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대학 사람들은 총장 한 사람 빼고 모두 억울한 심정이다.”
얼마 전 연세가 지긋하신 전문대 총장과 차를 한잔 했다.
“나는 정부에서 고위직도 해 봤고 이 나이에도 총장을 하고 있으니 전혀 억울하지 않다. 하지만 전문대 교수들은 학생들 취업에, 입시에, 학생지도에 정신이 없다 보니 교수로서 연구다운 연구를 해 볼 틈이 없다. 학생들도 평생 전문대생이라는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니 다들 억울해 할 수밖에….”
가슴이 찡했다. 한국연구재단에서 전문대 지원 업무를 전담하는 부서도 학술진흥본부 소속 전문대학지원팀 하나뿐이다. 본부장, 단장 가운데 전문대를 경험한 사람도 한 사람 없다. 안타깝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청년실업 문제가 사회 이슈로 대두한 지 오래됐다. 올해 1월 통계에 따르면 청년실업률은 9.5%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3%포인트, 전월 대비 1.1%포인트 각각 상승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국 약 140개 전문대에 약 1만3000명의 교수가 재직하고 있는 가운데 청년실업 해결을 위해 전문대 교수들은 발이 닳도록 돌아다닌다.
`2014년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건강보험 및 국세DB연계 취업통계`에 따르면 전문대 취업률은 68%다. 일반대학의 65%보다 높다. 그리고 양 대학 취업률 격차도 점차 벌어지고 있다. 2014년 전문대 졸업자 20만여명 가운데 해외취업자는 약 800명으로 일반대학보다 1.5배나 높다.
전문대 교수들이 제자 취업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학회 학술대회에 가보면 일반대학 교수보다 전문대 교수 참석이 눈에 띄게 적다. 연구재단에서 교수에게 지원되는 과제 선정에서도 전문대 교수 선정 비율이 매우 낮다. 전문대 교수의 학문 역량이 낮아서가 아니다. 취업, 입시활동, 학생지도 등에 정신이 없다 보니 학회 활동이나 연구에 투입할 시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학자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이 그럴싸한 실험실에서 폼 나는 연구에 몰두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더욱이 대학본부에서는 쉬지 않고 입시 충원율과 취업률을 높이라고 채근하니 맘 편하게 연구실에 앉아 있을 시간도 없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총장은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는가.
“500만원이라도 좋으니 전문대 교수만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지원 사업을 만들어 주면 전문대 교수들의 자긍심이 엄청나게 높아질 것”이라는 총장의 하소연에 공감이 간다.
전문대 교수만의 소규모 연구회나 산·학·연 교류회, 소규모 연구과제 지원이 아쉽다.
현재 2100여종의 국내 등재지 가운데 전문대를 위한 전문대 교수 위주의 학회는 하나도 없다. 전문대 교수 중심으로 하는 학회에서 소외·신생분야 학술지 지원 사업에 신청하면 선정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문대 교수들이 일반대학 교수들에게 기죽지 않도록 하고 싶다. 지금처럼 청년실업률이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자들의 취업을 위해 불철주야 뛰고 있는 사람이 애국자 아닌가.
정부는 2014년부터 고등직업교육 중심기관으로의 포지셔닝, 산업체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교육과정 개발, 핵심 전문인력 양성을 목표로 특성화전문대학 육성 사업을 해 오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는 `취업친화적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대학교육과 산업체 간 미스매치 문제를 해결하고 취업과 전문대 직업교육이 연계된 경로를 마련하기 위해 유니-테크(Uni-Tech) 사업도 추진되고 있다. 이 밖에도 WCC21 사업, 전문대학 링크(LINC) 사업도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일반대학에 지원되는 예산 규모에 비해서는 턱없이 작다.
전문대는 지난 1980년 이후 35년 동안 540여만명의 기술 인력을 양성해 온 교육 중추 기관이었다. 하지만 최근 산업구조 고도화, 직업교육 기피, 학령인구 급감으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전문대가 직업교육 중심의 고등교육 기관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는 4년제 대학과 차별화된 정부재정 지원 사업이 늘어나야 한다. 전문대 교수끼리만 경쟁할 수 있는 연구과제 지원 사업도 필요하다고 본다.
엊그제 차만 마실 게 아니라 막걸리라도 한잔 하면서 전문대의 애환을 더 들었어야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상엽 한국연구재단 학술기반진흥본부 leesy@nrf.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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