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가스시장 갑을 관계가 바뀌고 있다. 미국이 가스수출을 시작하면서 공급 확대에 따른 구매자 목소리(Buying Power)가 커지게 됐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북아시아 지역 프리미엄과 일부 제한 조건 개선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미국 셰일가스 수출이 본 궤도에 올랐다. 지난 2월 루이지애나주 사빈패스 LNG 물량이 처음으로 브라질로 출항한데 이어, 지난달에는 필라델피아주 마르쿠스 후크에서 에탄올을 실은 선박이 출항했다.
사빈패스 물량은 37억입방피트(ft³) 규모로 구매자는 브라질 국영석유기업인 패트로브라스다. 미국의 첫 가스 수출 사례로 기록됐다. 필라데리아산 에탄은 스위스 석유화학기업인 이네오스그룹이 구매자다.
미국의 가스 수출이 시작되면서 업계는 기존 가스 공급시장의 변화를 전망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동안 구매자에게 불리한 구매조건을 붙이던 관행이 크게 개선될 것이란 예상이다. 실제로 미국 물량은 도착지 제한과 같은 규정이 없다. 단순히 시장 전반에 가스 물량이 늘어난다는 것을 넘어, 판매자 간 계약 조건 경쟁도 진행될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나라도 이런 시장 변화에 동참하고 있다. 미국의 첫 수출 사례를 만들었던 사빈패스 물량은 내년에 한국가스공사를 통해 들어올 예정이다. 민간 쪽에서는 SK E&S가 프리포트 LNG를 2019년부터 도입한다. 신규 도입선을 확보해 중동 의존도를 낮추고 구매자로서 우의를 갖춰가는 모양새다.
그동안 한중일 삼국은 가스시장에서 `아시아 프리미엄`이라는 테두리에 묶여 이른바 `봉`으로 불려왔다. 세계에서 가스 소비량이 가장 많고, 의존도도 높다 보니, 타 지역에 비해 더 안 좋은 조건의 물량을 비싸게 계약해 왔다. 이번 미국 가스 수출은 한중일 삼국이 `아시아 프리미엄`을 탈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셈이다. 최근 한중일 가스 업계가 네트워크를 구축해 LNG 허브 구축 등 아시아 가스시장 효율 개선에 나서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한계는 있다. 우리나라는 향후 들여올 가스 대부분이 계약이 되어 있어 사빈패스 말고는 또 다른 미국 가스수출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SK E&S 처럼 민간의 움직임을 기대할 순 있지만 국가 전체 가스 유통 물량을 생각하면 이마저도 쉽지는 않다. 기존 계약을 변경하고 신규 계약을 체결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계약 해지 시 패널티 수위가 높은데다 미국 수출 물량은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제한적인 면은 있지만 구매자 중심으로 바뀐 시장 분위기를 최대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미국 가스 수출로 판매시장 경쟁이 시작된 만큼 기계약 물량에 대해 도착지 제한조건 해제 등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조건을 바꾸는 노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계약 조건이나 제도상으로는 재계약이나 변경에 대한 근거는 없지만 판매자 시장에서 구매자 시장으로 분위기가 바뀐 만큼, 우리 요구를 꾸준히 제기하는 방법으로 보다 유리한 조건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정형 에너지 전문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