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플레이 장비업계가 ‘차이나 딜레마’에 빠졌다. 장비 수주는 늘었지만 잔금 결제가 빨리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잔금 결제가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흑자 도산’하는 기업까지 등장했다. 중국업계가 관행처럼 요구하는 FAT(Final Acceptance Test:최종승인시험) 제도 때문이다.
중국 디스플레이 패널 기업은 장비사업 발주 때 FAT 제도를 이용한다. 장비기업이 제품을 납품하면 대금 가운데 10%에 해당하는 잔액을 나중에 지불한다. 장비가 실제 생산라인에서 문제없이 가동하는지 평가해 최종 합격해야 잔액을 지급한다.
중국 입장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수백억원에 이르는 장비를 구매했는데 금세 고장이라도 나면 낭패다. 품질보증과 사후서비스를 강제하려면 일종의 보험금을 받아 두는 것이다.
문제는 기간이 너무 길고 잔금 규모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최장 2년까지 잔금을 안 주는 사례도 있다. 2년 동안의 금융비용을 감안하면 장비업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것도 전체 사업비 10%를 묶어 둔다. 영업이익률 10%를 넘기는 것은 힘든 상황이다. 장비를 납품하면 2년 동안 적자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가 일어난다. 수주 규모가 늘어날수록 운영자금은 마른다. 한 업체는 중국으로부터 잔금 60억원을 못 받아 부도가 나기도 했다.
관행을 내세워 횡포를 부리지만 기업들은 속앓이를 해야 한다. 중국 비즈니스에서는 발주자가 ‘슈퍼 갑’이다. 행여 찍힐까 봐 쉬쉬한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누가 달 것인가. 해답은 나와 있다. 각개 격파할 수가 없다. 업계 힘만으로도 무리다. 외교 노력이 필요하다.
일본, 미국 등 외국 기업은 어떻게 대처하는지 먼저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 업계에서 대안으로 제시한 표준계약 약관 제정을 정식으로 제안해 보는 것도 방도다. 협회나 대행사를 만들어 계약 당사자의 힘을 기르는 것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불합리한 FAT의 혁파가 앞으로 중국 비즈니스의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 FAT를 고치면 다른 관행도 바로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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