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기업 조세회피를 막는 ‘국가 간 소득 이전을 통한 세원잠식(BEPS, 일명 구글세)’ 도입이 본격화 됐지만 관련 법안 처리가 이뤄지지 않아 ‘반쪽짜리’가 우려된다. 한국에 유한회사로 설립된 글로벌 기업 일부는 구글세 부과 근거가 되는 보고서 제출 의무를 피해갈 것으로 보인다.
7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국회에 계류된 구글세 관련 법안이 사실상 자동폐기 수순을 밟고 있다. 19대 국회 종료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논의에 진전이 없어 법안 통과가 어려워 보인다.
김태호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2014년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외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유한회사도 외부감사를 받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외부감사·공시 의무가 없어 유한회사 매출액·영업이익을 정확히 알 수 없고 세금을 제대로 물리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외감법 개정안 처리가 좌절되면 유한회사는 ‘BEPS 보고서’ 제출 의무를 피해갈 여지가 생긴다. 정부는 매출이 1000억원을 넘고 국외 특수관계인과 거래 금액이 연간 500억원을 초과하는 내·외국 법인 국내 사업장을 대상으로 거래 정보 등을 담은 BEPS 보고서 제출을 의무화 했다. 하지만 유한회사는 여전히 외부감사·공시 의무가 없어 실제보다 매출액 등을 낮게 매겨 BEPS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검증하기가 어렵다.
국내 2만개가 넘는 유한회사 중 상당수는 외국계 기업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애플, 루이뷔통 등 유명 외국계 기업 한국법인은 대부분 유한회사다. BEPS 보고서 제출 적용 대상이 외국계 기업이 아니라 오히려 국내 기업에 몰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유한회사도 과세당국에 매출액 등을 신고한다”며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외부감사 없이 기업이 스스로 국세청에 신고하는 만큼 신뢰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홍지만 새누리당 의원이 2014년 발의한 법인세법 개정안, 소득세법 개정안도 사실상 처리가 어렵다. 이에 따라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이 해외에 서버를 둬 고정사업장으로 인정받고 한국에서 소프트웨어(SW)를 판매한 소득에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 문제는 최소 1~2년 내에는 해결이 요원하다.
홍 의원은 컴퓨터프로그램 저작권이 해외에 등록됐어도 국내에서 판매 등을 하면 이를 외국 법인 원천소득으로 보고 과세할 수 있는 법안을 발의했다. ICT기업 고정사업장을 ‘서버 소재지’로 규정한 국제 조세조약 개선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판단해 시행 가능한 대안을 내놓은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BEPS 프로젝트에 고정사업장 예외 인정 규정 악용을 방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특정 국가에서 핵심 사업 활동을 수행하면 해당국에서 과세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를 우리나라가 실제 적용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기재부는 “BEPS 프로젝트 고정사업장 관련 내용은 대부분 우리나라 조세조약 체결 내용에 포함되지 않은 신규 기준”이라며 “조약에 반영 가능한지 여부를 면밀히 검토하고 필요시 현행 조약, 관련 국내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