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인 미디어]혜성이 사랑도 이뤄주나요 `바르셀로나 썸머 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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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 스페인 바르셀로나. 사연을 가진 여섯 개의 사랑이 모인다. 남남커플, 여여커플. 첫사랑을 시작하려는 사춘기 소년소녀. 책임 질일 벌이고도 앞날이 두려워 머뭇거리는 삼촌·이모뻘 커플. 남자친구와 함께이면서도 길에서 우연히 만난 옛 연인을 잊지 못하는 여자. 동창 모임에서 옛 기억을 떠올리며 묘한 분위기에 휩싸이는 친구들. 여섯 개의 사랑은 다음 날 아침 7시 머리 위를 지나간다는 혜성을 보기 위해 정열의 도시 바르셀로나에서 밤을 지샌다.

혜성은 그 자체로 로맨틱하다. 하늘에 나타나는 것 치고 사랑과 무관한 게 있을까. ‘조명빨’ 받아 사랑에 빠지듯, 혜성이 조명 한 번 쏴주면 왠지 사랑에 빠질 것도 같다. 그런 기대심리다. 그래서 그들은 혜성이 나타나는 순간 사랑하는 사람과 있고 싶은 거다. 혜성이 조명 하나로 사랑을 만들어내는 건 아니다. ‘한 번 보면 날 다신 못 볼 걸.’ 이렇게 사람들을 협박한다. 사람들은 사랑할 때 ‘운명적인 무엇’을 원한다. 몇 십년, 몇 백년 만에 한 번 나타나는 혜성을 함께 본다면 조금은 운명이라는 믿음이 생기지 않을까.

영화에 나오는 혜성은 ‘로제 혜성’이다. 이름부터가 로맨틱하다. 하지만 이 혜성이 실존하는 지는 의심스럽다. 아무리 검색을 해봐도 이런 이름은 없다. 혜성 탐사선 ‘로제타 호’만 나온다. 아마도 감독이 재밌으라고 장미라는 이름을 붙인 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혜성은 꼬리 달린 별이다. 정체는 얼음과 먼지다. 본체 크기가 수십㎞에 불과하다. 좀 더 컸다면 행성은 못돼도 소행성 대접은 받았을 텐데, 작으니까 그냥 혜성이다. 태양계 바깥에도 혜성은 있겠지만, 우리가 혜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태양을 중심으로 태양계를 빙글빙글 돈다. 대체로 쭉 늘어난 타원궤도를 따른다. 평소에는 조용하다가 태양과 가까워지면 휘발성 물질이 타면서 긴 꼬리를 만든다. 몸이 가벼워진 혜성은 태양계를 둘러싼 얼음덩어리 집단 ‘오르트 구름’을 지나며 다시 몸을 불린다.

이렇게 분석해놓고 보니 로맨틱함이 좀 떨어진 것 같다. 신전을 분해하면 벽돌뿐이고, 시를 분해하면 자획일 뿐이듯, 그 아름답던 혜성이 한갓 얼음과 먼지가 돼버렸다. 혜성을 사랑하는 분들께는 죄송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알고도 사랑해야 진짜 사랑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혜성은 수가 무척 많다. 잎이 뾰족한 나무를 소나무라고 부르듯 혜성도 발견자가 이름을 붙인다. 가장 유명한 건 영국 천문학자 핼리가 발견한 핼리혜성이다. 약 76년에 한 번 공전한다. 1986년 지구에 접근한 이 혜성은 2061년 여름에 다시 나타난다. 45년 남았다. 조금만 힘을 내면 이 유명인사를 볼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

사실 예로부터 혜성은 사랑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전쟁·기근·역병을 몰고 온다고 생각했다. 공전주기를 정확히 계산해 혜성이 천체 일종임을 증명한 사람은 위에서 언급한 핼리다. 비로소 혜성이 주술이 아닌 과학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 뒤로 사람들은 혜성에 대한 공포는 싹 잊고 마음껏 로맨틱 무드를 즐긴 게 아닐까. 그렇다면 이렇게 묻고 싶어진다. 핼리, 혜성이 사랑도 이뤄주나요?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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