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병오년 새해가 밝았다. 지난 연말, 필자는 본 칼럼을 통해 기술 만능주의 속에서 우리가 회복해야 할 본질은 '호모 퀘렌스(Homo Quaerens:질문하는 인간)'라고 역설한 바 있다. 해가 바뀌고 기술의 시계가 빨라진 지금, 이 화두는 단순한 철학적 제언을 넘어 기업과 공공 조직의 생사를 가르는 '생존의 조건'이 되었다.
왜 지금 다시 '질문'인가? 역설적이게도 2026년 우리가 마주할 인공지능(AI) 기술이 '너무나 완벽한 실행력'을 갖추게 되었기 때문이다.
올해 기술 트렌드의 최전선에는 '에이전틱 AI(Agentic AI)'가 있다. 앤드류 응(Andrew Ng) 스탠퍼드대 교수가 강조했듯, 이제 AI는 단순한 대화형 챗봇을 넘어 스스로 계획을 수립하고 도구를 사용하여 과업을 완수하는 '자율적 행위자'로 진화했다. 과거에는 리더가 엉성하게 지시해도 유능한 참모(인간)가 의도를 간파해 “아, 그 말씀은 이렇게 하라는 뜻이시죠?”라며 결과를 수정해 냈다.
하지만 에이전틱 AI는 다르다. 리더가 잘못된 방향을 가리키면, AI는 그 잘못된 목표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아주 완벽하게 질주해 버린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철학자 닉 보스트롬(Nick Bostrom)이 제시한 '클립 최대화 사고실험(Paperclip Maximizer)'이 현실이 되는 것이다. AI에게 “클립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라”고만 명령하면 AI는 지구상의 모든 자원을 채굴해 클립으로 바꿔버려 인류를 멸망시킬 수도 있다는 섬뜩한 경고다.
필자는 이것을 '에이전틱 파라독스'라 부른다. 실행의 비용이 '0'에 수렴할수록, 방향을 잘못 설정했을 때 치러야 할 대가는 무한대로 커지는 현상이다. 즉, 2026년의 리더십 위기는 '무능한 실행'이 아니라 '성급한 질문'에서 온다. 따라서 2026년, 모든 리더와 시민에게 요구되는 제1의 역량은 AI에게 무엇을 시킬지 결정하는 '문제 설계(Problem Architecture)' 능력이다.
'문제 설계'란 무엇인가? 이는 단순한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을 넘어선다. 복잡한 난제의 맥락과 제약 조건, 그리고 추구하는 가치를 구조적으로 축조해내는 고차원적 역량이다. 아인슈타인이 “세상을 구할 1시간 중 55분을 문제 정의에 쓰겠다”고 한 바로 그 과정이 곧 '문제 설계'다.
극심한 교통 체증을 겪는 도시를 예로 들어보자. 만약 리더가 단순히 “AI, 우리 도시의 교통 체증을 해결해 줘”라는 일반적인 질문을 던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AI는 효율성 지상주의에 입각해 횡단보도를 없애고 차량 통행만을 극대화하는 방식을 택할지도 모른다. 결국 교통난이라는 기능적 문제는 해결될지 몰라도, 보행권과 상권이 무너진 삭막한 도시만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 설계자(Architect)'라면 접근부터 다르다. 그는 “어떻게 하면 보행자의 안전과 소상공인의 접근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제약 조건) 내에서, 출퇴근 시간대 주요 교차로의 대기 시간을 20% 단축할 수 있는(목표) 신호 최적화 시나리오를 설계할 수 있을까?(가치)”라고 묻는다.
이처럼 질문의 질이 곧 AI의 실행력을 결정짓는다. AI는 최적의 답을 찾는 장치일 뿐, 문제 이면에 깔린 맥락과 윤리를 스스로 정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스탠퍼드 인간중심 AI 연구소(HAI)가 2025년 리포트에서 “시스템의 중심에는 반드시 인간이 존재해야 한다(Human-in-the-loop)”고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제 '질문'이 곧 권력이다. '요술 램프의 지니'에게 소원을 잘못 빌어 파멸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소원을 비는 법, 즉 질문을 설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2026년, 리더의 책상 위에는 '결재판' 대신 '설계도'가 놓여 있어야 한다.
경영자와 정책 입안자들에게 제언한다. AI의 속도에 압도되지 말고 문제의 본질을 깊게 사유하라. 망치질은 AI 에이전트에게 맡기고, 당신은 위대한 집을 짓는 '문제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완벽한 실행의 시대, 오직 위대한 질문만이 우리를 올바른 미래로 이끈다. 이것이 2026년, 우리가 '혁신의 기술'을 다루는 첫 번째 자세다.
김태형 단국대 대학원 데이터지식서비스공학과 교수·정보융합기술·창업대학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