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후장상이 어찌 원래부터 씨가 있겠는가?”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는 대규모 토목사업과 환관 조고의 전횡으로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게 되자 가난해서 남의 땅을 경작하고 있던 진승과 오광이 중국 역사상 최초로 농민반란을 일으키면서 한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 말 무신정권 때 최충헌의 노비 만적이 우리 역사상 대표적 노비해방운동을 일으키면서 한 말로 유명하다.이상은 창칼로 무장한 옛날 얘기로만 그치지 않고 불행하게도 대륙간탄도탄과 인터넷 시대인 현대에 와서도 지속되고 있다. 즉 금수저, 흙수저 등 ‘수저계급론’이 인터넷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하는 등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논란이 뜨겁다. 두 대째 관리전문직과 단순노무직의 대물림이 각각 43%, 9.4%라는 국내 모 연구원의 분석 결과를 보면 한때 신분의 수직상승으로 만인의 부러움을 사던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표현은 이제 박물관 신세를 져야 할 것 같다.
수저계급론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청년실업, 경제적 불평등, 과다한 노동시간 등으로 인기 검색어 가운데 상종가를 치는 또 다른 것이 ‘헬조선’이다. 영어 문화권에서 매우 부정적인 의미인 ‘hell(지옥)’과 우리나라를 의미하는 ‘조선’의 합성어로, 젊은이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음을 얘기할 때 그 이상 좋은 표현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분노의 배경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청년실업이다. 대학가에서는 졸업생들이 취업 준비를 위해 학교 도서관에서 후배들과 마주치며 함께 공부하는 것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누구도 눈총을 주지 않는다. 당연한지 한두 해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왜 청년실업이 더 심각해지는 것일까. 이유야 많겠지만 사계 전문가들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가 심해서 우리 청년들이 중소기업에 가기를 꺼려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가고 싶은 일자리는 줄게 되고, 반면에 중소기업은 거꾸로 구인난이라는 또 다른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우리가 직면한 청년실업을 해소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은 벤처 창업이지만 우리나라는 그 토양 자체가 척박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그 결과 10대 재벌 가운데 미국이나 중국은 벤처창업가가 제법 있지만 우리나라는 찾기가 힘들다고 한다. 특히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서 벤처는 한때 로망이었지만 지금은 아름다운 한때의 추억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결국 제도 개혁이 답일 것이다. 하지만 이 땅에서 수저계급론과 헬조선을 영원히 추방하기 위해서는 ‘나만 잘되면 된다’는 그릇된 시민의식부터 개조해야 한다. 제도 개혁은 시간이 흐를수록 고무줄처럼 원위치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효과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공동체 시민의식은 어떻게 배양할 것인가. 초·중·고와 대학에 관련 교과목을 개설하고, 그 수강을 의무화해야 할 것이다. 또한 토론식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 등 선진국과 우리나라 사례를 교육함으로써 수저계급론과 헬조선에서 벗어나 이 땅의 미래인 우리 청년들에게 큰 희망을 심어 주어야 한다.
이런 교육이 얼마나 도움이 되겠냐고? 필자의 동기 가운데 오민석은 입대를 앞두고 본적지인 시골에서 신체검사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그 시골에서 유지인 부친께서는 보건소장부터 모두 절친인 터라 군 면제나 방위를 추진하신 모양이었다. 하지만 굳이 현역을 자원해서 갔다. 눈보라 몰아치는 한겨울에 보초를 서면서 “…부모형제 나를 믿고 단 잠을 이룬다…”는 군가가 들려올 때면 현역을 자원한 자부심으로 뿌듯하고, 그렇게 편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렇듯 필자의 동기들 가운데에는 군 복무를 충실히 이행한 경우가 많다. 그것도 현역으로…. 친구들과 그 시절 얘기를 나누다 보면 가장 큰 이유는, 은사 한 분이 수업시간의 일부를 할애하면서까지, 요즘 표현으로 말하면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주 관련 선진국 사례들을 얘기하면서 제자들의 사회적 책임을 유독 강조하셨기 때문이라는데 모두 동감한다.
원래 우리 민족 DNA에는 ‘우리’라는 뿌리 깊은 공동체 의식이 있다. 온갖 모함에도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는 충무공이 우리의 조상이고, 농번기 철을 맞이하면 품앗이는 기본 중 기본이던 공동체 전통이다. 이런 훌륭한 DNA는 현대에서 계승돼 IMF 구제 금융을 받은 국가 위기에 온 국민이 너도나도 금 모으기에 동참했다. 서해안 기름 유출 사고 때는 직장인들은 무급휴가를 내서, 그것도 자기 비용을 들여서 태안으로 향했다. 부직포로 기름을 닦아내었듯이 이제는 공동체 시민의식으로 우리 젊은이들의 눈물을 닦아 주어야 할 때다. 우리 민족의 내면에 잠재된 훌륭한 DNA를 이제는 행동으로 표출시켜야 한다. “굿바이! 수저계급론 헬조선.”
단국대 상경대학장 오재인 jioh@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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