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벤치마크 유종인 두바이유, 서부텍사스원유(WTI), 북해산 브렌트유는 올 들어 전부 20달러대에 진입했다. 13년 만에 최저가다. 저유가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으로 작용했다. 오일머니로 글로벌 투자계에 ‘빅 버킷’ 역할을 자처해온 중동 산유국이 재정위기로 몰리며 글로벌 경제는 수렁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세계 경제 부활 조건으로 유가 상승이 전제돼야 한다는 진단까지 나온다. 반등이냐, 추가 하락이냐. 국제유가 향방에 이목이 집중됐다.
◇2000년대로 되돌아간 국제유가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3대 원유 평균가격은 2005년 이후 10여년 만에 최저치다. 한국이 주로 들여오는 중동산 원유 기준가 두바이유 평균 가격은 배럴당 50.69달러다. 전년 대비 47.5% 하락했다. 2005년(49.59달러) 이후 최저치다. 낙폭은 1986년(-51%) 이후 29년 만에 최대다.
서부텍사스원유(WTI) 지난해 평균가는 48.76달러다. 2004년(41.47달러) 이후 11년 만에 40달러대로 떨어졌다. 브렌트유 평균가는 53.60달러로 2005년(55.26달러)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국제유가 하락세는 올해 들어서도 제동이 걸리지 않았다. 이달 평균(1월 22일 기준) WTI와 브렌트유가 각각 배럴당 31.63달러, 두바이유가 29.98달러다. 전월 대비 약 7% 이상 떨어졌다. 지난 15일에는 3대 원유 거래가격이 모두 20달러대로 주저앉았다. 20일에는 WTI 2월 인도분이 전일 종가 대비 무려 6.71%나 하락한 배럴당 26.55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2003년 5월 이후 최저치다.
올 들어 급락세가 이어지는 이유는 원유 공급과잉과 더불어 수요 감소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세계 원유 공급량은 하루 평균 9690만배럴로 수요량인 9540만배럴보다 약 150만배럴 더 많았다. 미국이 셰일오일을 본격 생산하면서 최근 2년째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세계 원유 소비량 12%를 차지하는 중국 경기도 침체 기류가 감지되면서 유가 하방압력은 거세졌다.
초저유가는 예상과 달리 글로벌 경제 활력보다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산유국 재정위기와 신흥국 자본 이탈로 글로벌 경기 침체가 가중되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이 저금리 정책을 펴자 금융자본은 신흥국으로 대거 유입됐다. 내년 신흥국 발행 채권 만기가 도래하고 미국 금리정상화로 신흥국발 부채위기 가능성이 커졌다. 중국 성장둔화로 인한 수요 감소로 원자재 가격까지 폭락하는 상황에서 유가 하락은 경기 침체를 부추기고 있다.
최근 국제유가와 글로벌 증시가 방향성을 같이 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지난 20일 미국 다우지수는 1.5% 하락 마감했고 영국, 프랑스 증시 대표 지수 모두 3.5%가량 떨어졌다. 유가 하락이 경기 둔화를 반영하는 동시에 이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제는 유가가 반등해야 글로벌 경기 침체가 해소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가 향방에 대해서는 이견이 엇갈린다. 산유국 생산량과 중국 포함 주요국 소비 전망이 시시각각 바뀌고 있다.
◇“국제유가 더 떨어진다”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 등 주요 투자은행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20~25달러까지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유가 하락으로 산유국 감산 가능성이 줄었고 중국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둔화와 미국 금리인상으로 달러 강세가 이어지면서 유가 하락이 심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다시 불안심리로 이어지고 안전자산 선호가 심해져 국제유가 하락세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경제 제재가 풀린 이란의 원유 시장 가세도 또 다른 불안 요인이다. 이란은 주요 수익원인 원유·가스 수출을 금지 당해 국가 재정 압박이 극심했다. 원유 생산·수출 능력은 세계 4위 수준으로 2012년 서방 제재 이전 하루 250만배럴 원유를 수출했다. 이란은 앞으로 하루 50만배럴 원유 수출을 시작으로 6개월 이후 하루 100만배럴로 생산량을 늘릴 계획이다.
