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닥터 프로스트’ 이종범 작가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작가의 ‘닥터 프로스트’는 자기 자신을 몹시 알고 싶어하는 심리학자 여정을 그린 것이다. 진로를 고민한다면 스펙 쌓기는 잠시 미루고 프로스트 박사처럼 자기 자신에 대한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여행에서 돌아오면 예전보다 더 멀리 더 힘차게 갈 수 있다.
-자기소개를 바란다.
▲웹툰 닥터 프로스트 연재와 여러 가지 일을 하는 30대 중반 작가 이종범이다.
-어렸을 때 꿈인 만화가를 어떻게 이뤘는가.
▲8살에 ‘드래곤볼’을 따라 그렸을 때 주변에서 해주는 칭찬이 좋아 만화가를 꿈꿨다. 중고등학교 때 만화를 보고 감동을 받아 다른 사람에게 이런 감동을 주고 싶어 만화가가 되고 싶었다. 대학교는 심리학과에 진학했다. 만화가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지만,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리는 방법보다 사람과 사회 맥락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대학에 간 뒤 음악을 접하면서 만화 의욕이 잠시 꺾이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만화를 그리게 됐다. 음악을 업으로 삼을까 고민도 했다. 나를 위해 했던 음악과는 달리 만화를 통해 세상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만화를 다시 그렸다.
진로 선택 기준은 몇 번 진화를 거쳐야 한다. ‘드래곤볼을 그렸더니 칭찬을 해주네’ 단계에서 ‘만화로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싶다’ 단계로 진화했다. 선택 기준이 진화할수록 꿈에 대한 유통기한이 달라진다. 기준이 타인이나 외부에 있으면 칭찬을 못 받거나 돈을 벌지 못하면 유통기한이 짧아진다.
하지만 그 기준이 자신에게로 들어오면 현실적 어려움이 있어도 유통기한이 짧아지지 않는다. 진로 선택 기준이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오게끔 하려면 직업 리서치도 중요하지만 자신에 대한 리서치도 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 지와 직결된다.
-만화가란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어떻게 극복했는가.
▲어려움을 극복했다기보다 꾸준히 버텼다. 개인적으로 20대에게 조언을 하는 것이 어렵다.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다를 뿐 20대는 지금도 극복해야 할 것이 충분히 많기 때문이다. 20대에게 조언보다는 참고가 될 만한 말을 해주고 싶다. 원하는 것을 할 때 어려움을 만나면 극복하기보다 버티는 것이 중요하다.
언제가 끝날지 모르는 상황을 버틸 때 가장 어려운 것은 막연함이다. 예를 들어 매를 맞을 때 열 대를 맞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버틸 수 있다. 그러나 몇 대를 때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맞으면 얼마나 더 맞을지 모르는 막연함 때문에 버티기 어렵다. 지금 20대가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막연함이다. 현 상황이 언제까지 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막연한 상황에서 버티는데 도움이 될 만한 것은 나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다. 저는 어떤 일을 하거나 결정할 때 항상 이것을 왜 하고 싶은지 물어본다. 보통 어떤 일을 할 때 왜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고, 이런 상황에서는 막연함이 더 커지고 버티는 것이 고통스럽다. 어떤 일을 왜 하는지 구체적 대답이 나올 때 막연함에 대한 면역이 강해진다. 단순히 돈을 버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막연함이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자기 자신을 파악하는가.
▲단지 다른 사람이 시킨 일을 하면 시키는 사람이 원하는 영역 안에서만 행동하게 된다. 내가 스스로 선택해서 일을 할 때는 자신의 최고점, 최저점, 경계점을 알 수 있다. 자신이 원해서 하는 행동은 여행과 연애가 있다. 여행이나 연애를 하면 여행에서 만난 두려움에 내가 어떻게 맞서는지 연애를 하면서 좋을 때나 힘들 때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알 수 있다.
다양한 상황에 자신을 넣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만화가가 캐릭터를 만들 때도 캐릭터를 극단적 상황에 넣어보고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그 캐릭터를 만든다.
여행, 연애,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스스로 어떻게 반응하는지 봤다. 이것을 지속적으로 하다 보면 자신이 못 참는 것, 언제나 즐겨하는 행동,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가 나온다. 자신이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행동이나 직업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화가로서 보람 있는 점과 힘든 점은 무엇인가.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어서 만화를 그리는데, 그것이 독자에게 전달됐다는 확신이 들 때 보람이 있다.
힘든 점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라는 회의감이 들 때와 체력 문제다. 악성 댓글은 그렇게 신경을 안 쓴다. 모두에게 사랑받기 위해 하는 것은 언제나 실패한다는 것을 안다.
-심리학이 주제인 만화 연재 계기는 무엇인가.
▲데뷔작인 ‘투자의 여왕’을 마치면서 전문소재를 취재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행히 전문소재를 주제로 한 만화는 거의 없었고 1년이란 기한을 두고 네이버 웹툰 연재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네이버 웹툰 연재에 필요한 것은 전체 이야기를 파악할 수 있는 시놉시스와 원고 1회였다. 여기에만 적어도 3~4개월이 걸린다. 1년 동안 각기 다른 6개 소재 작품이 거절당했고 1년이 끝나갈 무렵 마지막 원고를 제출했다. 결국 웹툰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와서 작업실에서 만나기로 했다.
웹툰 담당자가 작업실에 온 것은 같은 작업실에 있던 다른 작가들에게 차기작 연재를 언제 할 것인지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내게는 거절 사실을 알린 것이다. 담당자가 다른 작가들과 미팅을 하는 동안 구석에서 소재수첩을 멍하니 봤다. 소재수첩 마지막장에는 ‘심리학자가 등장하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웹툰 담당자가 나갈 때 “심리학자가 등장하는 내용은 어떨까요”라고 말했다. 시놉시스는 물론 원고나 캐릭터도 없었다. 그 자리에서 연재가 결정됐다.
-개인적 목표나 꿈은 무엇인가.
▲만화가가 꿈은 아니었다. 만화가가 되는 순간 꿈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어떤 기업에 들어가는 것이나 어떤 직업을 가지는 것을 꿈으로 설정하면 위험하다. 직업은 꿈을 이루기 위한 중간단계라고 생각하고, 어떤 종류의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내 이야기가 국가, 인종을 넘어 지구 반대편 사람에게까지 전달되는 것이 꿈이다.
-취업 준비생에게 해줄 말이 있는가.
▲어디선가 한 사람 몫을 하고 돈을 받는 정상적 삶이 안 되는 것은 개인의 탓이 아니다. 이것 때문에 20대 자존감이 떨어지는 상황이 걱정이다. 일이 잘 안 되도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지금 모든 상황은 20대 자존감을 지나치게 낮추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적어도 당사자만큼은 ‘지금 상황이 좋지 않을 뿐이지 나는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다’라는 자존감을 가지면 좋겠다.
etnews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