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국정 화두(話頭)인 창조경제가 대장정 4년 차에 접어들었다. 창조경제는 신성장 국가전략이다. 미래창조과학부를 포함한 6개 부처는 1월 18일 2016년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을 통한 성장 동력 확충’ 계획을 발표했다. 정보통신기술(ICT)과 문화, 고부가 서비스산업 등 핵심 성장분야에 정책자금 80조원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민화 KAIST 교수(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를 1월 25일 오후 4시 서울 강남구 KAIST 도곡캠퍼스 205호실에서 만났다. 이 교수는 초대 벤처기업협회장으로 ‘벤처대부(代父)’로 불린다. 창조경제 활성화와 세계화를 위해 매월 공개포럼을 열고 정책보고서를 낸다. 직접 타 준 커피를 마시며 1시간여 인터뷰했다.
-창조경제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나.
▲창조경제로 창업과 투자가 활성화했다. 지난 3년간 실적을 보면 창업과 벤처투자가 두 배 늘었다. 창조경제 상태계에 액셀러레이터가 많이 등장했다. 창업에 관한한 창조경제 성과다. 2000년 벤처붐 이후 꺼진 창업 불씨를 창조경제가 되살렸다. 창조경제는 글로벌 트렌드다. 우리만 창조경제를 하는 게 아니다. 중국은 하루 1만개 씩 창업한다. 제2의 한강 기적은 창조경제 성공여부에 달려있다.
-창조경제 생태계는 구축했다고 보나.
▲로켓발사를 예로 들면 1단계 발사는 성공했다. 2단계가 생태계 구축이다. 아직 2단계 로켓분리가 안됐다. 창조경제는 대기업 영향과 벤처의 혁신 결합이다. 대기업은 혁신을 얻고 벤처는 이익을 얻는다. 창조경제 선순환생태계다. 창조경제 생태계 구축 3대 요소는 △인수합병(M&A)활성화 △플랫폼 구축 △공정거래질서다. 벤처가 대기업과 선순환하거나 직접 시장을 개척해 글로벌화하면 창조경제는 완성한다.
-창조경제센터 역할에 대한 견해는.
▲대기업이 벤처기업을 지원하는 시스템인데 흔한 일이 아니다. 앞으로 대기업이 기술이나 창업만 지원할 게 아니라 창업기업과 생태계 협력 창구 역할을 해야 한다.
-창조경제 확산 걸림돌은.
▲과거 성공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성공의 역설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는데 우리는 ‘내 사전에 실패는 없다’고 말한다. 모든 게 대기업 중심이다. 대기업은 혁신이 어렵다. 대부분 혁신은 중소기업에서 한다.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는 창조나 혁신을 할 수 없다. 남과 다르게 일해야 한다. 성실한 모방은 한계에 왔다. 모범생이 될 게 아니라 괴짜가 돼야 한다.
현실은 창업하다 망하면 신용불량자로 전락한다. 이런 실패를 지원하지 않고는 혁신은 불가능하다. 이제는 단독경제에서 개방협력구조로 가야 한다. 우리는 공유 개념이 약하다. 소프트웨어(SW)도 자신이 만들어야 한다. 미국 실리콘밸리는 95%가 공유한다. SW위기 본질은 공유개념이 없어서다.
학교 수업을 봐도 정답만 공부한다. 문제를 찾는 혁신 교육을 해야 한다. 창조성과 협력하는 괴짜를 키우는 교육이다. KAIST가 실시하는 영재기업인 교육은 중학생을 대상으로 하는데 팀별로 프로젝트 수업을 한다. 1년 260시간 교육과정이다.
-창조경제는 어떤 전략이 필요한가.
▲그간의 성과를 제대로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다음은 창조경제 미래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창조경제는 글로벌 리더로 가는 새로운 성장전략이 될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2000년 우리 벤처기업이 1만개가 넘었다. 미국을 제외하면 세계 최대였다. 세계 최초로 한국기술거래소도 설치했다. 안 해 본 게 별로 없다. 그래서 세계 최고 수준의 벤처생태계를 구축했다. 당시는 모태펀드나 성장사다리펀드 같은 것도 없었다. 물론 예산도 별로 없었지만 벤처붐이 불어 한 해 벤처가 4000개씩 등장했다. 벤처투자액이 2조원에 달했고 엔젤투자가 5000억원이었다.
역풍이 불었다. 당시 정부는 코스닥을 코스피에, 한국기술거래소를 한국산업기술진흥원으로 통합했다. 벤처인증제를 기술신용보증보험으로 바꿨다. 스톡옵션제는 유명무실해졌다. 이로 인해 벤처생태계는 무너졌다. 10년 벤처빙하기였다. 창업활성화는 어려울 게 없다. 과거 벤처제도를 복원하면 된다. 우리 정책은 공급 주도형이다. 중국은 시장주도형이고 일본은 기술주도형이다. 핀란드와 이스라엘은 연구개발형이다.
모태펀드로 자금을 지원하는데 우리는 지원액이 60%다. 이스라엘은 9%다. 민간자금보다 정부지원금이 더 많다. 자금을 공급만하고 회수시장을 안 키웠다. M&A시장을 활성화하면 엔젤투자는 하지 말라고 해도 한다. 초기투자가 M&A라면 중기투자는 코스닥이다. 그동안 정부에 수차례 시스템 복원을 요청해 정부가 코스닥 복원작업에 착수했다.
