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만 의존해 벼농사를 짓는 천수답이 있었다. 저수지나 강가와 인접한 논에는 물을 끌어올 수 있지만 물가에서 먼 논은 하늘만 바라봐야 했다. 천수답의 생산성은 그 해 날씨에 크게 좌우됐다. 봄에 비가 오지 않으면 모내기가 늦어져서 늦심기가 되고, 모를 낸 뒤에도 비가 적게 와 가물게 되면 벼가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논이 천수답이어서 비가 오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낼 정도였다.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가는 안정된 수확량을 담보할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조선 후기부터 대대적인 수리시설 확충에 나섰다. 현재는 천수답이 거의 사라졌다.
천수답은 볼 수 없게 됐지만 천수답과 마찬가지로 하늘만 바라보는 산업이 지금도 있다. 에어컨과 제습기 등 날씨에 따라 판매량이 민감한 가전제품 산업이다. 여름 날씨가 더우면 에어컨 사업은 대풍이다. 반대로 서늘하면 죽을 쑨다. 제습기 역시 장마 지속 기간 등 강우 상황에 따라 큰 영향을 받는다. 날씨에 따라 삼성전자, LG전자 등 가전업체는 물론 하이마트나 전자랜드 등 가전유통 업계의 실적까지 요동친다.
지난 2014년과 2015년은 여름 기온이 평년을 밑돌았다. 이 때문에 에어컨 판매가 2년 연속 부진했고, 가전과 유통업계가 실적에 어려움을 겪었다. 애써 신제품을 개발해도 소비심리가 살아나지 않았다. 더욱이 지난해는 장마 기간이 아주 짧았고, 비가 오는 날도 적어서 제습기 판매까지 반 토막 났다.
올해도 가전업계는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올해는 여름답게 덥고 시원하게 비도 내리기를 바라면서다.
하지만 오롯이 하늘만 바라보던 과거와는 분명히 다르다. 천수답을 수리답, 수리안전답으로 발전시켜 왔듯이 가전업계는 수년 전부터 에어컨에 제균·제습·공기청정 등 다양한 기능을 추가해 여름철 가전이 아닌 사계절 가전으로 변화시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소비자 인식을 바꾸기에는 미진하다. 하지만 이런 새로운 시도는 계속된다. 또 기술융합시대를 맞아 가전 기능도 더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계절성 가전이 조만간 `천수답 가전`을 벗어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권건호 전자산업 전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