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설계·감리 분리발주를 골자로하는 전력기술관리법 일부개정을 두고 관련업계와 정부가 마찰을 빚고 있다. 업계가 중소기업 보호, 공사비용 절감을 이유로 법안 통과를 압박했지만,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업종간 이해관계를 이유로 반대했다. 사실상 개정안 처리가 무산됐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업계는 궐기대회 등 단체행동까지 예고하고 있어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질 전망이다.
15일 업계와 관련부처에 따르면 전기설계·감리협의회는 오는 23일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청사 앞에서 ‘전기설계·감리 분리발주 쟁취 총궐기대회’를 열고 법 개정안 처리를 요구할 계획이다.
업계는 ‘완전 분리 발주’ 체제로 전환을 주장하고 있다. 현재 건물, 공장을 지을 때 전력기술관리법에 의거해 전기 설계를 전문업체에 발주하도록 명시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분리 발주’에 대한 강제 규정은 없다. 이 때문에 건설사나 설계사무소 등 선정된 원도급업체가 다시 하도급 방식으로 전기설계·감리업체를 선정하는 것이 관행화돼있다.
업계는 이 하도급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고 꼬집는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전기 설계기업은 주로 건설사나 설계사무소로부터 다시 발주를 받기 때문에 ‘을’ 지위에 놓여 있고 대금 미지급, 지연 지급, 부당 감액 등 문제에 노출돼 있다”고 말했다.
업계는 발주처가 처음부터 전기설계·감리를 분리발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낸다. 하도급으로 인한 불필요한 중간마진을 줄이고 적정한 용역대가가 보장돼 품질하락도 막을 수 있다는 논리다. 지난 2013년 노영민 의원이 전력시설물의 설계·공사감리를 다른 업종 설계·공사감리와 분리발주하도록 하는 전력기술관리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발의하면서 이 같은 주장은 구체화됐다.
소관 부처인 산업부는 부정적 시각이다. 지난해 산자위 법안소위 당시 ‘실제 현장에서 분리발주 사례가 거의 없다’며 무용론을 제시했다. 표면적으로는 분리발주시 책임 주체가 많아져 분쟁 소지가 많다는 입장이지만 건설업계 입장을 대변하는 국토교통부가 개정안 통과에 난색을 보이고 있어 협의부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분리발주 전환으로 행정 비용이 오히려 늘어날 수 있으며, 무엇보다 관계 부처간 협의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업계와 정치권에선 개정안 처리가 이번 회기 뿐 아니라 이후에도 재논의되기 쉽지 않다는 비관적 전망이 나온다. 산업부가 강한 반대의사를 보이는데다 발의자의 지속적인 관심과 법통과 노력도 불확실해졌다.
업계는 단체 행동을 예고했다. 다만, 이 같은 단체행동이 오히려 앞으로 법 개정 여지를 완전히 막아버리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업계 안팎에서 나온다.
전기업계 관계자는 “시공분야에서는 전기, 통신 등 전문분야 분리시공이 정착돼 있지만 설계·감리 분야에서는 명확한 분리가 안착되지 않았다”며 “업계는 사실상 이번 회기를 마지막 기회로 보고 법안 통과를 추진했지만 결과는 극도로 비관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호 전기전력 전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