이란 원유시장 가세로 공급과잉이 가중될 것이 뻔해졌다. 아비쉑 데쉬판드 나틱시스글로벌자산운용 연구원은 CNBC와 인터뷰에서 “이란이 원유 생산·수출을 재개해도 OPEC는 감산하지 않을 것”이라며 “기술적 분석 등을 감안한 국제 유가 저점을 10달러로 내다보는데도 근거가 있다”고 말했다.
◇“바닥 다졌다, 반등만 남았다”
유가가 떨어질수록 반등 전망에도 힘이 실린다. EIA는 2015년 미국 원유 생산이 일일 940만배럴을 기록했다고 최근 밝혔다. 올해 870만배럴, 2017년에는 850만배럴로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유가 하락으로 인해 셰일오일 생산량이 빠르게 줄어 재고와 초과공급분은 2016년 하반기 2014년 이전 수준으로 돌아갈 것으로 추정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재고부담으로 유가 상승이 힘들지만 하반기 재고부담이 완화되면 반등도 기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원유 생산비용을 봐도 현재 상황은 오래 유지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원유를 장기간 생산하기 위한 경제비용은 배럴당 50달러 수준이다. 단기간 30달러를 밑돌아도 생산할 수 있지만 장기간 현재 유가에서 수익을 내는 산유국은 없다는 뜻이다.
기술적 분석에서도 반등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EIA는 1월 단기 에너지 전망보고서에서 올해와 2017년 국제유가 전망치를 전월 대비 낮추면서도 추가 하락 가능성은 낮게 봤다. 브렌트유는 올해 연평균 배럴당 40달러, 2017년에는 50달러로 예상했으며 WTI는 각각 37달러, 47달러로 내다봤다. WTI 전망치 95% 신뢰구간인 배럴당 25달러에서 56달러 수준인 것을 감안해 반등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현재 유가가 글로벌 증시나 다른 원자재 가격에 비해서도 하락폭이 낮아 제자리를 찾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민병규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상대가격 관점에서 본 유가의 현 위치’ 보고서에서 유가가 어느 수준에 도달했는지 구리, 주식과의 상대 가격을 통해 비교했다. WTI 가격과 선진 벤치마크 지수인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지수(MSCI) 비율을 표준화 한 값은 -1.20다. 이 수치를 밑돌 가능성은 11.5%, 1988년 이후 실제로 이 지수가 -1.20을 하회한 기간은 7.6%에 불과하다. WTI 와 구리 가격의 비율을 표준화 한 값은 -1.33으로 이 값을 하회 할 가능성은 9.1%에 불과해 추가 하락 가능성을 낮게 봤다.
◇“20~30달러 박스권 유지한다”
유가 추가 하락, 반등을 점치는 분석을 종합하면 ‘장기적으로 유가는 점진적 회복세에 올라설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원유 생산량, 수요에 따라 시기는 크게 바뀔 수 있다. 이를 감안하면 현재 바닥을 다지면서 당분간 박스권 장세가 상당 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게 전문가 분석이다. 22일(현지시각) WTI 3월 인도분은 전날보다 2.66달러(9%) 오른 배럴당 32.19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브렌트유도 상승해 30달러선을 동시에 회복했다. 미국 동부와 유럽 일부 지역 폭설과 한파가 몰아친 가운데 난방유 수요 증가 전망이 가격에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이란이 이르면 2월 중순 100만 배럴 원유를 유럽에 수출하는 등 당분간 공급이 강세를 보여 반등 여력이 충분하지 않다. 25일(현지시각) 뉴욕상업거래소 종가 기준 WTI 3월물 선물 가격은 배럴당 30.34달러다. 전 거래일보다 1.85달러(5.8%) 하락하며 상승분을 반납했다.
뉴욕증권거래소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도 전장 대비 208.29포인트(1.29%) 하락한 1만5995.22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주 상승세를 이어갈 동력이 없었다는 것이 금융권 분석이다. 당분간 단기 이슈에 따라 등락을 반복하는 혼조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손재현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원유 시장은 공급 과잉 부담 영향으로 급락장세를 연출한 상황으로 최근 일시 반등은 대형 호재가 없는 상황에서 일어났다”면서 “아직 공급 과잉 부담을 덜어내는 추세 반등에 나서기는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출처:한국석유공사
최호 전기전력 전문기자 snoop@etnews.com