실을 하는 모델로는 15달러라는 꽤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구글 `카드보드`와 북경폭풍마경과기유한공사 `폭풍마경`도 빼놓을 수 없다.
PC와 콘솔 기반 HMD는 고정 장소에서 사용해야 한다는 공간 제약이 따르지만 모바일 기반 제품군은 언제 어디서나 쉽게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성능에 따른 제약을 받는다. 모바일 기술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가상현실 구현은 어렵지 않으나 전력효율과 발열은 아직까지 난제다. 초기 갤럭시노트4 기반 기어VR는 발열로 종종 스로틀링이 걸리는 사례가 허다했다. 최근에는 발열문제를 해결한 제품군이 속속 나오고 있다.
지난 16일에는 글로벌 스마트폰 제조업체 3위인 화웨이가 VR기기 시장에 발을 들였다. `화웨이VR`로 명명된 이 기기는 화웨이가 제공하는 무료 영화 약 4000편과 전용 앱 40개를 활용할 수 있다. 사용 환경은 삼성전자 기어VR와 흡사하다.
◇양방향 생태계 확장 숙제
VR기기로 소비자와의 접점을 찾은 거대 IT 공룡은 디바이스뿐만 아니라 콘텐츠를 유통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해 생태계 확장에 사활을 걸고 있다. 부족한 콘텐츠를 보강하고자 360도 촬영이 가능하도록 하는 보급형 기기를 속속 내놓는다. 일방적 가상현실 전달이 아닌 양방향 소통이 가능하도록 발전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포스트 소셜 플랫폼으로서의 가상현실에 주목했다. 지난 2014년 3월 20억달러를 들여 오큘러스를 인수하면서 가상현실에 주력할 것임을 밝혔다. 최근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발자 콘퍼런스 `F8`을 열고 10년에 걸친 기술 로드맵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페이스북은 360도 카메라 `서라운드`를 공개했다. 360도 영상을 3D로 담아낼 수 있다. 카메라 17개로 녹화한 영상을 자연스럽게 이어서 사후제작 과정에 필요한 노력과 시간을 줄일 수 있게 돕는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올해 주력 스마트폰과 함께 360도 촬영이 가능한 VR 카메라를 선보였다. 삼성전자는 180도 범위를 광각 촬영할 수 있는 195도 어안렌즈 두 개를 탑재한 `기어 360`을 공개했다. 두 렌즈가 찍은 영상을 하나로 합쳐 수평과 수직 방향 어디든 360도로 감상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국내에서는 상용화되지 않았지만 북미에서는 가상현실 플랫폼인 `밀크VR` 서비스가 운영 중이다. 오큘러스 스토어와 연동해 관련 콘텐츠를 늘려가고 있다.
지난 22일에는 에버랜드와 함께 `기어VR 어드벤처` 체험관을 오픈했다. 에버랜드 `티익스프레스` 옆에 위치한 체험관은 기어VR와 롤러코스터 형태의 좌석 20개로 구성된 4D 시뮬레이션 기구가 채웠다. `티익스프레스` `호러메이즈` 등 에버랜드 대표 놀이기구를 간접 체험할 수 있다.
LG전자는 지난 3월 31일 `G5`와 함께 `LG 360 캠`을 공개했다. 주변 360도를 찍을 수 있는 카메라다. 누구나 손쉽게 가상현실용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하고 구글 스트리트뷰나 유튜브 360에 공유할 수 있다.
LG전자는 구글과 협력해 LG 360캠에 구글 스트리트뷰 콘텐츠 표준방식 및 OSC API를 채택, 관련 앱과 호환되도록 했다. 촬영 후 촬영 콘텐츠 파일 변환 없이도 곧바로 업로드가 가능하다. 구글은 이 제품을 스트리트뷰 호환 제품으로 인증했다.
◇이통사, 플랫폼·콘텐츠 강화
지난 2월 열린 모바일월드콩글레스에서 국내 이통사는 앞다퉈 VR를 시연했다. 콘텐츠 유통방식이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 기반 스트리밍 서비스로 전환됨에 따라 네트워크 진화 발전 상황을 가시적으로 보여주기에 VR만큼 적절한 예는 없다. VR를 구현하려면 많은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빠르게 보내야 하기에 높은 네트워크 기술력을 요구한다.
특히 5G로의 전환 시 빠른 속도보다는 킬러 서비스가 주요 핵심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최근 서비스되고 있는 콘텐츠는 현재 4G망 안에서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다. 빠른 네트워크 속도에 걸맞은 프리미엄 서비스가 향후 먹거리로 떠오른다. VR가 그 중 하나인 셈이다.
SK텔레콤은 VR 서비스 플랫폼 `T리얼`을 론칭했다. T리얼로 VR와 관련된 촬영도구, 소프트웨어, 콘텐츠를 모두 아우르겠다는 전략이다. 향후 증강현실(AR) 서비스 개발에도 매진한다는 복안이다.
KT는 지난 1월 국내 가상현실 콘텐츠 전문기업인 `AVA엔터테인먼트`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올레TV에서 `360도 VR 동영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프로야구 개막을 시작으로 KT위즈 홈구장에서 VR 모바일 야구 생중계를 시작했다. 28일에는 무비테크 아카데미를 개최해 VR 영상 콘텐츠 제작 및 유통과 관련한 무료 공개 강의도 진행했다.
LG유플러스는 `LTE 비디오포털`에서 360도 VR 동영상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국내 VR전문 콘텐츠 기업인 무버 및 베레스트와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오는 5월 1일부터는 KBS `1박2일`을 360도 주문형비디오(VoD)로 제공한다.
김문기 넥스트데일리 이버즈 김문기 기자(moon@next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