-한국형 창조경제 모델을 제시할 수 있나.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영국은 1996년부터 창조경제를 시작했다. 영국은 특정산업을 육성하는 정책으로 한정했다. 우리는 창조경제 시작은 제일 늦었다. 하지만 모든 산업을 창조산업화 한다. 다른 나라와 다른 특이한 정책이다. 한국식 창조경제를 제대로 하면 개도국에 유용한 성장모델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새마을운동을 개도국에 널리 전파했다. 벤처 새마을 운동을 한국형 창조경제 모델로 발전시켜야 한다.
-창업한다면 주위에서 말린다. 왜 그렇다고 보나.
▲창업 기댓값보다 실패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비용편익분석을 하면 창업해 실패하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결혼도 하기 어렵다. 창업 실패자에 대한 지나친 징벌이다. 이런 학습 효과로 창업을 주위에서 말린다. 요즘 청년들이 선호하는 직업 1위가 공무원이다. 미국 실리콘밸리는 평균 2.8회 만에 성공한다. 두 번 실패하고 세 번째 성공하는 셈이다. 그래서 두 번 실패했다고 하면 이제 성공할 때가 됐다고 말한다.
-청년 일자리 해법은.
▲청년 일자리를 정부와 대기업이 다 만들 수 없다. 그런 나라도 없다. 청년이 창업에 도전해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청년 창업 없이 국가성장은 불가능하다. 창조경제는 창업활성화에서 출발한다. 이를 위해 ‘혁신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창업자 연대 보증제를 개선해야 한다. 다행히 정부가 올해부터 창업자 연대보증제를 수정한다. 창조경제연구회가 제안한 내용인데 2년 반 걸렸다. ‘혁신의 안전망’을 확보해야 창업이 활성화한다.
-대중소기업은 상생하나, 불공정 행위는 근절했다고 보나.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 지금은 과거처럼 대기업이 갑을 관계를 앞세워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내가 기업호민관 시절 12개 공정거래정책을 제시한 바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창조경제에 대한 이해를 더 해야 한다.
제품을 사고파는 이른바 제품시장에서 공정위는 상당 역할을 한다. 불공정거래는 많이 사라졌다. 그러나 기술이나 사람을 빼가는 혁신시장에서 공정위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 미국은 연방거래위원회(FTC)가 없으면 실리콘밸리가 무너진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만큼 엄격하다. 우리는 공정위가 불공정거래 99%를 기각하면서 사유를 공개 안한다. 검찰도 불기소처분 이유를 공개한다.
대기업 보복도 금지해야 한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보복을 하면 엄격하게 다스려야 한다. 지금은 대기업이 보복할 경우 입증책임이 중소기업에 있다. 개선안을 국회가 통과시키지 않는다.
-창조경제를 차기정부에서 승계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정책 단절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가 창조경제 미래전략을 국민과 공유해야 한다. 국민지지를 받는 정책은 차기 정부에서 승계한다.
-원격의료에 대한 입장은.
▲원격의료를 금지하는 나라는 우리뿐이다. 원격의료는 정보기술(IT)과 의료를 접목한 서비스다. 우리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원격의료 세계 시장 규모는 6조달러다. 반도체가 3000억달러다. 반도체 20배다. 진단과 치료는 병원영역이다. 관리는 개인 생활 영역이다.
우리는 세계 최초로 혈당측정이 가능한 혈당관리 휴대폰을 만들어 원격의료를 석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휴대폰은 의료법상 의료기기로 분류돼 사업을 포기했다. 좋은 기회를 놓쳤다. 의료진료카드가 우리는 병원 안에 있다. 미국은 의료기록이 클라우드에 있다. 한국디지털병원수출사업협동조합이 이달 초 볼리비아와 7000만달러 규모 병원 신축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세계 원격의료 분야를 석권할 좋은 기회다.
-창업하는 청년들에게 당부의 말은.
▲청년은 자기 주도 삶을 살아야 한다. 남을 따라가는 스펙형 인간은 불행하지는 않겠지만 행복할 수는 없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야 한다. 세상에 기여하는 청년이 돼야 한다.
-정치권에서 러브콜이 없나.
▲정치는 적성에 맞지 않다. 정치하고 싶었다면 벌써 했다. 공직도 관심이 없다. 걸림 없이 사는 지금이 제일 좋다. 여기저기 쓴 소리를 하다 보니 ‘공공의 적’이 됐다(웃음).
-좌우명과 취미는.
▲홍익인간 이화세계(弘益人間 理化世界)가 좌우명이다. 취미는 바둑(아마 5단). 골프는 요즘 안한다.
이 이사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전자공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벤처 1세대로 메디슨을 창업했고 벤치기업협회 초대회장, 한국기술거래소 이사장, 2009년 9월 초대 기업호민관을 역임했다. 현재 KAIST 초빙교수, 비영리조직인 유라시안네트워크 이사장, 한국디지털병원수출사업협동조합 이사장,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으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